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믿고 지키시는 분들께 긴급 문자입니다! 11월 국회에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이 통과 준비 중이랍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롬 1:27, 레위기 18:22 등의 말씀이 설교 금지 됩니다. 동성애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전하게 되면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에서 금요일까지 여론수렴 중이라니 꼭꼭 모두 한 마디씩 부탁합니다. 귀찮다고 문자 무시하지 마시고 꼭 www.moj.go.kr(법무부 홈페이지) 접속하셔서 국민광장▷대화의장▷자유발언대 들어가셔서 글 하나 남겨주세요. 2007년에도 동일한 일이 있었는데 긴급기도와 많은 사람들의 항의 글로 승리했었습니다. 주위에도 이 문자를 돌리시고 이 소식을 알리셔서 함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도와 소리(글)이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부탁드려요!"
점심 시간에 온 장문의 문자를 받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했다. 지난 22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와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또 다시 문자가 오기에 무슨 일인지 알아봤다.
■ 팩트(fact)와 의견을 구분하자
1. "11월 국회에서 동성애 차별 금지법이 통과 준비 중" (거짓)
대한민국에서 법이 제정되려면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① 법률안 제출 : 10인 이상의 국회의원 또는 대통령 ② 법률안 심사 : 국회 소관의 상임 위원회 ③ 법률안 투표 : 국회 본회의에 회부하여 투표 ④ 대통령에게 전달 : 공포 혹은 거부 ⓐ 공포 시 : 공포 20일 후부터 효력 발휘 ⓑ 거부 시 : 국회에서 다시 표결하여 통과되면 공포와 동일한 효과 발생
제출된 법률안은 국회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동생애 차별 금지법'은 올라와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국회 홈페이지 > 정보광장 > 법률관련정보 > 최근 접수 법률안)
제출되지도 않은 법률안이 11월 국회에서 통과 준비 중일 수는 없다.
2. "법이 통과되면 롬 1:27, 레위기 18:22 등의 말씀이 설교 금지" (의견)
제출된 법률안이 없는데 실제 항목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다만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법률안을 준비하는 사람이 위 항목을 넣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팩트가 아닌 의견이다. 그리고 만약 위와 같은 문구를 법률안에 넣었다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행동이기에 헌법 소원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
3. "법무부에서 금요일까지 여론수렴 중" (거짓)
그런 거 없다. 여론 수렴을 하려면 공지를 해야 하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공지가 없다. 검색해서 찾은 차별금지법 관련 글 4-5개는 2007년에 작성한 것이고, 가장 최근 글은 2010년 8월 13일에 올라왔다. 하지만 여기 포함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자료> 역시 2007년도에 만든 것이다.
4. "자유발언대 들어가셔서 글 하나 남겨주세요" (의견)
벌써 많은 분들이 글을 올리셨다. 20개 정도 읽어봤는데 법에 대한 논리적 접근보다는 감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기본적으로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에 가서 항의글을 올려봤자 소용없다.
■ 이런 상황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2010년 10월 8일자 국민일보 광고에서 시작된 듯 하다.
'동성애 차별 금지법'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개인 홈페이지의 글은 대부분 출처를 <국민일보>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니 기사가 없어 의아했는데 조금 더 알아보니 '기사'가 아닌 '광고'라는 걸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문의 광고는 돈을 내면 누구나 올릴 수 있다. 최근 팬클럽에서 연예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싣기도 한다.
그러니까 아직 법률안이 제출되지도 않은 '동성애 차별 금지법'에 대한 의견은 언론 매체인 <국민일보>의 기사가 아니라, 광고를 낸 <동성애차별금지법반대 국민연합, 바른교육을 위한 교수연합, 나라사랑학부모회>의 의견이다.
광고의 7가지 항목을 하나씩 생각해보자.
