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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브금/스압] 국토를 달리는 소년 - 3일
게시물ID : bicycle2_309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자륭
추천 : 17
조회수 : 595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5/03/13 10:09:51
프롤로그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028459&s_no=1028459&kind=member&page=1&member_kind=humorbest&mn=60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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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7tf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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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 다섯시쯤 기상했다. 찜질방이 싼 이유를 알았다. 춥고, 덥고, 코고는 소리에 조명. 불편한 바닥과 더 불편한 목침. 잠을 설쳤다. 

어제 자기 전, 한시간정도 무릎과 아킬레스건을 마사지 했지만, 통증은 아직 여전했다. 걷기가 힘들어 걸음을 절었다. 양 무릎과 허벅지, 오른쪽 아킬레스건에 파스를 붙였고, 특히 아픈 오른쪽 무릎에 붕대를 감았다. 긴바지는 불편해서 반바지를 입었다. 이제야 좀 자전거 라이더 같은 구색이 갖춰졌다. 

뼈해장국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하기 전 다리스트레칭을 충분히 했다. 첫째날과 둘째날. 자신감의 과잉과 거리에 대한 집착으로 스트레칭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이틀만에 만신창이가 된 이유를 너무 늦게 알았다. 몸에게 미안했다. 

신발끈도 다시 묶었다. 평소처럼 운동화 끈을 예쁘고 느슨하게 매고 다녔던 걸 이제야 알았다. 운동화를 발에 맞췄다. 안일하고 오만했던 태도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각오였다. 

오늘은 자신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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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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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에서 나오자마자,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오늘은 무릎을 최대한 아껴야했다. 업힐을 자전거로 오르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조금의 경사에도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갔다. 

삼-사십분을 끌고 올라갔지만 날씨가 덥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날씨가 좋아 웃음이 났다. 

오르막 후에는 충분한 다운힐로 보상을 받았다. 잠시 행복했다. 

하지만 소조령은 맛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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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 입구에서 라이더 한명이 로드를 타고, 끌바하는 나를 추월했다. 약간 오기가 생겨 기어를 최대한 낮추고 시도해봤지만, 즉각적인 무릎의 통증으로 불가능했다. 라이더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였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을 터였다.

한시간 어쩌면 두시간. 땀이 흘러 내렸다. 반바지를 입었지만 더웠다.

꽤 많이 지쳤을 쯤,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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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의 정상에 올랐다. 라이딩으로 오르지 않았지만, 벅참은 유효했다. 2월 말이지만 눈과 얼음이 가득했다.

이제 내려갈 차례였다. 장갑을 끼고 지퍼를 올렸다. 한번도 멈추지 않고 내리막을 탔다. 끝내주는 롤러코스터처럼.

역시나 내리막은 금방이었다ㅋ. 이화령은 넘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문경새재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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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밖에서 찍은 사진과 그늘 안에서 찍은 사진.

달리다가 그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위가 싹 가시고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 서늘했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새롭고 신비한 경험에 기분이 환기됐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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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고, 내리막길이 많아서 잊고 있었는데, 평지로 돌아오자 안장통이 도졌다. 안장에 없애버리고 싶은 고통. 페달을 밟을때마다 다리사이와 엉덩이가 마찰되며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지난 이틀동안 간과했던 게 또 있었다. 휴식과 수분공급. 조급한 마음과 객기로 휴식 없이 달리고 또 달렸었다. 초점이 흐려지고, 통증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추위 탓에 별로 목이 마르지 않아, 물을 하루에 250ml 도 먹지 않았었다. 느끼진 못했지만 많은 땀을 흘렸을텐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했다. 한시간 라이딩 후 십분정도 휴식했다. 휴식하는 동안 다리를 자전거 위에 올리고 누워, 다리에 몰린 피를 돌게 했다. 물도 충분히 섭취했고, 다리마사지도 열심히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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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칠백리 비석. 새로운 마음이 들었다.

