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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이 재미없었던 이유.. <스압, 시간날때 보세요;;;>
게시물ID : freeboard_6030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먹고싶다
추천 : 3
조회수 : 5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6/25 13:40:28
사람들은 <건축학개론>을 보며 첫사랑이 생각나고 슬프고 잼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는내내 무미건조하였다. 그 이유는 내 첫사랑이 더 슬프고 아련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내가 가장 순수했었고 내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추억할 수 있는 첫사랑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했다.

1. 첫만남
중3에서 고등학생으로 변신하려던 2000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 친구의 손에 끌려 그 친구의 교회 크리스마스 전야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남중에서 3년을 다녔고 초딩이후로는 여자사람의 미지근한 향이라고는 등교할 때의 버스에서만 맡아봤을 정도로 나는 순수한 아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순수남 인증을 찍으며 남녀가 바글바글 모여있는 커다란 방 구석에서 눈치만 깨작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어울려 노는 것이 지루했고 얼른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찡찡대던 중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김철수(가명, 16)"

다들 알겠지만 대학입학전의 우리는 남녀에 관해서는 전부다 성을 붙여 부르곤 했다. 당신네들은 그러지 않았나? 뭐.. 나는 그랬었다고..;;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난 고개를 들어 보았고 내 앞엔 초딩 6학년 시절을 같이 보낸 은영(가명, 16)가 서 있었다. 

"야. 김철수. 너 여기 왜있냐"

"어?! 신은영.. 난 친구따라 왔는데.."

"응 알겠어 놀아~"

"... ... ..."

그렇게 그 친구는 자기 친구들 무리속으로 돌아갔다. 교회안에서 지루하던 시간이 끝나고 아침이 되어 겨우 집에 가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멀리서 귀여운 여자애가 토끼처럼 폴짝 폴짝 뛰어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니가 김철수야? 나 은영이친구 은희(가명. 16). 어디 살아?"

"저기.. 범어쪽에.. 사는데..;;"

"그래? 그럼 은영이랑 나랑 같이 갈래?"

그제서야 어제 은영이 친구들 무리속에 있던 한 소녀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으응..."

그렇게 그녀와 나는 만났다.



2. 첫 경험
초딩을 무난하게 졸업하고 남중으로 진학해 무난하게 남고로 진학 예정이던 그 해 겨울. 나에게 무난하지 않은 감정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입학 전 마지막 중딩 겨울방학을 유난히 은영이와 은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로인해 ‘버디버디’라는 메신저를 알게 되었고 친구들과 노래방 가는 재미 또한 알게 되었고 ‘임창정’이라는 가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H.O.T’와 ‘유승준’ 노래만 듣던 나는 셋이서 노래방엘 가면 분위기 있는 발라드? 팝? 이런 것보다는 그들의 노래를 목청껏 불러댔다. 참.. 분위기 없는 놈이었다. 

그렇게 나는 차츰 이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들을 만나면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난 그게 사랑이라고 느꼈었나보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에 일주일중 삼사일은 그녀들과 어울렸었고 나는 그녀들중 은영이를 볼 때마다 행복했었고 우린 사귀었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일주일만에 친구로 지내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럴만도 했다. 일주일동안 그저 메신저로 놀고 이메일주고 받고 문자만 했으니 말이다. 연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없었던 순진남의 처절한 결말이었다.

그게 애틋한 감정. 아픈 실연의 첫 경험이었다.



3. 첫 데이트
마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자연스레 우리는 다시 친구로 지내게 되었고 친구로 잘 지냈으며 친구로 잘 지낼 것이라 믿었다. 

겨울방학 중에도 학원을 다닌 나는 유독 현이라는 친구와 잘 어울렸었다. 그러다보니 나와 현이, 은희, 은영이가 자연스레 많이 어울렸다. 그렇게 지내던 중 현이와 은희가 사귀게 되었고 잘 어울렸었고 이뻤다. 현이에게 잘 하는 은희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은희같은 여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은 현이에 대한 질투로 변했으며 결국은 은희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얼마 못 가 그들 또한 다시 친구로 지내게 되었고 은희를 향한 내 마음은 아직 순수하고 여렸던 탓에 그저 가슴속에 묻어두었다. 그저 그렇게 친하게 지내며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은희는 자기네 여고 방송부가 되겠노라 말했고 나 또한 우리 남고 방송부가 되겠다고 말을 하였다. 물론 청소년 드라마에서 나오는 방송부의 모습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 은희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 방송부에 합격을 하게 되고 대면식이나 작은 행사를 통해 몇번 모르는 척 마주쳤으나 으레 언제 그랬냐는 듯 저녁에 메신저에선 폭풍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젊음의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2001년 어느 더운 여름. 현이와 은희, 은영, 나는 그 당시 빅히트를 치던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를 보러가자고 약속을 잡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친구들과 놀면 즐거웠으니 하루하루 기다려졌었다. 그리고 은희와 함께여서 더욱 설레였었다. 

