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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숟가락과 와루바시#4
게시물ID : humorstory_1340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1
조회수 : 2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2/27 13:41:37
4.

수호의 손에 이끌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며 시원이가 도착한 곳은 혼슈 서쪽에 위치

하고 있는 오카야마라는 지역이었다. 그곳에서도 북부 지역으로 조금 더 올라가 유바라 

온천 지역을 기어코 찾아내고야 말았다.

가는 동안 오카야마의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들을 감상하며 작고 아담한 경치들을 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공항까지도 수더분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정말 자연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가꿔놓은 하나의 도시였다. 바다와 이어져 있어서 쉽게 바다를 볼 

수 있었고, 날씨는 맑아서 하늘은 높다랗고 티 하나없는 하늘색 도화지를 연상케했다.



"야, 겨우 온천 하나 가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거냐? 도쿄에도 오오에도 온천 있잖아?"


"야, 일본에 왔으면 당연히 이곳을 와야 되는 거 아니냐? 일본하면 온천! 온천하면 혼욕

탕 아니겠니?"


"뭐? 혼욕탕? 너는 여행 오기 전에 알아본 게 어째 하나같이 너같은 것들만 잔뜩 알아보

고 왔냐?"


시원이는 정색을 하며 말을 잘랐다.



"싫으면 돌아가던가..."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나 혼자 돌아가냐?!"


"너 그런데 얼굴은 왜 붉어지는데?"


"어쨌든 빨리 들어가자. 난 순수하게 목욕을 하러 온 거라고! 오랜만에 때빼고 광내볼까?"



시원이는 잽싸게 먼저 들어가 이미 옷을 벗고 있었다. 온천 가격대는 3000엔 정도로 생각

보다는 비싼 가격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목욕 한 번 하는 데 2만 5천원 정도를 지불해

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목욕이 아니라 온천이지만 말이다.

수호는 뒤늦게서야 중요한 부분을 수건으로 가린 채 따라 들어갔다. 



"야, 의리없이 먼저 들어가냐? 임마 왜 대답이 없어?"



시원이는 물속에 깊이 들어가서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에서 단

체로 온천욕을 왔는지 자기 또래 나이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십여명 정도가 이미 물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오홋! 이럴 수가 하느님 천국에 드디어 저를 인도하시는군요."



수호는 기도를 하며 물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일부러 찾아왔다지만 새하얗고 기다란 

수건으로 몸의 주요부위만을 가린 여자들을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온천욕을 즐기는 것은 

수호에게도 무리였다. 



"야 원래 혼탕이 이런 거냐? 다 가리고 있어야 돼? 그런데 저쪽 남자들은 아무것도 안 가

리고 있다??"



수호는 흥분해서 말하였다.



"야, 난 저 남자들보다도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자기들 할 일 하는 저 여인네들이 더 신기

하다. 나는 신경쓰여서 전혀 온천을 못하겠네."



수호도 시원이와 같이 물 속에 몸을 깊이 담근 채 눈만 빠꼼히 내밀고 여자들의 동태를 

살폈다. 역시나 이쪽에도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온천을 즐기며 자기네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차분히 지켜보던 수호의 눈에 한 여자가 들어왔다. 정말 눈같이 새하얗다는 표현을 사람

에게 써야 한다면 반드시 그 여자에게 써야만 할 것 같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여학생들의 눈은 모두 거짓일 거라고 수호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수호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생머리였는데 어찌나 

길었던지 물에 닿고도 물 위에 둥둥 떠 있어서 그 길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고, 글래머러

스하고 모델같은 몸매는 아니었지만, 아담한 키에 군더더기 살 하나 없이 깔끔한 몸매를 

자랑하며 천사같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특히나 입술이 조

그맣고 매혹적이었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예쁜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호의 운명론을 쉽게 무너뜨리

지는 못하는 듯하였다.



"야, 쟤 보여?"



입으로 뽀글뽀글 거품을 내며 시원이에게 말을 건네는 수호...



"누구?"


