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소득재분배 강화·경제력집중 완화·중소기업 보호로 모아지고 있다. 여야의 주장에 차이가 있다면 여당은 현실적 채택 가능성을 고려하는 모습이고, 야당은 구호성 이슈제기에 몰입하는 정도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국민의 삶이 개선된다면 나쁠 것이 없지만, 문제는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정부개입주의·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시장에 대한 통제로 치우치고 있어 경제적 폐해가 크다는 점이다. 경제민주화가 이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는 정치인의 인기영합적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잘못 해석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경제민주화를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의미는 소비자 주권에 있다. 정치분야에서 국민이 정치인을 선택하고, 이들을 통해 정치적 결정을 하는 것이 정치민주주의이듯이, 경제 분야에서 소비자가 선택권을 갖고 경제적 결정을 하는 것이 경제민주주의다.
누가 물건을 만들고 누가 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가? 바로 소비자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기업은 생산할 수 있고 고용도 늘릴 수 있다. 소비자가 어떤 회사의 물건을 많이 산다면, 그 회사는 생산을 늘리고 일할 사람도 더 채용할 수 있다. 반면 소비자가 외면한 회사는 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도 해고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소비자의 권리를 제3자가 대신한다면 경제는 효율성을 상실하게 된다.
특정한 생산자가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기업이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정부가 민간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소비자를 대신해서 선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이다.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특정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 분야에서 소비자와 국민은 선택권을 빼앗기고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다.
더구나 경제문제를 정부가 결정하는 정부주도 경제체제에서는 장기적으로 경제활동의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적 구조로 접근하다보면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만 일어나고 경제행위는 이익다툼을 위한 정치게임으로 타락하게 된다.
정치인은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모든 분야에 결과의 평등을 강요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소득의 재분배는 복지달성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분야에까지 결과적 평등을 강요하는 것은 경제의 효율성을 가능케 하는 경쟁질서를 해친다. 건강한 기업을 만들기보다는 보호에 안주하는 좀비기업을 양산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내놓은 경제민주화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미 과거에 실패했던 규제 정책을 다시 되살린 것들이 많다. 대기업 투자를 가로 막았던 출자총액제한 규제는 그 폐해가 커서 여러 차례 폐지되었던 바가 있다. 또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점이 드러나 폐지되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되살아난 것이다.
국민을 상대로 잘못된 제도를 반복해서 실험하는 일은 사회주의 실패에서 보듯이 폐해가 너무 크다. 특히 소비자 선택의 결과로 나온 대기업을 마치 중소기업의 적인 것처럼 몰아세우면서 대기업을 규제하는 일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또 기업의 규모가 너무 크다고 비판하면서 우리 경제 규모에 맞춰 더 이상 성장하지 말라는 식의 규제를 강요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기회를 봉쇄하고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다.
경제민주화는 자칫 트로이의 목마처럼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올바른 해석과 정책 채택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게 하는 일이다. 그 정책 내용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지 말고 기업의 경쟁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어야 한다. 기업 분야에서 경쟁의 자유는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시장이 커지고 경제적 풍요가 뒤따르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든다. 그 혜택을 나누려면 먼저 개인의 창의와 자유가 꽃 피울 수 있는 성장구조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그리고 발전을 향한 동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경제환경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