약속했던 주말이 오기 하루 전. 현이와 은영이가 갑작스런 사정으로 영화를 보자던 약속에서 빠지게 되었고 나와 은희의 데이트로 바뀌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뭘 해야하지? 영화보고 밥먹고 와야하나? 카페라도 갈까? 해운대라도 다녀올까? 어쩌지?'

영화 보러가는 순간까지 걱정했던 것 같다. 결국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해운대에서 놀다가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 하지만 난 그때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영화야 몇 번이고 다시 봐서 내용은 기억하지만 내가 은희랑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바닷가를 다녀왔던 기억이 없는 것이다. 이 날 데이트 했던 내용은 훗날 성인이 되어 은희의 말로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랬었노라고.

다시 각설하고.
그렇게 우리 동네에 돌아온 나는 은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출발했다. 어차피 은희집과 우리집과의 거리는 걸어서 5분 거리였기에 천천히 걸어갈려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견우야~~"

나는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그냥 걸어갔다.

"견우야~~~~~"

이번엔 위를 쳐다봤다. 자기집 베란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은희가 보였다. 나는 손을 흔들었고 그녀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견우야 잘 가~~~~~~~"

순간 나는 멍해졌고 부끄러운 마음에 미친듯이 집을 향해 뛰어갔다.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좋았다. 행복했다. 은희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진 몰라도 너무 행복했다. 난 그날 밤 잠을 설쳤던 것 같다.




4. 첫편지
2001년 8월 25일 토요일 날씨 맑음.
오늘 은희한테 편지를 받았다.. 칠월칠석인데 견우가 직녀없이 혼자 궁상맞게 집에 있는거 아니냐.. 오늘 하루는 내가 직녀가 되어 놀아주겠다며 애교섞인 편지를 받았다.. 뭐지? 혹시 은희도 날 맘에 두고 있는걸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 아이는 왜 이러는걸까.. 나는 은희가 너무 좋은데.. 넌 나에게 왜 이러니.. 다음주 주말에 만나자고 해서 내 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 떨리는데.. 너무 좋다.. 오늘은 이만 자야지..

5. 첫사랑
그렇게 나는 고백을 하게 되었고 나는 은희와 사귀게 되었다. 하루 하루가 행복했고 즐거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녀와 정확히 49일을 만났다. 내가 그걸 외우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나의 책상 서랍에는 그녀가 보낸 50통의 편지가 있기 때문이다. 49일간의 편지. 그리고 그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칠월칠석날의 편지. 나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갈려면 그녀의 집을 거쳐가야 했고, 반대로 그녀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갈려면 우리집을 거쳐야 했다. 사귀게 된 날 저녁 나는 학원을 마치고 그녀의 집 앞에서 30분은 족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 5~10분정도 이야기를 하고 올려보냈다. 집에 가는 나는 그녀로부터 우편함을 살펴보라는 문자를 받았다. 마치 수학여행 전날 설레여서 잠을 못자는 초딩만큼이나 두근두근거리며 우편함을 보았고 그안에는 곱게 접혀져 있는 편지 한통이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집에 오면서 우리집을 거쳐 갈 것을 염두해두고 학교에서 편지를 쓴 것이다. 그리곤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우리집 우편함에 나에게 쓴 편지를 두고 간 것이다. 이 얼마나 귀엽고 앙증맞고 기특한 아이란 말인가.. 남자들에게 감동이란 것을 떠먹는 요쿠르트처럼 퍼먹여주는 이런 센스는 과연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나는 집에 가자마자 그녀에게 답장을 썼고 아침 등교길에 그녀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편지를 그녀의 우편함에 넣어두고 등교를 했다. 우리는 그런 생활을 49일동안 한 것이다. 믿기 힘든가? 아직 시작도 안했으니까 너무 놀라지 말아라. 

나는 일주일에 3~4일정도는 그녀 집 앞에서 30분 내지는 한 시간을 기다려 그녀를 만나고 10분정도 이야기를 한 다음 집에 보내었다. 49일동안 스킨쉽은 커녕 손 한번 잡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그 때를 회상하면 이런 생각을 한다..
'아.. 그때의 나는 얼마나 로맨틱하며 플라토닉적이며 ㅂㅅ같은 짓거리였나..'

49일째 되던 날.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를 기다리고 만나고 올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녀에게서 한통의 문자가 왔다. 

[철수야.. 지금내가]
[사귀고있는사람이]
[친구였을때가더좋]
[았던것같아..미안]
그랬다.. 나는 몇달동안 좋아해서 사귀게 되었던 친구에게 49일만에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나는 그녀를 잡을 수도 없었고 어버버버버.. 하며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고 받아들여버렸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이 나는가 싶었다..