낙동강 종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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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얼마 못가 문제가 생겼다. 아끼고 아꼈지만, 아낀 탓에 반대쪽 무릎이 이상했다. 붕대를 감은 오른쪽 무릎을 거의 쓰지 않고, 왼쪽 무릎으로만 달렸는데, 왼쪽 무릎의 바깥쪽이 시렸다. 오른쪽 무릎은 안쪽이 아픈 탓에, 통증을 참고 페달을 밟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시린 바깥쪽 무릎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마취하지 않고 충치를 빼내는 것처럼, 찬바람이 잔뜩 들어와 헤집었다. 소름끼치도록 욱하는 아픔이지만 하소연 할 데는 없었다.

내려서 걸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종주의 반. 많은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 더 알아보고 올껄. 무리하지 말껄. 포기해야 하나. 돌아가려면 어디서 버스를 타야하나. 정류장까지는 갈 수 있을까. 군시절 100 km 행군훈련 때도 중도포기하지 않았던 나인데. 중도포기라는 말을 떠올리니 실감이 났다. 너무나 슬퍼졌고 창피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아냥거리며 그냥 까불지말고 포기하라는 놈들도 있었다. 시도조차 하지 못해 두려워하면서 남의 실패만을 기다리는 졸렬한 놈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무서웠다. 변화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변화는 커녕 퇴화할 것 같았다. 추락하는 기분. 이대로 돌아가면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무능한 인간. 나는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생각도 났다. 괜찮다고 위로하실테지만, 실망하실 터였다. 자랑스럽고 싶었다. 

누웠다. 일단 쉬자. 낮잠을 자자. 불안함에 잠은 오지 않았지만. 다리를 자전거에 걸치고 이십분정도를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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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왼쪽 무릎의 통증이 사라졌다. 조심하는 것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 기어를 한단계 내리고 페달을 밟았다. 절뚝이며 걸어가느니 천천히 라이딩을 하는 게 훨씬 빠를 것이었다. 오늘은 칠곡보까지 갈 생각이었다. 이틀동안 실패했지만, 오늘은 최대한 많이 가야했다.

내일은 비가 올 예정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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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보에 도착했다.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가 남았다. 낙단보까지 17 km. 낙단보에서 구미보까지 21 km. 구미보에서 칠곡보까지 35 km. 

왼쪽 무릎에게 제사라도 지내듯 뿌리는 파스 반통을 다 써서 기도했다. 부디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통증은 다시 점점 번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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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단보에 도착했다. 

조금씩 번지던 통증은 끝내 무릎을 장악했고, 페달은 커녕 땅을 밟기조차 괴로웠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짜장면을 먹고 화장실에 들렸다. 푸세식이어서 겨우겨우 쪼그려 앉아 일을 봤다.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릎에 모든 중력이 모여드는 기분. 불안함이 덥석 덮쳐왔다. 영영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억지로 가위를 떨쳐내는 것처럼 안간힘을 썼다. 양쪽 벽을 잡아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이대로 무릎이 끊어져버릴 것 같았다.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 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구나. 

겨우 저녁 일곱시인데 숙소를 찾았다. 찜질방은 너무 멀었다. 아니면 병원을 찾아야하나 생각했다.

다행히 식당 바로 뒤에 있는 무인텔이 보였다. 100m도 안되는 거리였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목발삼아 부축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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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깨끗한 시설이었지만, 내 기분은 더럽고 지저분했다. 옷을 다 빨래하고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얼음대신 수건을 찬물에 적셔 무릎의 열을 빼줬다. 사흘만에 처음 하는 찜질이었다. 나의 멍청함에 분노가 끓었다.



왠지 오늘은 기분이 좋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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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고 누워 문경을 지날 때 아빠가 보낸 문자를 읽었다. 아버지는 나와 같이 가고 있었다. 내가 포기하면 아버지도 포기하는 거였다. 

구름에 달 가듯이, 걸어서라도 끝내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만두기는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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