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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산, 토모에 마미
게시물ID : animation_3070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6
조회수 : 70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2/04 23:05:49



 하늘이 소란스러웠다. 이슬비 내린 땅과 같은 차분한 내음새는 없었고, 한없이 쏟아지는 물의 무게가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 때의 마지막 날이었다. 예의를 차릴 없는 검은 옷이랄 게 없던 나는 장례식 내내 검은 옷만 입던 건 아니었지만, 마지막 날엔 옆집 아주머니가 도와주셔서 흰 셔츠와 회색 가디건, 그리고 검은 치마로 구색을 갖추었다. 회색 가디건도 그나마 아주머니 딸의 어릴적 옷이었다. 그런 조합조차도 장례식에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느꼈다. 나는 여전히 한 팔엔 교통사고로 다친 팔에 불편하게 부목을 덧대고 있었다. 불편하고 무거웠으며, 체온에 의해 미지근하게 데워진 부목은 그 느낌이 싫었다. 장례식 기간 동안 통원하던 병원에서 나는 그런 사실을 굉장히 칭얼거렸던 걸로 기억한다. 간호사들은 늘 미안해하면서 허둥거렸다. 그 모습을 위안으로 삼을만큼 나쁜 아이는 아니었던 나지만, 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 때의 마지막 날이었다.


잠시 집에 가서 우산 가져오렴


 가까운 친척이 없었기에 장례식장을 지키는 것은 나였다. 하지만 병원도 가야하고,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어린아이였기에 가끔은 집에 가서 쉬는 것을 배려해주었다. 일주일간의 일정은 그런 배려 속에서도 힘겨웠다. 그런 때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날엔 비가 오지 않아 미쳐 우산을 챙겨오지 못했는데, 마지막 날이었기에 비를 막을 우산이 필요했다. 비는 무거웠다.


 「아무거나요...?


 「그래, 괜찮아


 나를 쭉 도와주셨던 아주머니는 어서 다녀오라며 자신의 장우산을 건내줬다. 이렇게 떠올리고 있자니 많은 도움을 주신 그 분과 연락이 되지 않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슬프다.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의 희미함을 떠나, 건내받은 우산은 검고, 컸다. 이 우산을 사용해도 되지 않나 싶었지만, 받아들어보니 우산은 무거워서 어린 시절의 내가 몇 시간 씩 들고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끄덕이고 집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에서는 언제나 조용히 구석에 앉아있던 큐베가 내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큐베는 며칠동안 조용했었다. 계약을 맺고 내가 병원에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 장례식장에서는 그러했다. 워낙 사람이 많았고, 내가 허공에다가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큐베는 조용히 말없이 그곳에 있었다. 함께 도착한 집은 물 속에서 혼자 서있었다. 언제나 친구들에게 멋진 집이라고 칭찬받았던 아름다운 집이었고, 빗속의 집은 왠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상했다. 들어간 집은 외견만큼이나 고요하고 괴괴했다. 아빠가 고쳐놓지 않은 삐걱거리는 현관문. 나는 더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우산이 있을 현관의 신발장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집에서 쉴때도, 잠들때도, 나는 복도와 나의 방만을 다녔다. 그 이상은 싫었고, 닿지 않았다. 신발장 문은 가볍게 열린다. 소리조차 없다. 나는 안을 둘러본다. 바닥의 우산통 속에 우산 몇 개가 보였다. 나는 현관 불빛으로 내 우산을 찾는다.


 「왜 우산을 또 가져오라고 한거야?


 괴괴함을 깨고 큐베가 그리 묻는다.


 「장례식장에 있는 우산은 나한테 너무 무거워서. 두세시간 넘게 빗속에 있어야될텐데, 맞는 우산을 들고 와야지


 그렇구나, 라며 큐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순수한 호기심인 듯 했다.


 「...없네


 하지만 적당한 우산이 없었다. 어린이용의 작은 내 우산들은 노랑, 주황 등의 밝은 색으로 장례식장에 들고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 사실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혹시나 접는 우산 중에 검은 게 없을까 싶었지만, 레이스 달린 검은 양산 하나 정도가 접히는 것의 전부였다. 검은 우산은 모두 크고 긴 것들 밖에 남지 않았다.


 「없네


 다시금 뱉는 말은 약간 소리가 갈라졌다. 밝은 색의 우산이 장례식을 망치는 것도 아닐테고, 고작 초등학생 상주에게 장례 예의 범절을 훈계하는 어른은 없었겠지만, 그 때의 나는 싫었다. 부모님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차린다는 강박감이 있었던걸까, 아니면 그 반대였던걸까. 단순히 어린 시절 고집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나마 작은 엄마의 검은 우산을 집었다. 그 우산조차 한번에 꺼내지 못한다. 뭔가에 걸려 있는 듯 했다.


 「네 우산 저기 노란색 아니야?


 내가 긴 우산을 낑낑거리며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던 큐베가 묻는다.


 「, 맞아


 「그런데 왜 큰 우산을 꺼내는거야?


 「장례식에서 밝은 색 우산을 쓸순 없으니까


 대답을 하고 낑낑거리다보니 뭔가 걸려있는 듯한 우산은 갑자기 쑥 빠져나왔다. 반동에 넘어진 건 아니었지만, 튀어나온 우산은 신발장에 있는 아빠의 구두 한쪽을 쳐서 떨어뜨렸다. 갈색, 오른쪽 발이었다. 나는 무거운 엄마의 우산을 들고 멍하니 떨어진 구두를 내려다본다. 현관불이 꺼졌다. 점멸되듯이 시야는 좁아진다. 이 속에서는 하얀 큐베도 안보일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구두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구분되지 않는 어두움이 있었다.


 「왜 밝은 우산을 쓰면 안되는건데?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이 왔다. 묻지 않았으면 했다.


 「장례식이니까


 큐베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다시 대답한다.


 「장례식은 그렇다고 했어. 밝은 일이 아니니까 옷은 검게 입으래. 결혼식은 축하할 일인데 왜 그럼 검은 정장을 입냐고 아빠한테 묻기도 했지만, 제대로 대답 안해주셨어


 아빠의 구두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떠나는거니까 검은색을 쓰래. 어른들이 다들 그렇게 하더라고.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아빠 엄마가 다른 장례식 갈때도 그랬어. ,그런데 있잖아. ,그러게...나도 사실 잘 모르겠어, 큐베. ,누군가 멀리...떠날...때는 노란 손수건을......들잖아? .....그래서....,노란 우산을.....그러니까..노란 우,우산을 들고......우아..아아앙.....우으으아아아아...,엄마랑...아빠...,두분을...후으...으흑...으흑..


 보내줘야하는데.

 노란 우산조차 어두운 현관이었다. 여전히 집은 고독했다.

 





음........그냥 매일매일 쓰는 글입니다.

간만에 조오오오금 나쁘지 않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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