6. 타임캡슐
다시 친구로 돌아오게 된 나와 은희, 그리고 그런 우리 옆에 있던 은영. 너무도 당당하고 매력적이고 활발하고 공부도 잘하고 모든 것을 갖춘 그녀들에게 나는 한없이 초라해보였다. 잘 노는것도, 얼굴이 잘생긴것도, 몸매도 좋은것도, 그 무엇도 그녀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굳이 찾자면... 좋은 성격? ;;;; 

2002년 고2가 된 우리는 월드컵으로 전 국민이 흥분될 준비를 바싹바싹 하고 있을 무렵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우리동네 뒷산에 타임캡슐을 묻기로 했다. 그 때 당시에는 아직 식목일이 법정 공휴일이었던 터라 우리는 별 무리없이 계획을 세웠다. 4월 4일에 각자가 쓴 일기와 서로에게 쓰는 편지. 그리고 작은 소품들까지 해서 동네 뒷산에 묻고 우리가 준비해간 화분을 그 표식으로 묻기로 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명장면 중 하나인.. '견우야~~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봐..'라고 외치는 장면이 우리집 뒷산에서 촬영을 했었다. 앞선 언급했듯이 우리는 그 영화에 빠져있었고 그 영화를 따라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런 타임캡슐 에피소드도 생겼을지도.. 아무튼 우리는 편지와 일기, 소품들을 가지고 타임캡슐을 묻고 그 위에 우리가 준비했던 수목을 심었다. 그리곤 3년 뒤에 파보자는 약속을 하며 웃으며 내려왔다. 그리곤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갔다가 해가 떨어질때 쯤에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7. 나는 소심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나는 남중 남고를 진학하여 대학에 갈 때까지 이성친구들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실제로 이성을 만났을 경우 말을 잘 못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메신저에선 유재석 썩 물러가라! 할 정도의 화려한 말빨을 자랑했었지만 실상은 다른 법. 현실에선 그저 남중 남고를 나온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날은 화창한 가을쯤 이었다. 토요일이라 수업을 마치고 몇몇 친구들과 터미널쪽으로 걸어가던 중 우연치 않게 롯데리아 앞에 서 있는 은희를 보게 되었다. 지금 같았으면 뒤에 있던 친구들을 버리고 그 아이에게 가서 밥은 먹었느냐, 뭐할꺼냐, 놀러가자, 등등의 화려한 입담을 펼쳤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눈을 돌려버렸다. 알고 지내는 이성친구가 있다는 것이 쑥쓰럽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지나쳐 갔고 그날 저녁 그녀는 메신저로 들어와 나에게 첫마디로 건낸 것이 롯데리아 앞에서 봤지 않냐 라는 것이었다. 

'응.. 봤어..'
'근데 왜 못본척 했어?'
'그게.. 그러니까..'
'철수..넌 오프라인이랑 온라인이랑 모습이 너무 달라.. 앞으로 연락 안했으면 좋겠어...'
'은희야..'
'은희야???'

나의 쪽지에 대답도 없이 그렇게 그녀는 나를 떠나갔다.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것처럼.. 가지고 놀다 싫증이 난 장난감을 버리듯.. 그렇게 버려졌다.. 2002년.. 어느 가을 날이었다. 


8. 드디어 그 날..
그렇게 헤어졌던 그녀와 나는 가끔 같이 활동하던 방송부 생활이외에는 전혀 연락할 방법도 만날 일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난 멀어져갔지만 그녀에 대한 갈망은 더욱 더 커져갔다. 그렇게 고교생활을 마치고 대학교로 진학하였다. 그곳은 나의 중고딩때의 모습을 모르는 친구들로 가득차 있었고 거기서 나의 병적인 이성에 대한 소극적인 모습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일부러 이성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작은 스킨쉽도 해보고 남들앞에 나서는 간부직까지 도맡아했다. 그래서인지 내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고 나름 주위의 평이 좋았었다. 그렇게 일년동안 나름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갔고 내 나름대로의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다. 내가 세운 계획이란 다름이 아니라 타임캡슐을 찾아보기로 했던 약속의 그날. 내가 적극적인 모습과 예전과는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녀가 다시 나에게로 올 것 같은 느낌에서 시작된 계획이었다. 그렇게 일년간 노력을 했고 그녀에게 잘 보이려 했던 노력이 나에겐 너무 좋은 기회로. 좋은 성격으로. 바뀌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넘쳐났었다. '김철수'라는 그릇에 비해 너무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오은희'의 사랑은 받지 못했으니 문제였다. 그렇게 2004년 12월 31일.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나는 키운트를 세었다..

10..
9..
8..
..
..
3..
2..
1..

Happy New Year!!!!!!!

모두가 환호하던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넉달 뒤. 은희를 만나는 날이다. 이젠 내가 당당하게 얘기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4월이 왔고 4월 5일 식목일이 왔다. 지난 3년간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으며 최근 일년동안은 얼마나 노력하였던가.. 하지만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날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 글을 보는 당신. 잠시 상상해보자. 내가 왜 그자리에 못나갔을까? 정답은 밑에 있으니 성급히 내리지말고 잠시 생각해보라.. 그리고 스크롤을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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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날

못나갔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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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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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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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4일.. 오후 2시..
약속을 하루 남겨두고 나는 2005년 4월 4일 공군 624기 현역으로 입대하였다..


3년을 기다려온 그날을 하루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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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실제이며, 
성인이후의 이야기는.. 반응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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