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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스포] 지탱하는 것- 사쿠라 쿄코
게시물ID : animation_3118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4
조회수 : 39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2/21 00:32:50





 몰래 찾은 집은 고요했다. 주인 잃은 집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다녀왔어

 다시 고요했다. 퍼진 소리는 흩어진다. 온 집안에 닿을텐데, 정작 닿는 곳 없다.

 들어오자마자, 햇빛이 얼굴을 찌른다. 눈을 찌뿌린다. 석양이 들어오는 때라, 방은 주황빛과 노랑빛이 한데 뒤섞여있다. 그녀의 색이기도 해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곤란했다. 그 시간이 슬픈 걸까, 주인의 죽음을 집도 슬퍼하는 걸까. 나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는다. 현관에 걸어 들어가려다, 신발장을 문득 열어본다. 뭔갈 보고 싶었던걸까. 그녀의 신발장엔 신발이 상당히 많았다. 여성용이 많았지만, 큰 구두들도 보인다. 다른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돌아가신 부모님의 것인 듯 했다. 하나 집어든 큰 구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매일 먼지를 닦지 않으면 빛이 바래는 게 가죽 구두일텐데, 그런 기색은 없었다. 그녀다웠다. 나는 조용히 내려둔다. 그녀의 가족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문을 닫으려다, 내 신발을 본다. 더럽고,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신발. 이따금 마법으로 신경쓰긴 했지만, 예쁘다고 하긴 힘들었다. 나는 문득 심술이 들어 가지런한 신발을 발로 차버린다. 왼쪽 신발이 문에 부닺힌다. 크지 않은 소리가 난다. 나는 시선도 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녀는 혼자인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외로움을 많이 탔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나를 집에 초대한 것부터가 그러했다. 물론 서로가 홀로 마법소녀 생활을 해왔기에, 동료를 만났다는 기쁨에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찌되었건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공존하는 그녀의 외로움은 눈에 잘 보였다. 집에는 친구라는 존재의 흔적이 없었고, 이후에 있던 여러번의 초대에서도 대화의 주제가 또래친구들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의도적인 게 아닐까 싶었지만, 실상은 정말로 친구에 대해, 학교에 대해 할 이야기는 없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학교에서 하교하는 그녀를 봤을 때 누구도 그녀와 함께 하지 않았으니까. 도리어 수군거리며 따라가는 것도 보였다. 그녀는 그렇게 외톨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러한 편이었다. 친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이비 종교의 목사를 아버지로 뒀으니 시선이 고운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 친근감에 대한 거부가 나는 익숙했고, 어느샌가 친구를 만든다는 생각조차 그만둬버린 듯했다. 그것은 체념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미련도 없었다.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목매다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마미의 시선은 아직 체념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나와 다르진 않았다. 마미의 것은 약간의 포기와 감출 수 없는 기대감. 그래서 마미도 그런 나를 잘 알았고, 서로는 그래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친구, 지탱, 의존 그런 이야기였다.

근데 먼저 뒈져버리는 게 어딨냐. 비겁해

 그녀는 비겁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부엌으로 향한다.

세상 엿 같단 말이야. 혼자 도망치냐

 그녀가 좋아하던 홍차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위쪽 찬장을 한번, 아래쪽 찬장을 한번씩 열어본다. 어쩐지 홍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홍차를 어디에 보관했던가. 자주 홍차와 케이크를 얻어먹었었지만, 어디서 꺼내오는지도 모르는 게 잠시 웃겼다. 그다지 내가 아는 게 없구나 싶어서. 쓴웃음이기도하고, 정말로 웃기기도 했다. 바람 들어간 웃음이 튀어나온다. 나는 내 웃음에 답하지 않는다.

어디있는거야, 대체

 목소리가 나지막히 튀어나온다. 그렇다고 홍차를 찾을 순 없었다. 모든 곳을 뒤져볼까 싶었지만, 이내 그만둔다. 홍차 속에서 그녀를 찾으려는 나의 시도가 문득 바보처럼 느껴졌다. 굉장히, 머저리처럼 느껴졌다. 존재치 않는 그녀를 어디서 찾겠단 말인가. 그만둔다.

