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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브금/스압] 국토를 달리는 소년 - 4일
게시물ID :
bicycle2_3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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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조자륭
추천 :
15
조회수 :
682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5/03/18 10:16:44
프롤로그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028459&s_no=1028459&kind=member&page=1&member_kind=humorbest&mn=608595
1일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029339&s_no=1029339&kind=member&page=1&member_kind=humorbest&mn=608595
2일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030372&s_no=1030372&kind=member&page=1&member_kind=humorbest&mn=608595
3일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031173&s_no=1031173&kind=member&page=1&member_kind=humorbest&mn=608595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uH8HF
하루종일 비가 와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습니다.
글이 많아 지루할 것 같네요. 양해바랍니다.
여섯시쯤 일어났다. 샤워 후 뜨끈한 침대에 앉아 다리를 풀었다.
밤에 간간히 악몽을 꿨다. 포기하게 되는 꿈. 우는 꿈. 짐짓 심각해졌다. 비장해졌다. 웃음기는 없어졌고 진지해졌다.
모텔에서 준 컵라면과 냉장고에 들어있던 캔음료로 아침을 때웠다.
오늘은 비가 올 예정이었다.
출발하기 전 계획은 2박3일 완주였다. 2박3일동안은 비도 오지 않았고, 후기를 읽어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충분한 스트레칭과 보급, 좋은 자전거와 든든한 체력을 간과한 생각이었다. 우비를 챙기지 않았었다.
적응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지만 안장통은 여전했다. 울고싶은 고통이었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진작에 안장을 뽑아 던져버렸을 거였다. 증오가 끓었다. 벌써 먹구름이 뾰족하게 끼었다. 날씨를 많이 타는 탓에 음울해졌다.
우울함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다. 기꺼이 잠식되는 것. 평소 우울할 때 가만히 누워 하루종일 잠을 자버리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우울은 좋은 수면제이자 안정제였다. 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어서 아끼던 노래를 듣기로 했다.
에픽하이를 재생했다.
당신의조각들, 집, fallin, slow emotion, airbag, 선물, no more chirstmas, 밀물, 실어증, 밑바닥에서, 비늘, 선곡표, slave, amor fati, 중독, 이별만남 그 중점에서, paris, let it rain, nocturne, happy birthday, 혼자라도, 행복합니다, 낙화, 우산, tomorrow, 춥다, 유서, broken toys...
무릎의 통증은 아직 늦잠을 자고있었다.
칠곡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근처에 식당이 없어 대충 점심을 때웠다.
손이 시릴까봐 목장갑을 사서 끼고 우비를 입었다. 그제서야 한방울씩 비가 떨어졌다.
오늘은 숙소를 잡지 않기로
결정했다.
밤을 새서 가기로. 달리던지, 끌고 가던지. 그러면 내일 점심쯤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오후 두세시쯤엔 집에 도착할 것이다.
복수할 데도 없는데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정을 끝내고 싶었다. 빨리 이겨버리고 싶었다.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구름이 본격적으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안경에 비가 맺혔고, 신발과 양말, 힙색이 젖어들고 있었다.
반바지를 입고 비를 맞고 있었지만 춥지는 않았고, 젖어가는 양말탓에 찝찝하긴 했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세네시쯤 어탕해장국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강정고령보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안난다.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두꺼운 안개 속에서, 자욱한 비 속에서, 에픽하이의 노래 속에서 달렸다.
살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웃음이 났다.
다섯시 쯤 달성보에 도착했다. 오늘 150 km 정도를 탔다.
그 정도가 남아있었다. 빗줄기는 거세지지도, 약해지지도 않았다.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두웠지만 라이트가 있었고, 내려서 끌고 가면 안장통이 없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달성보 CU 편의점이 보였다.
거지꼴로 편의점에 들어갔다. 다리에 감은 붕대까지 젖어있었다.
편의점에서 일 하시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 이봐요 학생, 자전거 타는 학생이에요? 자전거 타고 가는거면 내가 숙소 알려줄게요.
경상도 말투로도 저렇게 사근하고 다정하게 말을 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호객행위는 질색이었다. 쳐다보지도 않고 트윅스를 집어들며 말했다.
- 괜찮아요. 저 오늘 숙소 안잡을거에요.
배려나 걱정을 가장한 홍보로 이익을 챙기려는 행동은 항상 거부감이 들었다.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이내 다시 말을 걸었다.
- 자전거 여행객한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 있어요. 내가 알려줄게요. 이리 와봐요. 무릎도 안 좋고 비도 많이오는데 그러다 큰일나요.
무료라는 말에 솔깃했다. 시간도 많은데 들어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카운터로 갔다.
- 지금 문 닫으려고 했는데, 학생 나를 만난건 정말 운좋은거에요. 이화령 넘어왔죠? 힘들었죠?
다람재, 영아지고개, 박진고개. 들어봤어요? 이화령은 비교도 안되게 힘들고 험한 코스에요. 종주 최고 난이도. 근데 밤에 가는건 말도 안되는거에요. 내말 들어요. 내가 알려주는 길로 가면 싹 우회해서 갈 수 있어요. 내가 알려주는 데서 잠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발하면 내일 완주할 수 있어요. 아니면 절대 못해요. 사고나요. 지금 출발하면 딱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갈 수 있겠네. 여기 봐봐요. 알려줄게.
책상엔 나 같은 여행객들을 위해 준비해둔 것인지, 지도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셨다.
무심사라는 곳으로.
여기서 좌회전하고, 어떤 표지판에서 우회전하고, 몇미터를 가서 어떤 건물이 보이면 어떻게 가라고. 그리고 내일 아침엔 이러이렇게 해서 가라고. 내일 아침의 우회로까지 모두 알려주셨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표지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객기와 오기로 정신 못차리고 경솔하게 행동하려는 나를 도와주는 무언가의 우연이었다.
원래 결심이 확고했기 때문에 무시할까도 생각했지만, 곧 이성이 돌아왔다. 젖은 옷 속에서 피로가 느껴졌다.
감사합니다를 열번도 더하고, 무심사로 향했다.
지독한 길치라, 지도를 보며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아직도 km의 개념은 잘 잡히지 않았다.
비에 젖을까 투명비닐에 정성스레 싸주신 지도는
꺼내 볼때마다 조금씩 번졌다. 비와 함께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방 나올 것 같았던 무심사는 한시간을 갔는데도 찾지 못했다. 길치답게 길을 잘못들어서 삼십분을 헤맸고, 결국 주유소 아저씨의 도움, 택시기사님의 도움, 무심사로 전화해서 스님과 통화를 하면서 거의 두시간만에 무심사를 찾을 수 있었다.
신기했다. 심지어 오르막을 오를때조차도. 오전오후 내내 아파서 아껴쓰던 무릎이, 달성보에서 무심사를 찾아가는 동안에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무심사에 도착했다.
비가 그쳤다.
살은 불어있었고, 속옷까지 젖어있었다. 밥을 주셨고, 말을 걸어주셨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방에 누웠다.
그제서야 무릎의 통증이 서서히 번져왔다. 고마웠다.
신기하고 감사했다.
내가 만난 모든 멜키세덱에게.
내일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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