다른 말은 다 버려두고 비명처럼 '엄마, 왜'만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크레파스로 그렸던 나무가 있다.
마음에 들었지만 그 주변에 가위로 긁어내린 흔적들이 사납게 남아
도배를 하면 어떻겠냐고 몇 번 노래를 했다.
3년이 지났다.
지난 추석에 엄마가 도배를 새로 할까, 무슨 색이 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설날에 다시 그 질문을 하겠지.
새 크레파스가 다 닳을 정도로 눌러 담았던 감정 위로
색색들이 흉측하게 뒤섞여 범벅이 돼 있는 줄로만 알았다.
오늘 올려다본 그 큰 나무는
볕에 바래 기둥 위로 초록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