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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숟가락과 와루바시#3
게시물ID : humorstory_1339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1
조회수 : 20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7/02/26 08:59:48
3.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려던 수호와 시원이의 계획은 아침부터 끊임없이 울려대

는 전화벨 소리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아침에는 웬만하면 전화벨 소리를 무시하는 둘

의 공통된 성격 덕분에 한 두번은 무난히 참고 지나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전화벨 소리는 어찌 그리도 끈질기던지 쉬지도 않고 계속 울려댔다. 정말 대단한 인내심

의 소유자이거나 정말 급한 전화일 것이었다. 수호는 시원이를 발로 냅다 후려 침대에서 

떨어뜨리며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야 이 샹넘아, 전화 받아!"


"이런 개같은...아침부터 웬 놈이야?"



팬티 러닝 바람에 엉거주춤 일어난 시원이는 눈을 비비며 전화를 찾아댔다.

그리고 전화기를 손에 든 순간 전신에 밀려들어오는 경련이 극심하였음은 수호가 딱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야 너 왜 그래? 옛 헤어진 애인한테라도 전화왔냐?!"


"욱...우웳뷃 쿠헭...뿌퀙....우오오오오...."



순간 수호는 움찔하고 뒤로 물러서며 시원이를 조심히 관찰하는 것이었다.



"야 너 외계인이라도 만난 거냐?"


"너 전화기잖아, 이 개같은 년아."



욕을 남발하며 날라간 시원이의 하이킥은 정확히 수호의 안면부를 강타하며 입에 개거품

을 물게 했다.



"쿠헉...미안. 흠흠, 여보세요?"


"너냐?"


"너는 누군데 나보고 너라는 거냐?"


"나 시진이다, 뭐하는 짓이야?"



시진이가 대뜸 반말부터 하는 걸 보니 되게 화가 많이 난 상태인가 보다.



"지금 거신 전화는 일본지역에 연결이 되었사오니 국제 전화비가 무서우신 분은 지금 당

장 끊어주시기 바랍니다."


"뭐? 일본?! 너 진짜야?"


"응. 시원이 알지? 걔랑 그냥 여행온 거야."


"뭐?! 이시원? 그 자식은 뭔데 오빠랑 같이 간 거야?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냥 갔어? 

허락받으라고는 안 했잖아..최소한 말은 해줘야 되는 거 아냐?"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시원이는 화들짝 놀래며 수호를 달랬다.



"얌마, 왜 내 이름을 대고 그래? 나 시진이 무섭단 말이야...그냥 다른 애랑 왔다고 바꿔

서 말해."


"야 전화하는데 옆에서 얼굴 가까이 붙이고 침 튀기지 마. 흠흠...시진아 내가 왜 너한테 

말을 해야 되냐?"


"그야...너는 내 꺼니까..."



시진이도 아직은 학생이고 여자라서 그런지 저런 말을 하고 쑥쓰러워하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수호가 보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내숭이었다.



"그만하고 끊자 여기 오니까 이쁜 일본 여자 수두룩하다. 끝내주는 여자 하나 데리고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옆에서 시원이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너는!!"



딸칵, 하고 시진이가 말하는 중간에 수호는 전화기를 접어버렸다.



"오빠? 오빠?! 으아아아악."





시진이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던져버렸다. 핸드폰은 벽에 부딪치더니 둔탁한 소리를 

내며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진이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두고 봐, 반드시 나에게 오게 만들 테니..."



시진이는 방금 있었던 일을 다 잊었기라도 한 듯이 금방 표정을 싹 바꾸고 학교 갈 준비

를 서두르고 있었다.

집은 아무도 없는 듯 휭하니 찬 공기만 방을 가르고 있었다. 하지만 시진이에게는 언제나 

그랬듯이 익숙한 일이다. 대학생들이나 성인들이 잘 매고 다니는 검은색 가죽 빛깔의 세

련된 미니 가방을 대충 어깨에 걸쳐매고 조그마하고 이쁜 금색 뱃지가 달린 검은 구두를 

신고 거울을 쓱 한 번 흘겨본 후 살짝 머리를 만지다가 학교로 출발한다.

물론 조그마한 가방 안에는 책은 없었고 거울과 빗, 간단한 화장품 도구, 핸드폰, 지갑 

등만 간단하게 들어 있다. 담배가 안 들어있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학교로 가는 택시 안, 여느 학생들과 달리 집이 좀 잘 살고 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낭비는 안 하는 시진이였다.

그래도 굳이 시진이가 택시를 타고 가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아침부터 수호에게 안 받는 

전화를 거느라 늦었고 짜증도 나서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해줄만한 마음의 여유가 나질 

않았다.



