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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업 1편
게시물ID : phil_31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자기사
추천 : 1
조회수 : 60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05 21:58:46
 ‘좀머씨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공연 예술가로써 세계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던 시기 자신의 직업을 포기했다. 

엄밀히 말해 직업을 바꿨다. 

관객을 상대하는 공연예술에서, 격리된 채 혼자 작업하는 스튜디오 녹음으로. 직업적으로 사람(관객)을 상대해야하는 자신의 노동에서 굴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행위가, 생존을 위한 노골적인 노동 수단으로 호출될 때 인간은 비굴해지기 쉽다. 

정보화 자동화가 급속히 진행되자 고용주는 우리에게 서비스 정신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고객을 얼마나 잘 상대하는지에 따라 밥그릇의 크기가 결정되고, 심지어 직접적으로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업무에서조차 개인의 인격적 특징에 따라 조직 위계질서 내부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대한다. 

지금 우리는 생존을 위해 웃는 법, 말하는 법, 심지어 미세한 표정과 동작까지도 디테일하게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비스 산업이 한 사회의 보편적 노동 형태가 될 때 ‘소통’은 시대의 화두가 된다. 

소통을 통해 오고 가는 정보가 이윤의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자동화에 의한 ‘적시!!!’생산체제는 포드주의적 공장처럼 더 이상 무식하게 단일 품종을 대량으로 생산 하지 않는다. 

선진 경제체제에서 자동화된 공장은 다품종 소량 생산을 추구한다.

 무엇을 생산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금 바로 이 순간에(적시에!!!)’ 그 변덕스런 소비자 취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 획득 능력이 생산 능력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해진다. 

예컨대 자동차는 이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반면 소비자가 지금 이 순간 어떤 디자인의 자동차를 욕망하고 있는가라는 실시간 정보는 아무나 획득할 수 없다. 

소비자의 고급 정보를 원활하게 유통시킬 수 있는 소통 창구의 확보가, 상품을 생산하는 컨베이어 벨트보다 더 중요하다. 

동료 및 고객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자, 그래서 이윤의 원천인 정보 흐름을 정체시키는 자, 결국 자본주의 이윤법칙에 부적합한 자, 이들은 모두 시장에서 도태된다. 

고객의 고급 정보를 토대로 이에 적합한 상품을 생산해야 판매에 성공할 수 있다. 

정보 획득은 소통 능력으로 집약되는데, 소통이란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능력이고, 결국 서비스 노동이 보편화되는 정보화, 자동화 경제에서는 인간의 인격 자체가 생산 라인에 종속된다. 

지금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이윤법칙에 적합한 기술적 숙련이 아니라 정치적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데스크 업무에서부터, 현장과 격리된 서류 작업까지도 서비스 산업에 적합한 지배적 캐릭터가 강제된다. 

포드주의 경제에서 요청된 지배적 캐릭터가 묵묵하고 성실하며, 심지어 답답할 정도의 과묵한 인간형이었다면, 포스트 포드주의에서 모범적인 캐릭터는 눈치 빠르고, 명랑하며, 다소 수다스러워 보이는 입담꾼들이다. 

선진 자본주의 기업의 작업장 내부에 ‘정숙’ 혹은 ‘잡담 금지’라는 표지판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직장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서비스 교육의 후렴구는 더 이상 고객 감동이 아니라 고객 ‘기절’이다. 

고객이 기절해 고급 정보를 토해 낼 때까지 노동자는 자신의 인격을 팔아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이전 어느 시대의 노동자보다 더 능숙하게 사람을 상대하는 우리는 역사상 가장 미숙한 관계 능력(정치적 능력)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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