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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로서 맥심표지에 대한 의견
게시물ID : star_3125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니사과
추천 : 20
조회수 : 2413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08/23 10:20:36

안녕하세요.. 맨날 오유 눈팅만 하다가 오랜만에 글 남기네요.


일단 저는 사실 맥심이라는 잡지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한번도 사서 읽은 적도 없고요.

그냥 '야한 B급 잡지' 정도의 인식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7년전 19살때 길을 걷다가 누군가에게 얻어맏고 알몸으로 차에 태워진채로 야산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고, 

망치로 살해당할 뻔 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저는 턱뼈가 약간 어긋나서 6개월 동안 병원에 다녀야 했고 범인이 주소를 알게 되는 바람에(경찰이 가르쳐줌 ㅎㅎ) 우리가족은 모두 이사했습니다.

범인은 당시 24살이었으며 3번의 강간미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형을 받았을 뿐이며, 이것도 줄여달라고 항소를 했기 때문에, 피해자인 제가 대전까지 가서 발언을 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지금은 독일에서 열심히 미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지루한 과정을 모두 얘기하는 것은, 제가 그 표지를 보고 받을 충격을 조금 상상해보시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저는 사건 이후로 정상적으로 생활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스릴러나 공포영화는 보지 못하고, 낮에도 혼자 택시를 타지 못하며 당연히 밤에 혼자 다니는 것도 힘듭니다.

맥심 표지를 보고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성폭행 피해자가 된 저는 피해자라는 프레임에서 더이상 영원히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제 경험과 연관시켜 이해하고, 늘 어디에서건 예기치 못하게 크고 작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조금 과장하여 얘기하면 피해망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충격을 받는 것은 비단 이 맥심 표지뿐만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 스릴러 영화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네이버 메인의 자극적인 성범죄 기사를 보았을때, 여지없이 저는 불쾌하며 가슴 한쪽이 아려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스릴러 영화는 제작이 중단되어야 하며 그러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예비 범죄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스릴러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짜릿함을 즐기는 사람들을, 또한 제작하는 사람들의 예술세계를 비난할 권리가 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보지 않고 불쾌해 하는 것은 물론 제 자유이지요.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에서 장난스러운 교통사고 씬만 나와도 몸서리가 쳐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장면들은 모두 삭제되어야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술가의 자유의지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로소돔을 찍은 감독은 배우에게 살해당했으며 스너프필름에 가까운 야동을 제작하던 일본AV회사가 망했듯이,

예술에는, 창작물에는 또한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선'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창작물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제작의도와는 상관없이 예술가(제작자)는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지요.

저는 피해자이기 떄문에, 객관적일 수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맥심이라는 잡지를 잘 모르고 표지를 보았을 때, 'B급 야한 잡지'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화보들은 어떠한 '섹슈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한 것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위기로 사람들의 성욕을 자극시켜, 구매욕을 올리려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되어 몹시 불쾌하더군요.

순수하게 범죄만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달랐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이 잡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맥심에 대한 섹슈얼한 이미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음에는 불쾌함을 느꼈겠지요.


그러므로 불쾌감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마음껏 이 표지에 대해 비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의 자유입니다.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그 누구죠? 미스맥심? 그 분의 발언이나 결정도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물론 그 분의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는 그 분도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무엇이던 비판을 하실 분은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오유를 눈팅하다 보니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네요. 사실 이 글을 적은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무조건 불편하다고 하면 불편러, 여시라며 몰아가시는데.. 불편러가 되고 싶어서 불편러가 된게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과민반응하는 여성들이 불쾌하실 수도 있겠지만, 진짜 치한을 만났던 사람이라면 어땠을까요. 

예술을 예술로 보지 못하며 아주 저급한 사람들이라는 표현까지 쓰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는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나치시대 국가였기 때문에 독일에서 들을 수 없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 모두가 네오나치가 될까봐 그런건 아니겠지요. 그거야말로 모두를 '예비 나치'로 보는 행위이니까요.

예술은, 창작물은 어떠한 것을 강하게 상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지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맥심 표지에서 불편할 수 있는 어떤 상징들을 찾은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불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저사람은 왜 저 난리' 혹은 '나는 이상한데 저 사람은 왜 괜찮지' 라는 어떠한 강요도 무의미합니다.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제 자신이 참 불쌍합니다.

저는 이러한 표지조차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마음이 철렁철렁 내려앉아야 하며, 과거를 회상해야 합니다.

저도 아무렇지 않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이 박힌 억하심정이 저를 그렇게 내버려 두질 않네요.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냐며, 그저 트집이 아니냐며 몰아세우는 사람들을 보니 개인적으로 참 슬픕니다.

누군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성추행 한번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성숙한 사회에서 이러한 표지가 나왔다면, 모두가 바람직한 태도로 감상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렇게 많은 '피해망상자들'을 낳고 있고, 또 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겁니다.

하지만 그 피해망상을 쓸데없이 키워가는 것 또한 옳은 일이 아니며, 불쾌해하는 일종의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더더욱 옳지 못합니다.


저도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일반화에 가까운 가정을 하는 것이, 스스로 여성의 지위를 깎아내리는 공정하지 못한 시선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습니다.

제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여튼 이러한 논란이 일어난 것도, 또 이런 논란에 대해 여러사람들이 얘기를 하는 것도 성숙한 사회가 되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피해망상을 키워가는 사람들도, 불편러라며 몰아세우는 사람들도 다시 한번만 서로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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