"아저씨, 늦어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가주세요."



지각 따위는 어차피 신경쓸 시진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허구헌날 지각하는 그런 불량스

런 소녀도 아니었다. 단지 가끔 가다 그러는 것과 선생님들이 그다지 혼을 많이 내지 않

는다는 것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책상에 자리를 깔더니 자기 시작한다. 얼마쯤 잤나 하고 눈을 떠보

더니 다시 잔다. 보통 학교에서 잠을 잔다 하는 아이들은 점심 시간은 꼭 챙기고 자기 마

련인데 시진이에게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점심도 먹지 않고 그대로 줄곧 자더니 5교시가 끝날때쯤해서 일어난다. 갑자기 책가방을 

싸기 시작하더니(물론 쌀것도 없다.) 교실문을 열고 나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거나 말을 거는 아이들은 없다. 그냥 조용히 눈치를 살필 뿐이다. 이것이 시진이의 보

통 학교에서의 하루 일과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만약 평소 생활이 이렇다면 학교를 지속적으로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날은 대개 

그 전날 밤늦게까지 친구들하고 놀았다거나 혹은 술을 많이 마셔서 피곤에 쩔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간혹 가다가 싸움 때문에 피곤할 때도 종종 있다.

항상 시진이의 마음속에는 한 여고를 이끌어나갈 짱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않았으며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 한 예로 이렇게 잠을 자면서 하

루를 때우는 날도 가끔 있었지만 평소에는 수업 시간에 항상 바른 태도로 수업을 들었고, 

선생님들에게도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했기 때문에 이쁨을 많이 받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물론 시진이가 학교에서 주먹이 가장 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

다. 하지만 너무 예쁘고 착한 여자아이가 시진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시진이가 가식적으로 꾸며낸 또 다른 하나의 캐릭터에 선생님들이 놀아

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진이의 본 모습을 선생님들이 보

고 있는 것이었고 또한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른들에게는 깍듯이 대했지만 자기 또래 여자아이들에게는 더없이 무서운 친구이자 짱이

었다.



"야, 아무 일 없지?"


"응, 그런데 시진아 너 졸업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계속 이렇게 살 꺼야?"


"무슨 뜻이야?"


"아니, 나는 니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원하지 않든 원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다 내가 나댄 탓이지 뭐,어쩔 수 있겠냐."



희미한 미소를 날리며 시진이는 웃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경미도 힘없이 웃어 보인다. 시진이의 단짝이자 비서와 같은 존재이다.

시진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꾸엑, 야 너 도대체 시진이한테 왜 그렇게 쌀쌀맞게 구는 거냐?



솔직한 얘기로다가 너의 그 도닦는 심정도 이해가 안 가지만 시진이같이 괜찮은 애를 마

다하는 이유를 도대체 난 모르겠다. 그리고 나까지 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아. 

너는 안전지대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위험하다니까..."



"좀 조용히 좀 해. 나는 니가 여자친구가 없다는 게 더 이해가 안돼. 그리고 내가 걔한테

이러는 건 다 걔를 위해서야. 괜히 친절하게 오빠처럼 대해줬다가 진짜 내가 내 운명을 

만나 갑작스럽게 떠난다고 하기라도 해 봐!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몰

랐던 것처럼 지내는 게 나를 위해서나 걔를 위해서나 최선책이야."


"그놈의 운명 타령은 지겹다, 지겨워. 후."



시원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신선한 아침부터 괜히 분위기 깨고 미안하다. 한숨 그만 쉬고 아침이나 먹자."

수호는 먹는 생각만 하면 항상 밝아진다.


"그런데 뭘 먹지?"


"아침에는 간단하게 라면으로 때우자 물론 일본 라멘!"



수호는 아침부터 라면 타령이다.

그런 수호가 시원이는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야 무슨 아침부터 라면이냐? 아침에 라면 먹으면 소화도 잘 안 되고 뇌세포 작용에도 안

좋게 작용해서 하루 전체가 피곤해지고 일도 잘 안돼..오늘 신나게 놀아야 된다며?"


"야 너는 어쩔 때 보면 내 마누라 아니, 시어머니같다.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리

고 너 그런 건 어디서 그렇게 다 주워듣냐? 일본 온 김에 일본 라멘이라는 것 좀 먹어보

자는데 웬 말이 그렇게 많아?"


"아...알았어."



오늘도 시원이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 항상 이런 식이다. 수호는 항상 앞장서서 앞으로 

나가려고 하고 시원이는 좋든 싫든 뒤에서 끌려가는 입장이 되어 있다. 그렇다고 수호가 

고집불통에 독불장군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아침부터 맛도 없는 라면을 먹고 열심히 후회하는 수호를 끌고 시원이는 본격적으로 

일본 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야, 아침부터 어디를 가려고 그러는 거야? 졸려."


