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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한일합방 100주년
게시물ID : bestofbest_308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ㅇㅇΩ
추천 : 172
조회수 : 11349회
댓글수 : 5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09/09/18 00:17:39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9/17 00:41:27
클리앙 blowtorch님 글 펌 1998년 일왕 아키히토가 영국을 국빈방문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차를 타고 버킹엄 궁전으로 갈때 당시 80대가 된 수백명의 영국군 노병들은 훈장을 주렁주렁 단 군복을 입고 길을 따라 도열해 있었습니다. 일왕 부처가 탄 마차가 다가오자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등을 돌렸지요. 일부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도 나왔던 유명한 행진곡 '보기 대령'을 휘파람으로 불며 일장기를 불태웠습니다. 일왕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무명용사묘에 헌화할 때도 시위는 똑같이 반복되었지요. 여왕이 일왕에게 최고의 영예인 가터 기사단 훈장을 수여하자 이에 발끈한 노병들은 '도대체 일왕이 어떤 기사도 행위를 했길래 그런 귀한 영예를 수여한단말인가' 라며 불경을 무릅쓰고 여왕을 비난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1971년 히로히토의 전후 첫 영국 방문은 수용소에서 동료포로들로부터 널리 존경을 받았던 영국 극동전쟁포로 협회장이 자신의 직위를 걸고 각계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간신히 성사가 되었지요. 하지만 영국 왕립 식물원에서 있었던 히로히토의 기념식수가 행사 몇 시간 후 누군가에 의해 찍혀져 나가고 그 자리에 제초제를 들이부은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히로히토가 임종하기 전, 일본 외무성은 '지옥이 사악한 천황을 기다리고 있다' '처벌받지 않은 거악'이라며 그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기대하던 영국 언론들을 놓고 항의성명을 냈었지요. 영국의 대일감정이 호의롭지는 않은 듯 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들을 상대로 상상을 초월한 잔혹성을 보여줬는데요. 미군의 경우 필리핀 등지에서 2만7천명이 포로로 잡혔으나 이중 1만 1천명이 사망, 40%의 사망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나치 독일의 미군 포로 사망률 1%에 비교하면 무려 40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살아남았던 영국과 미군 포로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아야했고 그후 60년이 지나도록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공식사과와 보상이 없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더군요. 많은 영국군 포로들은 일본 정부의 초대를 외면하며 거절해왔다고 합니다. 이틀 전 미국 신문에 90대의 미군 노병이 필리핀 함락 후 물과 식사도 없이 110km에 걸친 강제 행군을 하다 2만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던 '바탄 죽음의 행군 (Bataan Death March)'과 끔찍했던 수용소 생활을 회고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가 몸서리치며 말하길.. "내 나이 92살,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껏 일본을 용서하지 못했고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도 않을 작정이오." 3년 수용소 생활을 겪은 90대의 노병들도 일본을 용서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장장 35년 식민지 통치를 겪게 만든 '한일강제합병 100주년'이라는 내년. MB는 일왕을 초대 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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