"아, 쟤 말야 긴 생머리에 엄청 예쁘게 생긴 애."


"아, 보여. 근데 왜?"


"아니, 그냥 예쁘다구."


"어쩌라고?"



시원이는 전혀 무반응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이쁜 애를 보고서도 어쩌라는 식으로 나오는

지 시원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일본이었고, 곧 돌아갈 일이었다.

수호에게 있어서 운명의 반쪽이란 이렇게 허름하게 한 번 만나서 쉽게 말걸고 아는 사이

가 되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호의 머릿속에는 최소한 세 번을 우연으로 만나야 진짜 운명이라는 강박관념이 자리잡

고 있었다. 그러니 여자친구가 없을 법도 한 것이었다.



"오빠! 나랑 사귀자, 응?"


"너, 나 아냐?"


"응! 저번에 학교 축제에서 봤으니까 알지."


"그건 너 혼자 나를 본 거 아냐. 나는 그냥 한 번 본 애하고 사귀거나 그러지 않아. 알겠

니?"



그러자 시진이는 맨날 보러 오겠노라고 했었다. 그러나 수호는 그런 시진이의 노력을 간

단하게 헛된 수고로 돌려버렸다.



'아, 말 걸어보고 싶다.'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가 일본어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야, 그만 오바하고 목욕이나 하자."



즐거운 상상 속에 빠진 수호를 달래며 시원이는 목욕실로 빠지는 것이었다.



"야,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야 잠깐만! 난 여기 좀 더 있다가 갈래."


"알아서 하세요."



수호는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얼굴을 하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봐야 그냥 한 번 만났을 뿐이고, 나는 곧 우리나라로 돌아갈 텐데...헛된 기대하지 

말자. 그래도 말이라도 한 번 걸어봤으면...'



수호는 그렇게 보는 즐거움을 뒤로 한 채 시원이가 씻고 있는 욕실로 향하였다. 혹시나 

걸치고 있는 수건이 벗겨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조심 온천에서 나와서 그 길로 걷고 있는

데 갑자기 뒤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호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수호는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자기를 부를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힘없는 발걸음을 계속해 나가야만 했다.



'괜히 나를 부르는 것 같잖아. 신경쓰여.'


-"응? 저 사람 아니었나?"-


-"미유코, 왜 그래?"-


-"아니, 오전에 도쿄에서 코스프레 할 때 말야. 나랑 부딪힌 사람 같아서 사과하려고 했

더니 아닌가 보네.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유우끼는 꺄르르 웃으며 미유코에게 핀잔을 건넸다.



-"야, 도쿄에 있던 사람이 뭐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온천을 하니? 도쿄에 좋은 온천이 얼

마나 많은데...뭐 설마 혼욕이라도 하러 왔겠니? 말도 안돼."-


-"하긴 그렇지?"-



몸에 거품을 뽀얗게 내던 수호는 왠지 모르게 또 귀가 간지럽다.



"시원이 너 속으로 내 욕했지?"


"무슨 개소리야?"


"아니, 그냥 귀가 간지러워서."


그렇게 수호는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을 가지고 그렇게 헤어졌다.





"야, 어때? 오랜만에 온천하니까 몸이 개운하지? 결코 비싼 게 아냐."



비싼 돈을 지불하고 온천을 한 탓에 자금에 금이 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에 수호

는 시원이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닥치고 넌 굶어..."


"야, 이러기냐? 목욕은 같이 해놓고. 너도 좋은 구경 했잖아?"


"아무 생각없이 너를 따라간 내가 미친놈이지, 내가 미친놈이야."



수호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야, 그래도 내 덕분에 골프장도 구경하고 얼마나 좋았냐?!"


"몰래 위장잠입하다가 걸려가지고 도망다니느라고 다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 알았냐? 알

았으면 그냥 조용히 있지?"


"야, 임마 원래 이런 게 다 추억이야."


"진짜 추억이라는 게 뭔지, 여행의 묘미라는 게 뭔지 내가 보여주지."