 나는 부엌의 싱크대를 들여다본다. 다른 것은 없이, 물담긴 찻잔 하나가 남아있다. 케이크 접시가 따로 없는 걸 보니 혼자 잠들기 전에 마신 듯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죽는 날은 어땠을까. 혼자 홍차를 마시며 잠들었을까. 자주 중얼거리던 혼잣말을 오늘도 흥얼거렸을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났을까. 마녀의 결계로 오면서 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아는 것은 오롯한 그녀의 죽음 뿐이었다. 학교 후배들과 함께 결계에 있다가, 방심해서 목이 뜯겨 죽었다는 그런 담담하고도 잔인한 이야기. 그녀다운 최후였다. 한번 구해준 일을 계기로 친해진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리했을 것이고, 그 행복에 겨워 방심했겠지. 행복에 겨운 방심이 죽음과 직결되었다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틀린 결말이 아니었다. 굉장히 그녀다운 최후였기 때문이다. 의존으로 인해 상실한 긴장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그녀의 웃음을 떠올리며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홍차 냄새와 수돗물 냄새가 섞여 올라온다. 비릿하다. 던지듯이 내려두고 시선을 돌린다. 부딪히는 소리를 넘긴다.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그녀의 방은 약간 어두웠다. 방향이 동향이라 그런걸까. 석양의 시간은 햇빛을 비추지 못했다. 아침에 햇빛이 가득 차오르는 그녀의 방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쩐지 그녀다웠다. 그녀에게 초대 받았을 때, 방에서 함께 지낸 적은 있었지만 잠든 적은 없었다. 침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그 나이대 소녀다운 침구류였고, 노란색 가득한 이불은 예뻤다. 이불 끝이 약간 헤져있는 것을 보면 이불 자체는 쓴지 오래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몸에 비해 이불은 작은 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쓴 이불인 듯 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부모님이 사준 것이겠지. 그녀에겐 충분지 않게 작은 침대와 침구류는 그런 그녀의 미련과 외로움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예전에 초대받았을 땐 어째서 몰랐을까. 모를 일이었다. 침대의 머리쪽 이불을 들춘다. 불룩한 이불 아래엔 배게와 곰인형 하나가 있었다.

...곰인형?

 배게를 집으려고 들춘 이불 속에 곰인형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인형에 대해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미가 곰인형을 좋아했던가? 리본달린 적당히 큰 봉제 곰인형이었다. 내 기억엔 없는 인형이었다. 내가 모르는 마미였다. 인형을 집어든다. 온기는 없다. 다만 냄새가 난다. 옷감과 솜의 냄새보다도, 마미가 사용했던 샴푸 같은 냄새가 난다. 땀이 마른 소금 냄새도 조금. 마미의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녀의 냄새라는 건 뭘까. 내가 애초에 그녀에 대해 알던 건 뭐였을까. 그녀의 가족이 가득한 신발장부터, 찾을 수 없는 홍차,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던 곰인형까지. 내가 알던 건 없었다. 그런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체를 애도하며 교회에 무덤을 만드는 걸로 그녀를 추모하는 의미가 있었을까. 그녀를 아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있긴 한걸까. 문득 슬퍼진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곰인형을 내려두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그래도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이건 일종의 자기만족이고, 기만이다. 말이 없는 죽은 자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는 조롱일 것이다. 고개를 떨군다.

 방문을 연다. 잠시 뒤돌아본다. 망막에 새기듯이 풍경을 그려놓는다. 그녀 침대 위의 넘어진 곰인형이 시선에 들어온다.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그래서 안쓰러워보인다. 나는 어째선지 괴로운 감정 사이로 조용히 곰인형을 바라본다. 나가려던 문을 닫고 조용히 집어든다. 인형은 나를 바라본다. 나도 인형을 바라본다. 자기 혐오 사이로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이 솟구친다. 나는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추모할 자격조차 없다. 무덤을 만든 건 내 자기만족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멋대로 집에 찾아오는 것도 그녀를 기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그렇기에 곰인형을 집어든다. 의지할 곳 없는 인형 하나, 그녀의 무덤에 놓아두고 싶다. 자격은 없었지만.

가족이고 싶었으니까

 슬퍼할 순 있으니까.





쿄코는 마미 사후, 마미의 시체 없는 무덤을 교회에 만들어주고, 마미의 테디베어 하나를 가져와서 장식해뒀다고 합니다.

마미의 죽음에 가장 슬퍼한 건, 후배 둘보다도 쿄코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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