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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폭탄테러사건과 리마 북한무역대표부 사건
게시물ID : military_310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미세린
추천 : 4
조회수 : 234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26 02: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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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상대적 평화기를 겪고 있어서 인지 우리나라와 테러는 별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거 같습니다.
실상 지금 소개하는 이 김포공항 폭탄 테러도 처음 듣는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사건은 1986년 09년 14일 3시 12분 에 발생합니다.

김포공항 국제선 5번과 6번 출입문 사이에 놓인 철제쓰레기통에서 갑자기 폭탄이 폭발합니다.

사용된 폭탄은 C-4로 국내에서 민간용으로 사용되던 폭탄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의 공작원 혹은 이슬람 등의 테러단체가 조직적으로 설치한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당시 폭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도로 파편이 비산하도록 설치된것으로 확인되어 
훈련된 전문집단에 의한 테러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실상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수 있었던 테러가 5명의 사망자로 그쳤던건 당시 쓰레기통 근처에서 작업중이던
직원이 폭탄의 파편을 대부분 맞았던 우연 때문이었지
테러는 다수의 사상자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된 테러였습니다.

당시 시기는 1986년 아시아게임을 6일 앞둔 시점이어서 현장을 보존하기 힘들었습니다.
당장 IOC위원장 및 외국 선수단과 임원들이 공항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또한 안타까운 것은 현장대응이 미숙해 공항을 통제해 용의자를 확보해야 했음에도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공항 경비대는 사건 발생후 15분이 지난 시점에서야 출동하였고
이용객들을 진정시키고 현장을 통제해야할 공항당국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현장을 어지럽혔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는데 
- 물론 북한이 이 사건의 유력한 배후 였습니다만. 단서같은게 아무것도 없었죠.

훗날 냉전이 끝난 시점에서 동독 정보기관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확인 되었는데
동독의 정보기관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아부니달이 동독의 정보기관에 여러 정보를 넘기면서 사건의 전말이 보고서에 기술되게 됩니다.
아부니달은 팔레스타인 테러지도자로 로마 및 빈 국제공항 테러사건등의 배후인물로 유명한데
이 아부니달에 군사훈련과 물자, 자금을 제공하던 후원자 중 하나가 북한이었습니다.

북한은 아부니달에게 김포공항 폭탄테러를 청부하였고 이에 아부니달은 테러준비에 착수합니다.
폭탄제조기술자인 아부 이브라힘이 폭탄을 제조하였고 이브라힘의 동거녀이자 서독 적군파인 크라베가 이 폭탄을 운반하게 됩니다.
여기에 루마니아 정보기관이 크라베에게 위조여권을 제공하면서
크라베는 영국인으로 위장한 체 김포공항으로 입국, 쓰레기통에 폭탄을 놓아두고 즉시 홍콩으로 출국합니다.

이게 1986년 9월 14일 5명의 사망자와 32명의 중경상자를 냈던 김포국제공항 테러사건의 전말입니다.

그럼 북한은 또 어땠는가

냉전 당시 우리나라가 수많은 테러, 암살, 무장공비에 시달리는 동안 북한이라고 조용했던건 아니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진게 없지만

김포국제공항 테러사건 1년 뒤인 1987년 5월 1일 페루 리마주재 북한 무역대표부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합니다.
오전 10시 무장한 2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이 북한 무역대표부 건물에 침입합니다. 
이들은 즉시 서류가방을 남겨놓았는데 이 서류가방이 폭탄이었죠.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 폭탄 테러로 북한 무역대표부대표인 상무관 김산식 외 2명이 부상을 입게 됩니다.

우리와 북한은 이런 테러들을 일선에서 겪으며 냉전을 보냈습니다.

아웅산테러나 KAL기 사건, 현충문테러시도사건등도 매우 유명한 사건이죠.

21세기에 들어서 우리가 테러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워졌을까요??
글세 그건 모를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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