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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반이요(半半二謠)-3
게시물ID : readers_30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후크선장
추천 : 2
조회수 : 3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6/04 23:04:52
 치르의 머리위로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서쪽 저 먼 곳부터 온 붉은 빛은 고된 여행의 피로를 치르의 머리 위에서 풀고 있었다. 머리칼을 흔들면 선홍빛이 털어질 것 같은 석양이다.
 치르는 후크의 배 이물에 앉아 있었다.
 가장 날카로운 빛은 완전히 감긴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치르의 감은 눈 안에서 빛났다. 치르는 그 반짝이는 느낌에 눈을 떳다. 태양은 마지막 붉은 빛의 안녕을 고하고 바다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태양이 빠져버린 지금 바다는 조금 뜨거울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갑판으로 나갔다. 
 황혼의 빛은 따스해 보이지만 치르는 그 따스해 보이는 빛 뒤에 다가올 차가움을 모르진 않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바다위에 흔들리며 살아온 해적들도 마찬가지였다. 해적들은 언제나처럼 다가올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투가 없는 날의 그들이 준비하는 밤은 언제나 럼주 한 병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준비였다. 
 독한 럼주의 맛을 기억해낸 치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럼주는 자신의 취향은 아니다. 그리고 저 독한 술을 나발째 불며 걸어오는 한 팔, 한 갈고리의 남자도 말이다. 
 치르의 뒤까지 다가온 후크는 고개를 하늘로 쳐들어 마지막 남은 한 방울 술까지 자신의 위장으로 이동시킨 후 치르에게 물었다.
 “이봐. 그런데 그 피터팬 개 자식이 어디 있는지 알고나 잡으로 간다는 거야.”
 “후. 당연히 모르죠.”
 치르는 형사다.
 형사는 자신이 잡을 놈이 어디 있을지 가장 궁금해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는 순간을 누구 보다 기다리며 찾아 나서는 자이기도 하다. 치르는 ‘찾아 나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치르는 그 긴 설명을 하진 않았다. 다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때로 자신이 남자라 자부하는 어떤 자들에게 있어 그 미소는 어떤 장담보다 확실하다.
 후크는 치르의 장담을 믿기로 했다.


 치르는 섬을 세분화 했다. 후크해적단이 그린 지도에 섬을 네모난 칸으로 구역 구역 쪼개고 쪼갠다. 그리고 쪼개진 지형에 자신이 가진 자료에 맞추어 확률을 색으로 표시한다. 작업을 반복한다. 그렇게 다양한 가능성에 따른 각각의 지도를 계속 만들어 그것을 중첩시키면 가장 가능성이 큰 부분이 드러나게 된다. 전문용어로는 도면 중첩법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경찰에서 쓰는 방법은 아니다. 이 방법은 원래 입지조건을 따지는 업종에서 최적의 대지를 찾기 위해 쓰는 방법중의 하나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활용 방도는 무궁무진해 지는 것 아닌가. 게다가 치르에게는 후크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치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치르는 그 작업에 필요한 사항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파랑새...아니 피터팬이 살 조건.
 1. 현재까지 아동 납치 사건 발생 8건 이상- 따라서 최소 10여명 이상의 인원이 살만한 공간이 확보될 것. (공간확보 및 식수공급 용이할 것)
 2. 해안에서 눈에 띄지 않는 지형- 후크의 배가 섬을 돌았지만 은신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함. 해안에서 눈에 띄는 곳은 아닐 것. 그러면서 1의 조건을 만족할 것.
 3. 피터팬은 날 수 있음. 일반 적인 도보 접근 방식을 버릴 것. 납치 아동들이 도보로 접근 불가능한 곳에 있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음.
 4. 중앙 지역에서 북부를 제외- 내가 떨어진 장소에서 계속 남하했었음.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날 놓았다고는 보기 어려움. 따라서 북부 제외.
 5. 나무가 치밀한 곳도 제외. 상대는 날아 다님. 날아다니기에 있어 지엽이 치밀한 곳은 시야를 가려주는 역할보다 비행의 장애물역활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됨 - 편백나무, 측백나무 군락등을 제외...
 6...]

 치르는 이렇게 자신이 정한 항목에 따라 지도에 표시를 하고 때로는 제외 시키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갔다. 
 치르는 때로는 후크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작업을 해나갔다. 후크자신도 뛰어난 뱃사람이었고 그는 치르가 원하는 곳을 지도에서 정확히 표시해 나갔다. 
 후크가 섬을 돌며 열심히 관찰했다 하더라도 둘만의 능력으로 섬을 세분화 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치르는 후크에게 놀라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꺼내며 조심스럽게 그가 가지고 후크는 가지지 못한 큰 차이점을 드러내 보였다. 
 그것은 미치르가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섬에 떨어지기 전에 카메라에 담은 섬의 사진이었다. 
 섬의 사진은 가히 기자정신의 정수라 할만했다. 흔들림이 거의 없이 표현된 사진은 디테일하게 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후크는 해적답게 미치르의 사진기를 가지고 싶은 욕망을 가감없이 표현했지만 조금은 다른 해적답게 그것을 표현하는 선에서 그치고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것은 작업의 능률을 증폭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치르의 작업은 달이 머리 위로 뜰 때까지 계속 됐다.

 이곳의 달은 유난히 밝았다. 해의 자리를 대신한 달은 자신이 늘 내려다 보곤 하던 자리에 새롭게 자리한 치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달의 관심덕분에 치르는 작업을 방해 받지 않을 만큼의 빛을 선사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몰두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달빛의 관심마저 지루함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을 때 치르는 도판위에 펼쳐진 네버랜드의 지도위에 두 손을 올려 두고 하늘을 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의 눈으로 별빛이 쏟아 졌다. 

 치르는 어릴 적 별을 보던 때를 기억했다. 밤은 누군가 천으로 하늘을 덮어서 생기는 것이라 했다. 
잘때는 이불을 덮는 법이니까.
 별 빛은 그 낡은 천에 난 작은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빛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면 이 세상은 꽤 많은 밤을 맞이했을 것이다. 천이 낡아버릴 정도의 밤을. 금방이라도 헤져버릴 것 같은...
 치르는 문득 자신이 별을 본 것이 까마득히 먼 어느 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된 책장의 향기가 날 것 같은 먼 추억이었다. 살짝 먼지를 털어내고 머릿속의 책장을 뒤져 보던 치르는 자신의 책장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이 미치르의 책장에도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고개가 옆에 선 미치르를 향했다. 그의 동생도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밤만큼 차가운 얼굴에 작은 별빛 만큼의 따스함이 묻은 것 같았다. 
 -작업은 끝낸건가?
 치르는 현실로 끌려 왔다. 미치르 역시 하늘을 보던 얼굴을 현실로 돌렸다. 그는 한 팔에 달린 갈고리를 다른 손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후크다.
 -끝났소. 생각보다 적은 수로 추려 낼 수 있었소. 내일을 기다리시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에 후크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갈고리에 걸어둔 럼주를 다시 들어 올렸다.
...저 갈고리 참 편해 보인다.
 그리고,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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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다리진 않지만 그래도 끝은 봐야겠기에...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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