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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hil_31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자기사
추천 : 1
조회수 : 57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06 00:28:52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행위를 정치라고 할 때, 현대의 노동은 노동자에게 정치적 능력의 신장을 요청했고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테크니컬한 정치적 기술을 보유하게 됐으나 동시에 가장 비루한 정치성으로 퇴보했다. 

정치란 비단 정당 활동을 하는 정파적 삶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정치란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다수의 행위를 포괄한다. 

정치적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타자, 예측 불가능한 타자를 상대해야 하고, 타자의 삶에 개입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따라서 성숙한 정치적 태도는 알 수 없는 타자의 우연성과 우발성을 유연하게 긍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아마추어리즘이다. 

아마추어 정신이란 행동이 서툴거나 미숙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이 통제되고 예측 가능할 때조차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조심스러움을 유지하는 태도이다. 

우발성과 우연성을 긍정해야 하는 영역에서 우리는 아마추어 정신과 마주친다. 

예컨대 운전자에게 요청되는 덕목은 프로 정신이 아니라 아마추어 정신이다. 

운전자는 가장 숙련된 운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때조차 가장 미숙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도로의 우발성을 긍정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을 상대하는 영역인, 정치의 장에서는 더더욱 타인의 우발성, 우연성, 예측불가능성을 긍정하는 아마추어 정신이 필요하다. 

나를 다 안다는 듯이 지껄이며, 기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만큼 매력 없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이처럼 매력 없는 사람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관계가 없는 곳엔 어떠한 정치도 없다. 

반면 전통적 의미에서 노동은 기계적이고, 반복가능하며, 예측 가능해야 한다. 

노동이란 생존과 직결되는 행동이며, 노동이 기계적, 반복적, 예측 가능적이어야 생존에 가장 유리하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요청되는 덕목은 아마추어리즘이 아니라 프로 정신이다. 

삽자루를 든 노동자가 작업의 우발성을 긍정하려 할 때 생산성은 추락한다. 

기계적인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가 생활의 달인에서 눈가리개를 하고도 로봇처럼 작업을 완성시킬 때 우리는 그를 훌륭한 프로 노동자라 상찬하고, 그 감탄스런 능숙한 기술에서 엿볼 수 있는 성실한 인생의 ‘진정성’에 재차 감동한다. 

하지만 숙련된 기계적인 입담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우리는 사기꾼이라 의심한다.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에서의 진정성이 행위와 결과의 철저한 분리에 의존한다면 정치에서의 그것은 행위와 결과의 일치에 의존한다. 

아부의 네 가지 원칙을 주목하자. 

1. 없는데서 칭찬하라. 
2. 적절하게 칭찬해라.
3. 같은 칭찬을 여러 사람에게 똑같이 하지 마라. 
4.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마라. 

이 네 가지 항목은 아부가 아부라는 행위 그 자체에 목적이 있음을 가장할 때, 즉 행위와 결과가 일치하는 듯한 외양을 갖출 때 아부가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수렴된다. 

상대에 대한 칭찬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 때 칭찬은 아부가 되고 진정성은 박탈된다. 

‘기묘한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인 ‘지옥은 만원’이라는 일드는 정치가 결과를 위한 수단이 될 때, 즉 행위가 결과와 일치하지 않을 때 진정성은 훼손되고 정치적 행위가 어떻게 타락하게 되는지를 재치 있게 보여준다. 

일본 야쿠자의 거물 보스인 악랄한 A는 숨을 거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되살아난다. 

세상에 악인이 너무 많아 지옥이 만원이 됐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일본 열도에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지옥이 만원인 관계로 이제 악행을 행하면 죽어도 곧바로 되살아나기 때문에 선량했던 사람조차 약탈 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죽지 않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극악한 범죄자가 된다. 

국가적 대재난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목격한 거물 보스 A는 ‘지옥이 만원이 되니 여기가 지옥이 되는 구나!!!’라며 한탄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옥이 보수공사를 끝내고 악인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악인들은 되살아나지 못하게 되고 일대 소란은 가라앉는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타인을 향한 행동은 정치적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정치적 행위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라거나 지옥행을 피하기 위한 결과를 위한 수단일 경우, 즉 그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을 경우 정치는 타락한다. 

지옥이 만원이 되든, 천국이 그러하든 간에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두는 사람은 결과에 종속되지 않고 진정성있는 정치적 행위를 실천할 수 있다. 

결국 정치적 행위의 진정성은 행위 그 자체가 다른 목적이나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에 목적이 있을 때 달성된다. 

반면 노동은 행위가 결과를 위한 수단으로 철저하게 종속될 때, 즉 수단과 목적으로 행위와 결과가 분리되어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일 수 있고,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피자 제조공이 도우를 돌리는 화려한 기술을 뽐낼 때 우리는 그 행위 자체에 아직 감동하지 않는다. 도우 기술이 훌륭한 피자, 즉 잘 팔리는 피자라는 결과를 위한 수단으로 종속되어 복무하고 있음이 확인될 때 비로소 그 기술의 화려함은 주목받을 수 있다. 

노동 행위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을 때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수단으로 분리되어 종속돼 있을 때 진정성을 지닌다. 

따라서 노동 행위의 진정성과 정치적 행위의 진정성은 서로 구분되며, 대립적이다. 정치가 노동의 진정성을 지닐 때, 혹은 노동이 정치의 진정성을 지닐 때 양자는 망가진다.

노동과 정치의 하이브리드(잡종화)는 공동체의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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