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유사를 보면 김유신이 수호신으로 모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외적의 치입을 받았을때도 김유신 장군의 묘에서 바람이 불거나 적의 침입을 알리고 정체 불명의 군사들이 나타나 적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기록이 있죠.
이후 신라의 혜공왕(惠恭王, 756~780)은 무능한 왕이 였는데 그의 패악을 보다 못한 김지정과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반란에 참여한 수많은 대신들과 그의 일족까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과정에서 애꿎은 성골인 김유신의 후손들도 대부분 죽임을 당했습니다..
혜공왕 15년(779) 4월에 김유신 무덤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서 장군과 같은 위용을 갖춘 사람이 준마를 타고 나타났는데 그뒤로 무기를 가진 40여 명이 뒤따라 죽현릉(신라의 13대 미추왕(262~284)의 무덤으로 미추왕의 혼은 신라 수호신을 다스렸다고 합니다.)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이 목격 됬습니다.. 능 안에는 소리 내어 우는 듯하고 어떤 때는 호소하는 듯한 소리도 들렸습니다.
"신은 평생을 시대의 환란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태어 통일을 이룬 공이 있고, 혼백이 되어서도 나라를 지키고 재앙을 물리쳐 환란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잠시도 고쳐먹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죄 없는 자손이 죽임을 당했다고 이제 나라를 위해 힘쓰는 일은 그만하고 멀리 떠나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미추왕에게 얘기 했고. 미추왕은 "나와 공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백성들은 어떻게 되겠는가?"라면서 다시 예전처럼 힘써 노력해 달라고 사정 했습니다..
김유신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세 차례 부탁에도 세 번 다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유신의 분노 때문인지 무덤 근처를 시작으로 천재지변이 일어나자 혜공왕은 두려워 대신 김경신(뒷날 38대 원성왕)을 특사로 김유신묘에 가서 사과하고 절(취선사)에서 명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제사도 시조 박혁거세의 오릉(五陵)보다 위인 대묘(大廟) 위에 둔다 하여 가까스로 김유신의 넋을 달랬다고 합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신라가 망한후 고려가 세워 집니다..
그런데 고려의 31대 왕인 공민왕(恭愍王, 1330~1374)때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여 계혁을 시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노국공주가 죽은후 정치에 뜻을 잃고 신돈에게만 맡기자 점차 정치는 문란해져 갔는데
어느날 신돈의 꿈에 김유신이 나타나서는 "내 아무리 노력해도 나라가 기울어 가는걸 막을수 없구나..내 비록 저승으로 간다만 니놈만은 용서치 않으리라" 라는 말과 신돈의 뺨을 후려치며 사라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