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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숟가락과 와루바시#9
게시물ID : humorstory_1342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0
조회수 : 2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3/04 08:15:16
9.

시진이는 수업이 끝나자, 침착하게 아이들을 둘러본다. 하나하나 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그리고선 조용히 앞장서서 교문 앞을 나선다. 그 뒤로 수명의 아이들이 뒤를 따른다. 그

렇게 많지는 않은 숫자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어둠이 온 세상을 하늘 

꼭대기에서부터 덮어내리고 있다.

어느 새 시진이와 무리들은 어두워진 배경을 뒤로 하고, 어느 인가가 드문 골목길로 접

어들고 있었다. 그 곳에는 이미 수명의 여고생들이 와 있었다. 대성여고 여학생들이다.

시진이가 다니는 이호여고와 근접해 있는 학교이자, 맨날 으르렁대는 학교였다.



"왔냐? 늦었다?"



대성여고 짱으로 보이는 듯한 덩치 큰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여학생치고는 어마어마

한 거구에 얼굴은 곰보와 여드름으로 뒤덮여 있다. 머리는 싸움할 때 편하기 위해서인지

뒤로 질끈 동여매고, 옷매무새는 많이 흐트러져 있다. 블라우스의 단추는 터지기 직전같

다. 용케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인상은 정말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충분히 줄 수 

있을 만큼 험악하다.

정말 그에 비하면 시진이는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인다. 키도 보통이고, 마르지는 않았

지만 도저히 쪘다고 볼 수가 없다. 다만 얼굴만이 하얗게 빛날 뿐이다. 이 점이 아이들

이 시진이가 싸움을 잘하는 것을 신비롭게 여기는 점이었다.



"너는 공부 안하냐? 고3이 공부를 해야지 여기서 뭐하는 거냐?"


"풋, 너 개그하냐?"



가소롭다는 듯이 그 여학생은 쳐다본다.



"그러니까 네가 공부를 못하는 거야. 찌질하기는...어떻게 할까? 단체로 하는 것은 너무

시끄럽고, 단정하지 못하잖아? 안 그래?"


"뭐야?"



덩치 큰 여학생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것 같다.



"훗, 그래 좋아. 1:1로 하자. 그런데 왜 너가 불리한 상황으로 만드냐? 바보 아니냐? 쿡

쿡..."


"누가 불리한 상황을 자초했는지는 지나 봐야 아는 거지."



시진이의 얼굴은 아직도 여유로운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앞으로 나선다.

앉아 있던 그 여학생도 일어난다. 일어나자 더욱더 위압감이 다가온다. 어느덧 시진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눈은 상대방을 뚜렷하게 응시하고 있다. 곧 벌어질 사태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태세이다. 뒤에 서 있던 여학생들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여학생을 보고, 시진이는 주춤주춤 물러선다. 접근전으로 하면 별로

승산이 없을 거라는 계산하에서였을 것이다. 큰 몸뚱아리를 이끌고, 막무가내로 달려오

는 덩치를 슬쩍 옆으로 피하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일단은 상대방이 약간의 흥분 상태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진이는 유리하게 싸움을 이

끌어갈 모양이다. 요리조리 살짝살짝 피해다니면서 약을 올리고, 힘을 빼고 있다.



"언제까지 피해다닐 셈이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왜 무서워?"



덩치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시진이의 표정에는 스쳐가는 변화조차 없다. 차라리 속으로

는 웃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네 얼굴 보고 무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네 애들도 너 보면 무서워하겠다. 큭큭..."


"뭐야?!"



결국 흥분을 하고 만 덩치는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흥분한 사람의 파워는

비록 가공할만하다 할지라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법이다. 몇 번 가볍게 피한 시진이는 덩

치가 중심을 잃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가볍게 주먹으로 내리쳤다. 

살짝 친 거였지만 자신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쉽게 무너져내렸다. 바로 시진

이는 가냘퍼 보이기만 하는 주먹으로 면상을 연속적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발로 약한 배

부분이나 머리 쪽을 찼다. 