"일본까지 왔으니 일본 고베 유적 문화를 탐방하고 신사참배하는 모습도 보고 사진도 찍

고 할 겸 가보자."



수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뭐 잘못 먹었냐? 우리는 놀러온 거야. 일본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러 온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그래도 원래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을 해보는 것이 

그 나라를 빠르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구!"


"너는 그럼 일본문화 이해하기, 일본 길라잡이 뭐 이런 식의 책들이나 가이드대로 따라가

자는 거냐? 참 답답하다. 그런 거 실컷 본다고 해서 우리 나라 침략했던 일본 사람들 마

음 이해할 것도 아니고 그런 거 하나도 안 본다고 해서 일본 야동을 안 볼 것도 아니잖아? 

그냥 여행을 즐기자니까."


"야, 야동을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 나는 그 딴 것 안 봐."



수호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네가 야동을 안 보면 내가 향후 3개월간 DDR을 안 치겠다. 어때? 게다가 그 고귀하고 진

귀한 일본 야동을 안 본다니.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너는 일본까지 여행을 와서 일본에 대해 안다는 것이 몽땅 다 야동밖에 없는 거냐? 순 

저질이야"



외마디 말을 남기고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리는 시원이...

그 모습을 뒤에서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쳐다보고 있던 수호...곧 옷가지를 

챙겨들고 뒤따라 나간다. 혹시라도 삐졌을지도 모를 시원이를 달래주려...

참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알콩달콩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신혼부부라고 할 정도이다.



"야, 어디 가?"


"신사참배하러 간다! 됐냐?!"


"아, 나 잠깐 좀만 웃고 가자."



수호는 배를 잡고 뒹구는 시늉을 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갈길을 가는 시원이...정말 어디로 가는 걸까?

수호는 졸졸 시원이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야, 시원아 잠깐만 지금 어디 가는 건데?"


"따라오기나 해."



그렇게 조금 떨어져서 길을 가던 도중 갑작스럽게 시원이가 멈춰섰다.



"야 갑자기 왜 그래?"


"저기 봐봐..."



시원이가 가르킨 곳에서는 코스프레 행렬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이야, 사진으로나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까 상당히 흥미진진한걸? 확실히 일본은 애니메

이션으로는 최강인 것 같아. 어떻게 저렇게 비슷하지?"



수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꾸한다.



"꾸민 것은 비슷한데 얼굴은 왜 저렇게 다르냐?"


'그럼 지가 해보지.'



수호는 귀가 간지러울 듯 귀를 후비며 말을 이어갔다.



"뭐? 방금 뭐라고 했냐?"


"아..아니야...아무말도."


"뭐라고 한 것 같은데?"



그때, 코스프레 행렬의 일원인 듯한 괴물 류크의 모습을 한 녀석이 수호의 어깨를 툭 치

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정신없는 행렬에서 삐져나와 수호와 부딪힌 모양이다.



"얼래? 으...으아아아악."


"수호야 괘...괜찮냐? 그냥 분장이야."



수호는 기겁을 한 모양이었다. 워낙에 정교하게 분장과 의상을 맞추다 보니 처음보는 사

람은 놀라는 것이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머리는 하늘로 삐죽 솟은 검은머리

에 얼굴에 붙여놓은 듯한 눈알은 동공이 따로 노는 시계바늘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

보고 있었고, 붙인 듯한 입술은 무엇인가를 한입에 삼킬 듯 크게만 보였다. 하지만 전체

적인 몸집은 작은 편이었다. 꼭 미니 류크같다.



"스...스미마셍."



수호의 어설픈 일본어 사과에 그 괴물 류크는 간단히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 수호는 그런 

무시무시한 낯짝으로 살짝 미소를 보이고 목례를 하고 간 류크를 너무 재수없다고 생각했

다.

수호는 괴물이 지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그것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마

치 불규칙한 류크의 동공이 수호에게 맞춰진 것처럼 수호는 무언가에 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수호는 전혀 모르는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야, 너 놀랬지?"


"야, 놀래긴 누...누가 놀랬다고 그래? 아니야."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멍하니 서있던 수호와 시원이는 잠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그런데 너 어디 가려는 거였냐?"


"어? 어 그게..."



시원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다. 아무래도 그 짧은 순간에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됐다. 따라와라. 끝내주게 놀아주자."



"어딜 가는데?"



시원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수호의 입가에는 흐뭇한 웃음이 

가득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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