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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2) 인류 구원 마법의 제물
게시물ID : readers_306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인석
추천 : 6
조회수 : 350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7/12/18 18: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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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마법사와 제자는 사면을 칠판으로 가득 채운 방에 있었다.


 그 방안에서 칠판 가득 수식을 써 내려가던 마법사는 마지막 숫자를 적어넣었다.


 잠시 뒤로 물러나 써놓은 수식들을 살피던 마법사는 후들거리는 다리 탓에 아예 주저 앉고야 말았다.


 "어때?"


 마법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하나뿐인 제자를 돌아보았다. 제자는 말없이 천천히 제자리에서 돌며 사면에 빼곡히 적힌 수식들을 다시 훑어 보았다. 천재란 이름이 아깝지 않은 제자는 순식간에 검산을 마쳤다.


 “네. 맞아요. 세상에나. 이세계와 연결 되다니."


  삼일인가 사일인가 씻지 못해 엉겨 붙은 머리를 감싸 쥐며(무언가 흩날렸다.) 제자가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 있어. 우리가 해냈다고!”


 둘은 감격에 겨워 동지애 가득한 눈빛을 교환했다. 손바닥 마주칠 기운도 없었던 탓이다.


 소행성 충돌까지 불과 하루를 남기고 결국 계산에 성공했다. 다른 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인류 최후의 보루가 되어 다크 서클과 위경련을 달고 산 지 한 달 만의 성공이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네요. 연결 문제는 해결했지만, 거래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저쪽 맘이니까요. 서쪽의 마왕이 맘에 들어 할 만한 ‘인류의 소중한 개념’을 바쳐야 해요.”


 “그래. 그것만 해결하면 되지.”


 제자의 말에 마법사가 흥분을 누르고 다시 문제에 집중했다.


 지난 한 달간 고서적과 온갖 실험 끝에 서쪽의 마왕이 이적을 일으켜 인류를 구원할 충분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드디어 대화할 방법까지 마련했다. 


 이제 서쪽의 마왕과 인류의 생존이 달린 거래를 준비해야만 했다.


 거래를 위해 내놓아야 하는 것은 인류의 '개념'.


 정신체인 서쪽의 마왕이 바라는 것은 '개념' 뿐이다.


 받아들인 개념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수수께끼이지만, 결과는 알고 있다. 서쪽의 마왕에게 바쳐진 개념은 점차 인류에게 잊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만일 딸기 우유라는 '개념'을 바친다면 즉시 딸기 우유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조금씩 딸기 우유를 생산하는 사람도, 구매하는 사람도 줄어갈 것이다.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딸기 우유에 대해 생각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제 그런 개념은 없어졌으니까.


 개인이 애써 잡고 있어도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가서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되고 점차 자연스럽게 잊혀 전 인류적 차원에서 누구도 딸기와 우유라는 조합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만일 결혼이라는 개념을 바친다면? 자발적으로 결혼하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 건 촌스러운 거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점차 그런 사회적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아예 잊게 될 것이다. 대신 동거나 지금은 없는 개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공동 육아 체재가 대유행하게 될까?


 “그런데 이걸 바치면 세상에서 그 개념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데, 괜찮은지는 둘째 치고 가능하긴 한 건가요? 우리 손에 있는 물건을 건네주듯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자가 마법사에게 물었다. 아직 대마법 발동 경험이 없는 제자는 미심쩍은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으며 말했다.


 "행성 충돌로 다 죽게 생겼는데 뭔들 안 내놓겠어? 이미 UN과 각국 정부의 협조로 인류의 60%에게 동의를 받아 왔어. 인류의 절반 이상만 동의하면 발동되는데 문제없어. 이건 마법이라기보다는 권한 문제야. 정당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내놓으면 서쪽의 마왕이 알아서 가져갈 거야. 우리야말로 정당한 권한을 가진 전무후무한 인류 전권 대사지.”


 “으아. 실감 안 나네요.”


 제자가 꼬질꼬질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예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뭘 바쳐야 서쪽의 마왕이 만족할지나 생각해보자. 부족하면 또 다른 개념을 바쳐야 하고, 넘치면 모두가 잊기 전까진 전 인류적으로 욕을 먹을 거야. 쳇. 세상을 구해도 이래저래 욕먹는 일뿐이군...”


