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내 새끼야, 에미를 용서해 다오”
“무남이는 에미가 미련해서 죽였어”
옛말에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그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우리 무남이 죽은 지 60년이 넘었어. 내 나이 아흔 줄에 접어들었는데도 무남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어. 에미가 미련해서 죽였어.
무남이가 태어난 지 일곱 달 되었을 때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지. 그때 서울 돈암동 살던 남동생 순일이가 장사 치르는 데 무남이 데리고 가면 병난다고 두고 가라고 했어. 우유 끓여 먹인다고. 그 비싼 우유까지 사 가지고 와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어린 무남이가 에미를 찾을까 봐 그냥 업고 왔어. 순일이가 “경황이 없어 젖 먹일 시간이나 있겠냐”며 우유를 내 가방에 넣어 줬어.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어.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종일 업고 다녔지. 애가 순해서 잘 울지도 않았어. 어쩌다 에미와 눈이 마주치면 에미한테 오겠다고 두 팔을 벌리곤 했지. 젖이 퉁퉁 불었는데도 먹일 시간이 없었어. 그런데 무남이가 우니까 애들이 우유를 찬물에 타서 먹인 게야. 그게 탈이 났나 봐. 똥질을 계속 해 댔어.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직후 시어머님이 앓아 누우셨어. 무남이가 아파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었지. 상중이라 병원 가는 게 흉이었거든. 약만 사다 먹였지. 그런데 시어머님이 한 달 만에 시아버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셨어. 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어. 애가 바짝 마르고 눈만 휑했지.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어. 그제서야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늦었다고 했어.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가 죽는 것 싫다고 해서 날이 밝으면 무남이를 업고 밖으로 나가곤 했어. 하염없이 밭두렁을 걸어다니면 등에서 ‘가르릉 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어. 그러다 그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서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지.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어 놓고 죽기를 기다렸어.
집 밖으로 떠돈 지 사흘째 되던 날. 가엽디 가여운 무남이를 풀밭에 뉘어 놓고 “무남아!”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 것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어.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내가 시집 올 때 해 온 깨끼 치마를 뜯었어. 그걸로 무남이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바늘귀를 꿸 수가 없었어.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서투른 솜씨로 옷을 다 지었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무남이에게 수의로 갈아입혔어. 그런데 수의가 너무 커서 무남이의 어깨가 훤히 드러나고 얇은 천이라서 그런지 속살이 다 비치지 뭐야. 수의 입은 무남이를 꼭 안고 있는데 첫 닭 울 때 숨이 넘어갔어. 소나기처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무남이를 넋 놓고 쳐다봤어.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가진 우리 무남이….
나는 이 얘기를 할 적마다 울지 않고는 못 배겨.
게다가 그땐 이 에미가 얼마나 독하고 야박스러웠는지 몰라.
무남이 싸 안았던 포근한 융포대기나 그냥 둘걸.
물자가 너무 귀한 때라 융포대기 대신 헌 치마에 깃털같이 가벼워진 무남이를 감쌌어.
즈이 아버지가 주인 여자 깨기 전에 갖다 묻는다고 깜깜한데 무남이를 안고 나갔어. “어디다 묻었냐”고 물었더니 뒷산에 있는 상여집 근처에 묻었대. 그땐 왜정 때라 나도 부역을 나가게 됐어. 그런데 하필이면 일하러 간 곳이 뒷산이었어. 상여집 뒤에 새로 생긴듯한 작은 돌무덤이 봉긋하게 솟아있지 뭐야. 그걸 보고 난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어. 무남이 이름을 부르짖다 정신을 잃었지.
암만 생각해도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어. 제때 병원에만 갔어도 살았을 거야. 순일이 말만 들었어도…. 그 생각을 하면 내 한이 하늘에까지 뻗치는 것 같아. 죽으려고 그랬는지 그 녀석을 업고 나가면 다들 잘 생겼다고 했지. 순하긴 또 왜 그렇게 순했는지 몰라.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죽은 우리 무남이. 찬바람 부는 이 즈음이 되면 깨끼옷 입은 무남이가 추울 것 같아서 가슴이 저리다 못해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아.
아, 가여운 내 새끼야. 이 에미를 용서해 다오.
‘내 아들 무남아’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붙여 하늘 향해 빌어 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 장서 써 볼까
빌어 본들 무엇하리 울어 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꽃이 바람에 줄기 채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싹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 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 보아라.
쥐암 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 보아라
옹알 옹알 옹알이로 조잘대 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 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