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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마지막 대본 이후의 대본은 오지 않았다
게시물ID : readers_31395 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ainworks ★
추천 : 4
조회수 : 22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3/22 12:44:26
촬영 스케줄과 겹치지 않아 방영시간에 맞춰 모니터링을 했다. 끝을 향해 가는 이야기들. 나의 분량은 많지 않았고 이야기에도 힘은 없었다. 지난주에 받은 마지막 회 대본이 생각났다. 펜을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체크하고 연습해보아야 할 대사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웃고만 있으면 끝나는, 끝에 어울리는 인사를 주고받는, 그런 전형적인 연기들만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까지 날을 세우는 그런 이야기는 쓸 수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어쩔 수는 없겠으나 이런 힘 빠지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은 어쩐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내 생애 최고의 연기를 해냈다. 대본을 처음 받아봤을 때부터, 동료 배우들과 리딩을 할 때부터, 첫 신을 촬영했을 때부터, 그리고 그 결과를 화면에서 확인했을 때부터 나는 이번 작품이 내 최고의 연기가 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사는 내 것처럼 입에 붙었고 캐릭터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당연히 카메라 앞에서 표현해야할 것들은 현장의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연기에, 그리고 대본에는 없던 나의 대사와 행동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내가 하는 연기에 확신을 할 수 없어 스탭들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내가 하는 것들은 틀리다고 핀잔을 듣기만 했었으니까. 대본을 아무리 읽고 외워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대사들은 뻣뻣하게 나오기만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전 나의 작품들과 비교 해봐도 이번 작품에서 나의 모습은 어떤 작품에서보다도 자유롭고 또 아름다웠다. 그래서 매 회가 소중했다. 아무리 끝을 향해 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이렇게 힘 빠지는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조금 더 캐릭터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었다. 더 긴 이야기였어야 했는데. 지금보다 두 배는 더 긴 이야기였어도 나는 잘 해낼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다시 이런 캐릭터는 만날 수도, 연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다른 작품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너무나 초라한 일이었다. 인기 있었던 캐릭터를 반복하는 건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일이란 걸 사라진 배우들을 지켜보아 알고 있었다. 대본이 없어도 카메라만 있다면 혼자서라도 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모두 헛된 이야기이겠지. 이 캐릭터는 이것으로 끝을 내야 했다. 오늘 이야기는 슬프지만 역시 지루했다. 몇 번 울었지만 지쳐있는 울음이었다. 나는 소속사에게 전화를 걸어 오디션을 볼 수 있는 대본이 들어와 있다면 보내줄 수 없는지 물었다. 이번 작품과 겹치지 않는다면 어떤 캐릭터도 상관없으니 가능한 빨리 오디션을 볼 수 있는 대본으로 보내달라고 그렇게 말했다. 보내기 아까운 캐릭터였지만 영원할 수 없다면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와야 했다. 이번화의 마지막은 나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면서 끝이 난다. 대본에는 이별을 말하는 상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라고 만 나와 있었지만, 나는 그때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웃음을 짓는 그런 연기를 했다. 바보처럼 울고만 있지는 않아. 그 캐릭터는 보내주어야 하는 상대를 그리고 앞으로 혼자 나아가야 하는 나 자신을 불쌍하게만 생각하고 울고만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혼자서라도 씩씩하게 걸어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야. 그런 생각으로 웃음을 지었다. 나의 연기에 연출가는 대본과 다르다고 조금 곤란해하며 다시 연기하도록 지시했고, 나는 대본대로의 연기도 촬영했지만, 방송에는 웃음을 짓는 나의 첫 연기가 나왔다. 평소에는 못생겼다고 생각한 얼굴이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내가 봐도 정말 아름다웠다. 어쩌면 슬픈 말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는 여배우로서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이제는 아름다움을 잃어갈 일만 남았다고 확신이 들만큼. 나의 모습은 가장 빛났다. 방송이 끝나고 외울 것 없는 마지막 대본을 다시 읽고 또 외웠다. 오늘은 새로운 대본이 오는 날이었지만 당연하게도 마지막 대본 이후의 대본은 오지 않았다. 그 당연한 사실에 나는 조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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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2 22:36:16 추천 0
그것으로 기억되는 배우가 되었군요! 빠져나오기 쉽지 않죠. 어떤 배우들이 있었을까? 아내의 유혹. 장서희... 장서희는 그 전부터 예뻤어요. 그러나, 아역 배우와 역시 모델 이미지가... 아내의 유혹은 장서희를 확 바꿨죠. 김서영도 기억나고요. 복수할거야. 불륜과 막장의 개척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아침 드라마를 저녁으로 끌어온 원흉. 그리고 역시, 이유리... 민소희와 신애리의 뒤를 잇는 연민정! 사랑스런 이유리 그러나 그런 연민정... 빛나는 모습이였어요.
2018-03-23 00:59:46 추천 1
배우와 캐릭터가 완전히 겹쳐보이는 그런 배우들이 있죠. 실제 모습일 거 같은 그런 연기를 했을때 배우들이 정말 빛나보이고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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