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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테러 발생 가능성 그리고..
게시물ID : sisa_2126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into
추천 : 0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06 11:39:21
유로발 경제 위기 보고서..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아니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유럽 발 경제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 그리고 유럽 연합 탈퇴 가능성은?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구제 금융 요청
스페인은 조만간 EU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조만간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고통의 끝조차 가늠할수가 없다. 
그들은 매일 광장에 모여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그리스 정부는 6월에 간신히 재신임투표를 받아냈지만 야당은 7월에 개최될 긴축 정책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하였고 여당의 일부 인사들도 미심쩍어하기 시작했다. 

유로의 경제 위기에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 뿐만이 아니다.
한때 그리스만 지원을 해주면 된다는 희망은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구제 금융 요청을 하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러한 소규모 유럽 경제국가 뿐 아니라 유로의 불안감과 위기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확산되고 있다.

만일 그리스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면서 부채 상환을 거부한후 유로를 탈퇴한다면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그리스가 유로 붕괴의 전초가 될것인가?

유로가 위기다..

유로이야기를 잠시 뒤로하고 2001년의 미국 상황을 돌아보자.

당시 미국은 정보통신(IT) 붐의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난 2001년의 이른바 `IT 불황'으로 경제 침제를 치닫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났으며 그리고 그 테러의 주범으로 이라크의 후세인이 지목되었고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이 전쟁 명분으로 세웠던 대량학살무기와 911 테러에 대한 알카에다와의 연계 (대다수의 테러범들이 사우디출신)는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사형된 후세인의 죄목은 911 테러가 아니라 이라크에서의 독재였다.

테러와 연관도 없고 독재라면 후세인보다 더 독한 독재가가 허다한데 왜 굳이 후세인을 미국은 타켓으로 잡았을까?
북한은 여전히 대량 살상 무기개발을 하고 있으며 장기 집권과 자국민을 대량 학살하고 있는 짐바브웨도 있으며 미얀마의 군정도 있고 이란역시 독재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라크만 굳이 미국은 침공하였을까? 

난 911테러와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경제 침제를 겪던 미국이 그래도 초강대국이 될수 있었던 기축 통화의 달러를 세계 제2위의 원유국인 이라크가 배제하면서 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이라크는 2000년부터 석유 수출 등의 일체 대외 거래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전환했다. 
이것은 다른 자원 수출 국가의 대외 거래 화폐의 선택에도 큰 영향을 준 결정이었다. 러시아와 같은 석유·가스·목재의 주요 수출국이 대외 거래를 이미 유로화로 결제하는 상황에서, 
알제리·리비아·베네수엘라 등도 달러 사용의 폐기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라크가 달러를 배격한 바로 그 시점부터 미국의 이라크 공격 계획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2001년 911테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그 수순의 목표는 세계에서 2번째인 석유 보유국 이라크였고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하여 또다시 자연스럽게? 달러가 기축 통화를 유지 하며 세게 70%의 석유를 좌지우지 할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시작은 항상 강대국의 경제 위기감으로 부터 시작된다.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식민지 경쟁 또는 제국주의의 위기에서 부터 왔으며 
2차 세계 대전은 미국발 경제 대공항으로 부터 이어진다.

지난 2005년 7월 7일 런던에서는 지하철 세 곳에서 동시에 폭탄이 터졌다. 그리고 1시간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런던 시내 다른 곳에 있던 버스에서 폭탄이 다시 터졌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그 테러로 인해 52명이 목숨을 잃었고 700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그날은 우연히도 런던에서 2012년 올림픽 유치 소식이 발표되던 다음날 아침이였다.

만일 그날 테러가 올림픽이 치루어지는 날 대규모 테러의 예행연습이였다면?
50명정도가 아니라 만명이상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그 후 전쟁의 가능성은? 

물론 이글은 뜬금없는 그리고 터무니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니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또 미신이지만 올해가 임진년이다.
한국에서 임진년은 불길한 해이다.
왜란부터 한국전쟁까지 사람이 가장 많은 죽은 전쟁이 임진년에 일어났다.
물론 육이오 동란이 일어난 해는 임진년이 아니다.
허나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참전하여 대규모 국제전으로 번져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은 해가 한국전쟁3년째 임진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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