수호는 눈빛을 반짝이며 시원이에게 달려들었다.



"뭐? 그게 뭔데? 뭔데?!"


"좀 떨어져서 말해 징그러워."


"응."



시원이는 눈빛을 반짝이며 새로운 발명품을 발명한 박사의 그 눈을 하고서는 수호에게 나

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왜 굳이 이렇게 더운 여름에 그것도 그렇게 급하게 서둘러서 일본 여행을 오자고 

했는 줄 아냐?"


"더운 거 좋아하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호는 대꾸했다.



"그러니까 네가 안 된다는 거야. 다른 나라 여행을 할 때 그 나라에서 가장 많은 볼거리

를 그것도 한자리에서 한방에 다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뭔 줄 알아? 그게 바로 축제라는 

거야!"


"아!!"



수호는 놀랍고도 존경하는 눈빛으로 시원이를 바라보며 재차 묻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하는 축제가 뭔데?"


"이제 곧 벌어질 마쓰리라는 축제야. 내가 날짜를 딱 맞춰와서 우리가 돌아가기 전날에 

축제를 즐기고 갈 수 있다 이거야. 이 축제는 일본 전통 축제인데 계절별로 지방에서 많

이 열리는데 기왕 왔으면 큰 걸 노려야 하지 않겠냐? 그래서 3대 마쓰리 중에 하나로 불

리는 텐진마쓰리로 찍어놨다. 오사카에서 열리는 마쓰리지."


"오오! 대단해. 존경스러운데...그게 그렇게 대단한 축제냐?"


"그럼 일본에서는 정말 알아주는 축제 중에 하나라고. 가마행렬과 강 위에 수백척의 배를 

띄우는 장관과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어때 친구? 즐길 준비가 되

어 있나?"


"우웅. 흥분돼."



시원이는 이런 녀석이었다. 항상 생각지 못한 준비로 즐거움을 배로 만들어주는...

그래서 수호는 항상 이런 시원이와 같이 다니는 것이 좋았다. 수호의 부족한 부분을 곁에

서 잘 채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날이 다가왔다. 축제다!

그 동안 수호와 시원이는 일본의 유명한 곳 몇 군데를 돌아다녀봤지만, 별로 성에 차지도 

않았고, 축제를 기다리는 마음에 들떠 다른 것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더욱더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도 일본인 여자친구(순수한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몇 명을 알아놓고 한국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면 현지 소식도 손쉽

게 알 수 있고, 나중에 다시 놀러올 수 있는 초석을 만들어놓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쉽게 

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 그냥 우리끼리 와서 놀다가 우리끼리 가는 거 아냐?"

수호가 또 징징대기 시작했다. 시원이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수호를 나무랐다.


"일본 여자들은 다 너 차지라며? 일본어도 모르는 녀석이 도대체 뭐라고 말을 걸려고 생

각했었냐?"


"아 그러니까 너보고 통역 좀 해달라니까 왜 안해줘!"


"나는 그런 거 관심없다."


"너는 친구도 아냐."


"어쨌든 빨리 준비나 하자."



시원이와 수호의 준비하는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좋아! 오늘이 제대로 대목이야! 오늘 한방에 끝장보겠어. 야, 그런데 기모노 입고 가야 

되는 거 아니냐?"


"네가 기모노를 알고나 하는 소리냐? 기모노가 얼마나 비싼데. 그리고 이럴 때는 그냥 평

범하게 입어도 되고 아니면 유가타를 입는 거야."


"유가타? 그건 또 뭔데?"



수호는 호기심이 발동하면 끝이 없다.



"쉽게 말하면 간편한 기모노라고 생각하면 돼.여름용 옷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기모노는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뭘 그런 것까지 입냐? 그냥 가."


"흠...신경써야 되는데..."



이미 수호는 저번 온천에서 만난 미유코는 까맣게 잊고 있는 듯하였다. 자기 자신도 자신

의 가슴 저 한구석에서 자리잡고 있는 그녀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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