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얘기에요. 10년이 되가요. 당시 저는 퇴근 후에 양재에서 영통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퇴근 시간이라서 버스가 만원이었죠. 운좋게 저는 좌석에 앉았습니다. 제 옆에 회사원으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서있었죠.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좀 지나서 저는 여성이 약간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초조한 표정을 하고 자꾸만 허벅지를 앉아있는 제 어께쪽으로 뒤트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소변마린 사람처럼 말예요. 이 여자가 왜이러나 싶어서 계속 주시했죠. 그런데 알고보니 여자 뒤에서 40대 중반 정도 된 양복입은 아저씨가 조는 척 하며 손을 흔들다가 여자 엉덩이에 가져다 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첨에는 팔을 흔들흔들 하다가 툭 치는 식으로 하다가 살짝 가져다 대고, 여자가 몸을 뒤틀면 다시 떼고 툭 툭 건드리다가 다시 가져다대고.. 그래서 주기적으로 여자가 몸을 꼬고 있었던 겁니다. 버스는 초만원이었기 때문에 다른곳으로 옮겨가는 것도 불가능했죠. 고속도로를 벗어나려면 한참을 더 가야하구요.
조금 지나니 손등으로가져다 대더니 이번에는 손바닥을 슬쩍 가져다 댑니다. 여성 얼굴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밖에 설명이 안되네요. 하지만 훨씬 더 복잡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주시하고 있었으니 여자도 제가 눈치채고 있는걸 아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뒤에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여성분에게 작은 목소리로 '저기요' 했습니다. '네?'합니다. '저랑 자리 바꾸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어렵게 자리를 바꿔 여성분을 앉히고 제가 일어섰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뒤에 있던 그 아저씨 제 옆으로 어떻게 해서든 비집고 들어와 여자분 어께쪽으로 자리를 잡아보려 합니다. 계속해서 고개를 떨구고 조는 연기를 합니다. 조는 연기를 하면서 비집고 여자쪽으로 자리를 잡으려 합니다. 어께에다가 거시기라도 비빌 심산이었겠죠.
아저씨가 자리 못잡게 조금 버티다가 저는 고개를 돌려서 그 아저씨에게 약간 큰 소리로 '아 좀 적당히 합시다!' 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저를 쳐다봤습니다. 아저씨는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자는 연기를 하더군요. 그 다음부터 아저씨는 움직임 없이 조용히 갔습니다. 여자분이 저보다 먼저 내렸는데요, 내리면서 다시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고 내리더군요.
오늘 오유에서 '여자가 성추행 당했을 때의 느낌'이라는 글을 보고 문득 그 때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리고 오래 전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었다고 혼자서 뿌듯해 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