 “하하. 그러게요.”


 마법사와 제자는 가볍게 웃었다. 한달간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죽을 듯한 압박감에 시달린 끝에 큰 문제가 해결되어서 이제 그 이후의 문제를 가지고도 이야기를 하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마법 수식을 완성하지 못하고 인류 멸망을 맞이하나 싶었으나, 천재 제자의 새로운 발상 덕에 겨우 단서를 잡고 일주일 만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이루고야 말았다. 이제 제물이 되는 개념을 정하면 되는 단순한 문제만 남았다. 고르는 것이 문제지 이제 인류가 살아나는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웃을 일이 아니긴 하네. 서쪽의 마왕은 한번 받은 게 부족하다고 돌려주지 않아. 적립되지도 않고. 한 번에 딱 알맞은 제물을 바쳐서 서쪽의 마왕을 만족시키는 게 제일 좋겠지. 인류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쪽의 마왕이 만족할 거야.”


 “많은 사람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없어져도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로 골라야 하네요.”


 마법사와 제자가 심각해졌다. 인류의 구원자로서의 노후와도 직결된 문제였다. 인류의 생존을 다루는 문제에서 중요도가 확 떨어진 듯하지만, 여전히 현명한 선택이 필요했다.


 “일단 인류에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뭘까?”


 “당연히 인류의 목숨이지요.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게 바로 그거잖아요.”


 마법사가 생각해보자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발상이 필요할 때 마법사와 제자는 서로에게 무작정 질문을 던지곤 했다. 제자가 착실하게 필기구를 꺼내 적을 준비를 하며 대답했다.


 “음... 그럼 인류에게 소중한 건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지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럼 역시 국가라는 개념이 아닐까요? 민족은 어때요? 그것 때문에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얼마나 많은 목숨이 버려졌는지 셀 수도 없잖아요.”


 “흠. 그럴듯한데. 하지만 그렇게 보면 역시 종교를 따라갈 수 없지. 십자군 전쟁만 해도 200년이나 싸웠잖아.”


 “국가나 민족도 위험하지만, 종교는 어쩌면 우리가 살해당할 것 같은데요. 목숨보다 종교를 우선시하는 광신도가 복수 할지도 몰라요, ‘내 믿음을 없애려는 악마!!!’ 이러면서요.”


 제자가 앙! 하며 잡아먹는 시늉을 해보았다. 인류 전권 대사치고는 지나치게 귀여운 동작이었다.


 “음. 설마 그럴까? 그래도 인류의 구원자인데.”


 “믿음이 없어지면 지옥 간다고 생각하면 그 전에 자살하거나 같이 죽자고 할지도 모르죠. 아니면 우릴 죽이는 과정에서 타살되길 바랄 수도 있고요. 순교다! 이러면서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수의 목숨이 바쳐진 개념이라고요. 정말 최후의 순간이 아니면 안 건드리는 게... 아!!!”


 “응? 왜 그래? 뭔가 생각났어?”


 마법사가 제자에게 물었다. 제자의 천재성으로 문제를 해결한 지금 제자의 발상은 사소한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 그게 종교보다 더 많은 목숨이 바쳐진 개념이 생각났어요.”


 “뭔데? 종교보다? 그게 뭔데? 사랑?”


 “......아...... 그게 남자가 한번 사정할 때 나오는 정자가 2~3억 마리잖아요. 한번 하는데 그 정도면... 가장 많은 ‘목숨’이 바쳐진 게 아닌가하고 갑자기 생각났어요.”


 22살의 천재 ‘여’제자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자위라는 개념을 바치자? 이 말이지?”


 마법사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혹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 짐짓 표정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자위’라는 개념을 넘기면 충분할 것 같아요. 혹시 실패해도 크게 손해는......”


 “아니! 안돼! 분명 성공할 테지! 그럴 수밖에! 하지만 그런 걸 바치면 우린 반드시 살해당한다! 다른 걸 생각해야 해!”