결국 덩치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뒹굴면서 팔로 막기에만 급급했다. 그런

데 어느 한 순간 시진이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언가 강하게 머리에 충격을 주고 사라

졌다. 어떤 것인지 잘 기억이 되지 않는다. 

다만 눈을 떴을 때는 경미와 그 외 몇몇 같이 갔던 아이들이 자신을 부축해서 다른 장소

로 데려다놓고,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그 씨발년들이 갑자기 반칙을 해가지고 너한테 돌 던져놓고 갑자기 덤비는 거야. 그래

서 그냥 어쩔 수 없이 싸웠지."



시진이는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얼굴을 돌아다보았다. 그리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가슴이 아파왔다.



"결과는?"


"어차피 너가 이겼으니까 끝난 거지만, 우리도 문제 없다. 걱정마라. 앞으로 다시는 시

비 못 붙일 거야."



시진이는 일단은 안도했다.



"제발 졸업하기 전까지만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개인적인 시진이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냥 단순히 조용히 살고 싶었다.



"야 시진아! 너 돌 맞아서 머리 쪽 찢어져서 피도 나고 하니까 빨리 병원 가자."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너희들도 다쳤고, 늦었으니까 빨리들 들어가라."


"야, 그래도 병원까지는 같이 가야지? 친구가 다쳤는데 어떻게 우리들끼리 가냐?"


"명령이야. 다 들어가!"



고통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도 시진이의 눈빛이 변했다.



"......"


"나는 경미랑 가면 되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


"그럼 안심이고..."



저마다 걱정의 눈길을 한 번씩 보내주고, 각자 흩어져갔다. 경미가 애들을 끝까지 보고,

시진이에게 다가와서 부축하려 하자 시진이는 잠시만 두라는 신호를 보낸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있었던 경미가 알아채고, 가만히 옆에 앉는다.

한참 동안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하던 시진이는 이내 폰을 열고 1번을 꾸욱

누른다. 신호음이 가고 싸우는 내내 자신도 모르게 공포를 느껴가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파에게 온몸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시진이냐? 고맙다."


'뜬금없이 고맙다니?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건가?'



시진이는 수호에게 처음으로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온몸의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응? 뭐가?"


"아니다. 나 피곤해서 그러는데 할 말 있으면 빨리 해주면 안 될까?"


'오빠가 많이 피곤한가 보네. 다음에 전화해야겠다.'


"피...피곤해? 아니야 그럼 됐어. 그냥 자"


"너 무슨 일 있냐?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나도 졸려서 그러지 뭐! 잘 거야!"



억지로 목소리에 힘을 주어 투정하는 투로 말하고는 툭 끊어버린다. 목소리를 들었으니

됐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나저나 오빠가 혹시나 눈치를 채지나 않았을까 걱정스런 시

진이. 아직까지 시진이는 꽃다운 나이의 여고생일 뿐이다. 

오빠의 피곤함을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고민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경미의 부

축을 받고, 병원으로 향한다.





학교로 향하는 수호의 발걸음이 거의 3년만에 최고조로 가볍다. 입에서는 휘파람 소리마

저 경쾌하게 나온다. 입가에 한가득 웃음을 안고 빠르게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면에 두려움을 한가득 품고 있다.



'굉장히 귀찮은 듯이 문자를 끊어버렸는데, 내가 괜히 바쁠 때 귀찮게 한 건가? 딸랑 두

마디라니. 어쨌든 빨리 만나봐야 되는데...'



수호는 미유코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니까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교환

학생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교환학생이 하숙집 같은 것을 얻어서 살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면...수호는 곧바로 학교 기숙사를 떠올렸다. 



'그렇구나!'



발길을 돌려 여자 기숙사를 향하였다. 학교를 그 동안 다니면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여자 기숙사를 향해서 운명을 찾았다며 수호가 가고 있는 것이었다. 측근들이나 친구들

이 들으면 놀래 기절할법한 소리였다.

기숙사 근처에 도착하자 대충 자리를 잡고 언제 지나갈지, 어디로 갈지도 모른 채 마냥

기다리고 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수호가 학교를 너무 아침 일찍 도착한 덕분에 기숙사

에서 나오는 여학생들과의 시간 차이가 1시간쯤 난 듯 싶다.

