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기억처럼 서 있는 간이역... 멈춤은 잠깐이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최대한 빨리 달리는 것. 그것이 현대 문명의 목표다. 그러나, 대부분 울타리가 쳐진 길을 달리는 시속 300km의 KTX는 차창밖을 포기한다. 길위의 경험도, 풍경도 없다. 길은 곡선이다. 이 멋스런 기관사 아저씨는 아름다운 풍경을 지날 때 속도를 슬쩍 줄인다. 고향을 찾아 가는 누군가에겐, 사무치게 그리웠던 풍경일수도 있다. 간이역은 속도 속에 사라져간다. 간이역이 사라지는 시점은 우리가 속도에 중독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속도중독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즐기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간이역이 모두 사라지고, 길이 모두 직선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더 빨라질 것인가? 마을에는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는 노인들 뿐이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선 늙고, 오래된 것들은 속도 밖으로 밀려난다. 밀려나는 그들을 속도는 애써 눈감아 버린다.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일까? 어머니는 손을 흔들다 못해 필사적으로 기차를 따라간다. 오래된 간이역에서 만남은 적고 이별은 잦다. 크고 넓기만 할 줄 알았던 세상. 한번의 망설임과 멈춤도 없이 수많은 간이역의 순간들을 지워내가며 빠르게 달려갔지만, 그 속도속에서 누구도 그리운 세상을 만났다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겐 이제 그리운 것들이 별로 없다. 그리움을 잃어버렸다. 그 그리움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직도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는 행복하다. 우리에게는 진정 돌아갈 곳이 있는가? 간이역은 먼 곳에서 돌아올 막차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