① 1번은 2007년도에 작성된 '차별 금지법' 법률안을 과대 해석한 경우다. ⓐ 한국 교회의 현재를 생각할 때 동성애자를 목사로 초빙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 영국에서 벌금형을 받고 쫓겨난 미국인 목사, 영국에서 팜플렛을 나눠주다 체포된 영국인 목사 얘기는 네이버에서는 검색이 안 된다. 영문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해당 기사 원문 전체를 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 ② 2번은 영화 내용을 과장했다. ③ 3번, 5번은 의학적 소견이 아닌 사회적으로 잘못 확산된 생각일 뿐이다. 의학적으로 AIDS의 발병 원인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특정 의학 논문을 예로 들 수 있겠지만, 그 반대 의견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주장하는 의견에 맞는 논문(또는 지식)만을 취합하는 건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④ 6번, 7번은 의견이다. 7번은 일부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과대 해석했다. 동성애자의 노년 만족도에 대한 통계적 조사는 아직 보질 못했다. (있으면 알려달라.)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 불교로 개종한 후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인터뷰를 했다 해도 누구도 이를 전체 기독교인의 의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1.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동성애 차별 금지법'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이는 국민일보에 광고를 올린 단체에서 2007년도에 상정된 '차별 금지법'의 일부 항목을 확대하여 부르는 표현이다. 2010년에 또 다시 상정될 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실체가 없는데(11월 국회에서 통과 준비 중이라는 법안), 결과(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가 존재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다. 동성애가 법률적으로 인정되면 대한민국이 동성애자로 들끓게 될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 되고 그 결과로 인구가 줄 것이다 등등.
'포비아(phobia)'는 공포증이라는 뜻의 단어로 앞에 다른 단어를 붙여 완성형이 된다. 예를 들어 국어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네크로포비아(necrophobia)는 극단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정신병을 말한다. 낮에 받은 문자를 바탕으로 정보를 수집하며 느낀 건 기독교인의 '호모포비아'다. 동성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만 조사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fact)을 외면한 채 법무부 홈페이지에 연달아 글을 쓰게 만든다.
동성애가 법률적으로 인정되는 나라에서도 동성애자는 여전히 소수자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를 보며 바로 교육비를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동성애 결혼보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 분위기를 출산을 방해하는 큰 요인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2. 차별 금지법은 정말 문제인가
동성애는 지금도 분명 존재한다. 멀리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에서부터 가까이는 우리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 덮어놓고 쉬쉬하기보다는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에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을 할 수 없거나, 직장에서 쫓겨난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려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당한다면 국가는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종교 개혁자인 칼뱅(Calvin)은 제네바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 했다. 그 와중에 수없이 많은 사람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죽인 마녀사냥은 개신교의 부끄러운 역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동성애는 기독교에서 금하는 것이다. 이를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려 하면 안 된다. 기독교의 율법이 세상에서 통용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독교의 입장과 세상의 법을 구분하여 생각해야 한다.
동성애자니까 차별 받아도 마땅하다는 건 사회적 폭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에 찬성한다.
3.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2010년의 대한민국에 예수가 오신다면, 예수께서는 동성애자를 어떻게 대하실까?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하실까? 그렇다면 상황은 간단하다. 구약의 율법이 말하는 바대로 되었으니 문제될 게 없다. 동성애자 없는 세상에서 예수와 함께 하면 된다. 그런데 혹시라도 내가(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게 예수께서 말할 수 없는 긍휼함으로 그들을 감싸시면 나는(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께 구약의 율법을 들이밀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져야 하는가, 아니면 그의 사랑에 동참해야 하는가.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때 스스로에게 묻는 건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이다. 2000여년 전 유대 땅에 오신 예수는 세리, 창녀, 이방인을 찾으셨고, 그들의 벗이 되셨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당시의 세리는 로마를 위해 일하는 자들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매국노였다. 창녀는 또 어떤가. 율법, 그 중에서 대표적인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중죄인이었다. 그리고 이방인은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구원받지 못할 자였다. 그런 이들과 함께 하는 예수를 당시의 종교지도자인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비난한 건 당연하다.
'2010년의 대한민국에 예수가 오신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했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존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의 나에게는 2010년의 대한민국에 계신 예수는 가정이 아닌 현실이다. 내가 아는 예수는 어떤 분인가? 어떤 선택을 하실까?
동성애를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건 쉬운 일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건 언제나 쉽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 사안을 간단히 둘로 나눌 수 없다. 현실에 뿌리박은 기독교인은 동성애에 대해 고민하며 예수의 뜻을 물어야 하겠다. 법무부 홈페이지에 달려가 글을 남긴 분들이 열기가 식은 후 차분히 상황을 돌아보며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 법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지목한 정치인은 강기갑(민주노동당), 권영길(민주노동당), 노회찬(진보신당) 세 명이다. 법률안을 상정하는 데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걸 감안하면 현재 국회의원이 아닌 노회찬 씨가 지목된 게 묘하다. 또한 10명 중 3명만 콕 집었는데 우연히도 진보 세력이라는 것 또한 묘하다. 한나라당 모 의원 홈페이지에는 국민일보에 실린 광고가 기사인 것처럼 글로 올라와 있는데 정치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사가 아닌 광고를 기사처럼 올렸다는 게 묘하다. 일련의 일들이 기독교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기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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