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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오늘을 경축하라 [딴지일보]
게시물ID : humorbest_3069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터제길슨
추천 : 138
조회수 : 3146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0/10/27 03:31:19
원본글 작성시간 : 2010/10/26 21:03:10

[정치] 오늘을 경축하라.


2010. 10. 26. 화요일

물뚝심송 

 

 

솔직히 나도 인간인데, 어떤 한 인간의 죽음을 경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을 1.2초간 해 봤다. 그러나 바로 뒤이은 생각.

 

어떤 인간의 죽음은 다른 수많은 인간의 탄생보다 더 축하할 만한 일일 수도 있으며, 이것이 결코 휴머니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따라 들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죽음 자체를 경축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독재자들이다.

 


백기완 선생은 1979년 10월 27일 아침, 아침진지를 드시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숟가락을 집어 던지면서 만세를 부르셨다고 한다. 비록 이제 머리가 허옇게 센 할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기완 선생의 그 기백에는 언제나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그 분께서 어떤 한 인간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뜨던 숟가락을 던지며 만세를 부르셨다는 건, 이 사건이 얼마나 경축할 만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알려준다. 어지간한 넘 아니면 그 분께서 죽음의 소식 앞에 그런 행동을 하겠느냐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평생을 교육자로 일을 하셨다. 산골짜기 어느 국민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다.)의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하필 그날 당직을 서고, 새벽에 아침을 드셨다고 한다. 역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어떤 인간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숟가락을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밥상을 뒤엎고 뛰어나가 학교 운동장 한켠에 있는 몇십년 이상 된 거대한 느티나무 주변을 춤을 추며 돌면서 만세를 부르셨다고 한다. 도대체 이 인간은 어떤 인간이길래, 자신의 죽음 소식 앞에 건실한 교사가 이런 추태를 부리게 만든단 말인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내가 이 소식을 들은 것은, 학교에 가려고 아침을 먹는데 당시 재미있게 듣던 라디오 연속극은 안나오고 계속 음울한 노래만 나오던 방송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죽었다고 엄청나게 비장한 목소리아나운서가 읊어대던 덕분이었다. 그래봤자 6학년 짜리가 뭘 알겠나. 나에겐 그의 죽음보다 학교에 지각하면 선생님한테 혼난다는 생각 뿐이었다.

 

허겁지겁 학교엘 갔는데, 이게 웬 땡인가~ 공부를 안 한다. 수업을 안하고 선생님들끼리 다들 모여서 수근거리기 바빴다.

 


입빠른 어떤 녀석이, 대통령이 죽었다고, 이제 북한에서 김일성이 쳐들어와서 전쟁이 나는 거라고, 우리집은 벌써 피난갈 준비를 다 해놨다고 떠들었다. 난 한편으로는 불안하면서도, 반박을 했다. 아니야, 우리의 국군장병 아저씨들이 싸우면 북한 늑대들한테 이긴다고 그랬어. 우리가 이기는 데 왜 피난을 가? 이러고 대들었다.

 

그것도 잠시 수업도 안하는데 교실에 모여있으려니 좀이 쑤셨던 우리들은 교실 뒤켠에서 종이를 뭉쳐 공을 만들어 차고 놀고, 여자애들은 짝을 지어 쎄쎄쎄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좀 있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오늘은 휴교라고 집에 가라고 했고, 앞으로 얼마동안 휴교를 할지 모르니 라디오 방송을 잘 들으라고 얘길 해주셨다.

 

난 누군지도 잘 모르는 그 죽은 사람에 대해 엄청난 고마움을 느꼈다. 전쟁이고 나발이고 피난이고 뭐고 간에, 난 학교 안가고 노는게 지상에서 제일 행복했던 것이다. 그 시절은 원래 그랬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기대했던 전쟁은 터지지 않았고, 난 중학교에 들어갔다. 어른들은 주눅이 든 표정으로 어깨를 웅크리고 돌아다녔고, 동네에선 맨날 애들 패던 양아치 같은 형 하나가 어디론가 끌려갔다고 어른들이 쉬쉬 하면서도 좋아하던 기억도 난다.