드디어 미유코가 저 멀리에서 보인다. 어쩔 수 없는 항상 같은 멤버들을 옆에 끼고서...

저쪽은 세 명, 수호는 혼자. 참 부딪혀야 될 때마다 고심할 법하다. 그러나 수호는 이미

결정이 내려졌고, 일단 시작했기 때문에 끝을 보기 전까지는 이 고독한 질주를 도중에

하차하거나 마감할 수 없다. 



"저...저기 미유코!"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수호네."


'헉 나의 이름을 알고 나를 불러준다. 오! 감격스러워.'


-"아침 일찍부터 학교 가는 길에 기다리고 있어. 쟤 스토커 아냐?"-



일본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는 수호는 뒤에서 이렇게 말하는 스미레를 향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쟤 대체 왜 저래?"-


"어쩐 일이야? 아침부터?"


"아? 그..그게 네가 오늘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길래? 무슨 소리인가 해서?"


"아, 어제 문자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 난 한국말을 잘하기는 해도, 여기 와서 한국모

델로 폰을 바꿔서 쓰다 보니까 문자를 쓰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가 않더라고...그래서 그

냥 할 말 있으면 만나서 말로 하자고 한 건데?"



수호는 그제야 좀 안심이 되는 듯 싶다.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응?"


"아냐. 학교 가는 길이지? 같이 가자!"



유우끼와 스미레는 옆에 제쳐 두고, 수호는 미유코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면서 그 짧은

거리를 최대한 만끽하려는 듯, 천천히 걸으며 가고 있었다. 

스미레와 유우끼는 친구를 뺏긴 것 같아 못마땅한 표정이다. 게다가 말도 안 통하니 뭐

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답답할 따름이다. 그때 저쪽에서 달려오는 시원이를 보고, 갑자

기 표정이 밝아진다.



-"야 쟤 봐봐. 잘생겼지?"-



항상 이런 말은 스미레가 먼저 건넨다.



-"어? 저 남자애? 진짜."-



시원이는 수호를 향해 오더니 가쁜 숨을 헐떡이며 말을 건넨다.



"수호야 너 들었어?"


"뭐? 무슨 소리?"


"시진이가 입원을 했다는데?"


"뭐?"



수호는 살짝 놀란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밤까지만 해도, 자신과 통화를 나누었

던 시진이다. 



"대체 무슨 일로?"


"그건 나도 자세히 모르겠어. 오늘 아침에 경미가 자기가 말한 것은 비밀로 해달라면서,

너가 알아야 할 것 같다면서..."



수호는 미유코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누가 다친 거야?"


"어? 아 그냥 아는 동생이 조금 다쳤나 봐.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 입원까지 했다는데..시진이는..."


"저기 시원아!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따로 저쪽으로 가서 얘기하자. 미유코 먼저 가.

나는 시원이랑 얘기 좀 하다 갈게."



수호는 다급하게 시원이의 말을 막고서는 미유코를 먼저 보냈다. 



"어디가 얼마나 다쳤다는 건데?"


"머리 쪽이 찢어져서 15바늘 정도 꿰맸다는데 일주일 정도 안정을 취하고 나와야 될 것

같다고. 찾아가 봐야 되는 거 아냐?"



수호는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냥 애들끼리 싸우다 그랬으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

한테 말하지 않은 것은 걱정을 끼칠까봐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일 텐데, 자기가 찾아가

는 것은 맞지 않다며,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또 그 기집애 싸우다가 그랬을 거야. 금방 낫겠지 뭐."


"뭐? 진짜 안 가볼거야?"


"지금 미유코 하나 생각하기도 바쁘다. 마음에도 없는데, 괜히 신경써주는 척 하는 것보

다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게 나아."


"그래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맘대로 해라."



시원이는 갑갑하다는 듯이 말하고는 돌아섰다.



'설마 어제 전화했을 때 다쳐 있었던 건 아니겠지...'



수호는 이런 생각을 그냥 희박한 확률쯤으로 돌려버리고, 쉽게 털어버렸다. 그렇게 쉽게

털어버릴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이 약했던 걸까? 시진이가 수호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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