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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진짜로 정말 운이 좋은 놈인가 봅니다.
게시물ID : gomin_3622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kenC
추천 : 3
조회수 : 4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7/09 14:33:41

아홉살 되던 해였나 열살 되던 해였나, 학교 끝나고 집에 오니 조그만 단칸방 우리집 티비 앞에
거짓말처럼 놓여있던 재믹스 한대.

과일 운송업으로 하루벌어 하루살던 우리집에, 친척 집 겜보이가 부러웠지만 차마 말 못하던 아들놈
소원 하나 못들여주랴 싶어 아버지가 어찌어찌 사주셨던 그 재믹스.

어쩌다 아버지 쉬시는 날이면 부자간에 앉아 했던 트윈비, 구니스... 
부자간에 어찌그리 똑같냐고 부전자전 틀린 거 하나 없다고 사과 깎아주시며 이거 먹고 하라던 어머니.
넉넉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그래도 화목했던 집.

그때부터 내 목표는 게임이다 - 게임회사에서 일하고싶다!

하지만 수학을 못했습니다. 문과입니다. 중국어 전공입니다. 프로그래밍 머리에 쥐가 납니다.
생각을 컴퓨터처럼 해야된다는데 안됩니다.

게다가 미술도 못했습니다. 문과니까요. -_- 그냥 괴발개발 찍찍 그려대고, 포토샵 쪼금 다루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되지? 개발도 안되고 그림도 안되네... 고민을 합니다.

27살 되던 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GM으로 면접을 봤습니다. 첫 시작은, 지금은 위상이 많이 사그라
들었다지만 그때만 해도 게임계의 삼성이라고 그랬던 엔씨였습니다.

주야 3조 2교대로, 온갖 부모욕과 쌍욕을 다 퍼먹어가며 일했고, 한달 급여 112만원이 찍히면 그마저도
좋다고. 외아들 서울에 있는데 방 얻어줄 형편이 안되어, 고시원에 살았지요.

한달 고시원비가, 창문 없는 방이면 28만원에 창문 있는 방이면 31만원인데 3만원이 어딘가 싶어 창문
없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근무 끝내고 집에 와서 잠이 들면, 눈을 떴는데 시계를 보니 1시입니다. 근데 이 1시가 오전 1시인지
오후 1시인지 모릅니다. ㅋㅋㅋㅋ

그래도 한해 한해 월급 받는 재미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여자친구가 생기고, 그 여자친구 덕
분에 회사에서 짤리다시피 나오고, 다른 회사로 이직도 하고. 여튼 그리 어찌어찌 살다가.

도중에 아버지 쓰러지셔서 또 한 1년 고향집에 내려가 부모님 수발하고. 그러다 다시 서울 올라오고.
결혼도 하고, 지금은 나름 번듯한 외국회사에 팀장 달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살면서 다른 길을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게임업계요, 리플 많이 달리니까
상황이 어떤지는 다들 아실거에요. 쉬운 일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택한 길이고 내 운명이다, 내 길이다 정한 길이면 다 들이박아야합니다. 이렇게 자기
길을 정하는 시기가 20대입니다. 

전 운이 좋아서, 제 길을 아주 일찌감치 정했다지만 이런 케이스가 오히려 드문 케이스겠지요.

베오베에 간 글이나 고민게시판을 봐도 20대에 고민 많이들 하십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고민조차 없는 청춘은 청춘도 아닙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머리 뽀개지겠다 싶을만큼 고민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고 도전하면, 온몸 부서지고 박살날 각오로 덤벼드세요. 그러면 답이 보일거에요.

이 글이 제 자랑글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 살아온 길이 있었고, 고민하는 20대 분들보다 경험치가
단 1p 차이라도 높고, 수없이 많은 입사지원서류를 보아온 입장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힘내세요. 기운내세요. 고민하는 당신이 틀린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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