 표정 관리에 실패한 42세 노총각 마법사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근거를 말하지 않는 것이 마도(魔道)라는 학문을 다루는 학자답지 않았다. 제자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마법사를 바라봤지만, 마법사는 인류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바늘 하나도 들어갈 틈 없는 단호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한 번도 성공 사례가 없어서 뭐가 적당한지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한참을 토론하던 마법사와 제자는 결국 한 번에 서쪽의 마왕을 만족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중요도 순서로 70가지의 물건에 관한 개념과 30가지 제도나 사상에 관한 개념을 적었다.


 물건보다는 제도나 사상이 사라질 경우 파급력이 클 테니 될 수 있으면 물건에 대한 개념으로 만족하길 바라며 일단 없어져도 상관없는 작은 물건 개념부터 던져보며 반응을 보기로 한 것이다. 혹시 서쪽의 마왕이 의외로 욕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행성 충돌까지 겨우 20시간이 남은 터라 주문 의식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대마법 답지 않게 허공에 나타난 마법 진은 수수했다. 거래를 위한 창구만 만들면 되는 것이라 허공에 뜬 마법 진은 일종의 차원 전화기였다.


 마법진이 반짝거리며 연결을 알리자 마법진을 통해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마법사와 제자의 영혼을 짓눌렀다.


 "크윽..... 제물을 바치니 소행성을 파괴해서 인류를 구원해 주십시오. 제물은..."


 마법진을 통해 서쪽의 마왕이 관심을 가졌다는 느낌이 심령으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서쪽의 마왕은 ‘과일 통닭’, ‘파인애플 피자.’ ‘정어리 파이’ 등의 음식 7가지를 받고 침묵했고, ‘삐삐’, ‘워크맨’, ‘필름 카메라’ 등의 물건 개념을 7개째 받고도 마법을 발동할 기미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머릿속에서 개념들이 흐려지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던 마법사가 말했다. 벌써 준비한 100번째 개념부터 86번째 개념까지 바쳐버렸다. 마법사는 아예 미동도 없는 서쪽의 마왕을 만족시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단번에 위쪽에 적은 개념으로 넘어갔다.


 "제물로 '비키니'를 바치니 소행성을 파괴하여 인류를 구원해 주십시오."


 31번째로 적어 놓았던 ‘비키니’ 개념을 바쳤다. 마법사가 마련한 제물 후보 물건 개념 중에 가장 위에 적어놓은 것이다. 이 위로는 1번 종교에서부터 30번 결혼까지 제도나 사상에 관련한 개념들이었다.


 비키니 개념을 받은 과묵한 서쪽의 마왕이 만족의 의미로 말없이 연결을 끊었다. 마법 진이 빛을 내며 사라지고 압박감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으...... 죽는 줄 알았네. 그런데 방금 마지막에 웃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서쪽의 마왕도 남자인가요?”


 언제 쓰러진 것인지 쓰러져 있던 제자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마왕이 그런 게 있을 리가? 아니, 그런가?”


 마법사가 약간 멍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스승님. 우세요?”


 “......아니거든.”


 “좀 더 기뻐하자고요. 인류 목숨과 비키니라면 싼 거죠."


 "...아냐. 인류는 오늘 큰 희생을 치렀어."


 "...네."


 제자는 역시 사람은 위기 앞에서 진면목이 보인다는 격언을 잠시 떠올렸다. 평소 현자의 풍모를 가지고 여유로운 중년 미를 풍기던 마법사의 모습은 어디 갔단 말인가? 살짝 존경심에 금이 갔지만 예의 바른 제자는 마법사가 근엄한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모른 체 해주기로 했다.

 

 "와. 하늘 참 예쁘네요. 이제 인류는 구원받았어요.”


 마법사와 제자는 창문 밖으로 서쪽 하늘에서 솟아오른 빛이 우주 저편으로 뻗어가는 장관을 바라보았다.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 같았다. 빛의 창이 뻗어간 궤도에서 하늘 한편이 잠깐 번쩍였다. 소행성이 소멸하는 모습이었다.


***


 그 후 마법사와 제자는 인류의 구원자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았다.


 마법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비난을 받아들였고, 제자는 비키니가 완전히 사라져서 협박 편지가 오지 않을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전 인류적으로 래시가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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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dayhumor.com/?readers_3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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