 

그러던 세월은 드디어, 80년 5월로 향하게 된다.

 

이 인간의 죽음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게 전부다.

 

아, 한가지가 더 있다. 그 인간의 죽음에 뒤이어 국상 행렬이 있었다. 무슨 임금님이 죽은거 마냥, 길거리에는 흰옷을 입은 할배 할매들이 넘쳐났다. 할매들은 다 엉엉 울고 있었다. 난 왜 저러는지 이해를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들에게는 임금님이 돌아가신 거였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지금 오늘이다.

 

해방이후 이승만의 권력욕에 의해 남한의 역사가 왜곡되고, 모순으로 점철된 그지같던 시절에 도저히 상상을 하기 힘든 일이 이 땅에서 벌어졌었다. 민중의 손으로 자신들의 리더를 갈아 치운 세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사건. 바로 4.19 혁명.

 

어떤 개새끼는 한국의 민중은 들쥐떼와 같아서~ 어쩌구 씨부리면서 이런 노란둥이들에게 민주주의는 개뿔~ 하는 비아냥이나 들어야 되고, 당장 하루 세끼 먹을게 없어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꿀꿀이 죽으로 연명이나 하는 수준의 이 땅에서, 가장 극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발호를 군홧발로 무참히 짓밟아 버린 놈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놈은 군복을 벗고 이 땅의 대통령이 되었고, 유신 체제를 도입하여 종신 총통이 되었다. 그 놈이 지배한 암담한 세상은 무려 18년.

 


아무도 대들 수 없을 것 같던 그 철권통치가 무너진 날이 바로 오늘이다. 단순히 한 못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공포에 짓눌려 살게 만들었던 그 체제 자체가 내부의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 날이 바로 오늘이다.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미명하에, 역사를 팔아먹고, 못 가진자들의 피를 빨아 가진자들을 더욱 더 졸부로 만들어주고, 권력에 빌붙는 자들에게 대를 물릴 호의호식을 제공하던 그 시스템이 깨져 나간게 바로 오늘이다.

 

정의는 국에 말아 먹고, 자신을 위한 지역감정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밥그릇과 총칼로 위협하여 줄을 세우고, 가장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바로 그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던 그 체제가 무너진게 바로 오늘이다.

 

비록 민중의 힘으로 그를 끌어내려 단두대에 보내었던 것은 아니라는 일말의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완벽한 권력은 내부에서 붕괴한다는 역사의 진실을 또 한번 우리에게 알려준 날이 오늘이다.

 

난 이날을 경축한다.

 

한 인간의 죽음을 경축하며, 그 인간이 구축한 야만적인 체제의 붕괴를 경축한다. 그리고 이 날을 경축하면서,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야만적인 체제가 다시 돌아올 수 없도록 우리 모두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함을 얘기하고 싶다.

 

우리가 오늘을 경축할 수록 더 마음에 깊이 새겨둘 일이 있다. 세습이건 아니건, 그 인간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습이건 아니건, 그 인간의 유산을 물려받은 한 여성 정치인이, 생물학적인 핏줄 뿐 아니라 정치적 자산도 물려받은 채 살고 있다. 그것 뿐이랴.

 

오늘의 주인공인 그 야만적인 체제의 주인공이 강탈한 재산까지 물려받아 떵떵 거리며 편안하게 정치를 합네 하면서 쇼를 하는 그 여성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정치인의 지지율이 차기 대선 후보자들 중에서 제일 높다는 이 비루한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서 그 야만성을 회복하기만을 꿈꾸고 있다.

 

경축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진정한 경축은 그런 야만이 우리 곁에서 완전히 사라진 날에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무슨..

 

경축 할만한 날에 경축 하나 맘대로 못하고, 다시금 신발끈을 조여매야 하는 이 세상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경축할 때는 화끈하게 경축하자.

 

오늘 저녁 각자의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각자의 취향에 따른 술잔을 들어라. 그리고 외치자.

 

 

 

잘 죽었다. 이 독재자 새끼야.

http://www.ddanzi.com/news/485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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