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대표님 말씀엔 저도 공감합니다. 너도나도 SK까는 분위기가 되다보니 없는 사실도 만들어지고, 있는 사실은 과장되고, 심지어 상대편 잘못까지도 SK가 뒤집어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건 사실이죠. (전 삼성팬이고 SK를 무지하게 싫어하며 기아에겐 명가재건을 꼭 이루길 바라는 호감과 기대가 있기에 이번 코시에선 기아를 응원하는 입장이지만 어제는 서재응 선수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K가 야구팬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이유 자체를 단순한 과장과 허위사실로 인한 것이라고 폄하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야구팬들이 SK를 싫어하는 이유에는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 SK로 인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심각한 중상을 입고 선수생활마저 위협을 받았다는 것 말이죠. 한두번이면 사고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만 해도 양준혁 선수가 정근우 선수의 스파이크에 손등이 찍혔었고, 김재걸 선수는 채병용선수의 투구에 뒷목을 맞고 선수생명은 커녕 목숨까지 위협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한창 롯데, 히어로즈와의 순위싸움이 치열하던 중에 진갑용 선수의 손목을 부러뜨려 시즌아웃을 시켜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주장 박진만 선수와 최고참 양준혁 선수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시점에 또한명의 최고 베테랑 선수를 잃어야 했고, 이건 한참 세대교체를 진행하며 나이 어리고 경험 일천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던 삼성타선에 심각한 마이너스로 작용함과 동시에, 박경완 선수와 비견되는 국내 최고급 베테랑 포수를 잃어버려야 했고, 그로 인해 뜻하지 않은 트레이드로 좌완 불펜 지승민 선수까지 내줘야 했습니다.(지승민 선수 대신 받은 채상병 선수를 폄하할 뜻은 없습니다만, 내년 시즌 진갑용 선수가 돌아오면 진갑용+현재윤에 2군에서 실력을 쌓고 있는 기대주 어린 포수들까지 포함하면 삼성은 포수자원이 넘쳐나게 됩니다. 결국 지승민 선수를 내 줘야 했던 것은 진갑용 선수의 부재에 따른 임시방편으로 장기적으로 봤을때 삼성에 득이 되지 않는 일이란 거죠) 이런 상황에서 절더러 왜 SK를 싫어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뭐라 답할까요?
삼성의 프랜차이즈이자 자랑거리이며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선수들의 손목을 꺾고, 뒷목을 맞춰 응급실로 보낸 팀을, 피말리는 순위싸움을 즐기고 있던 참에 팀의 핵심선수들을 시즌아웃시켜준 팀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문제는 비단 이것이 한팀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란 겁니다. 롯데 역시 올해 주장 조성환 선수가 당했죠. 얼굴에 강속구를 맞아 광대뼈가 함몰되었었던가요? 조금만 위로 공이 왔다면 실명할 수도 있었던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팀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죠. 수많은 선수들이 유독 SK와의 '사고'로 인해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잃을뻔했거나 중상으로 인한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야구팬 입장에선 "어라? 너네도?"라는 마음으로 서로 연합해 SK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거죠. 무턱대고 깐다구요? SK팬이신 분들이라도 정근우 박경완 박재홍 같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한 팀'에게 손목이 부러지고 머리에 강속구가 꽂히는 사태가 나면 해당팀에게 '단순 사고였으니까'라며 웃어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 팀'이 다른 팀 선수들도 줄줄이 응급실로 실어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고깝게 보지 않을수 있겠냐구요?
SK의 과도한 승부욕을 욕하는 분위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물론 이 분위기가 과하게 가다보니 사실 욕할 문제가 아닌 일들까지도 욕을하고 속된말로 '까기'시작하게 됐다는건 분명 문제이지만, 위에서 말할 그런 '사고'들의 원인에는 SK의 과한 승부욕이 분명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지니까 말이죠.
야구판에서는 빈볼이 어느정도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한명의 투수가 너무 두들겨 맞다보니 약이 올라 던지기도 하고, 자기편이 부상을 당했을때 보복성 빈볼을 던지기도 합니다. 승부가 이미 갈린 상태에서 상대가 도루나 번트등의 작전을 구사할때도 약올라 던지는 경우도 있죠. 물론 이 모든것은 상황에 따라 심정적으로 이해해줄 수는 있을망정 결코 옳은 일은 아닙니다. 프로라면 어떤 경우라도 승부에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저도 동의하구요.
하지만 모든 승부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누군가에겐 축제인 경기가 누구에게는 너무나도 절망적이고 힘겨운 고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기에서 양팀이 날을 세우고 신경전을 벌이는 사건이 생긴다면, 누가 먼저 포용을 보여주어 사태를 마무리 하는게 나을까요? 지는 팀 입장에선 화가나고, 이 상황을 부정하고싶고, 땡깡이라도 피우고 싶은 심정일겁니다. 난리를 쳐도 더이상 손해볼게 없는 입장이겠죠. 이기는 팀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이 경기는 축제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 상황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누가 먼저 양보하는게 맞을까요?
두산과 SK의 플옵 5차전의 경우, 분명히 먼저 잘못한 쪽은 두산쪽입니다. 금민철의 빈볼성 투구에 이어 지승민의 애매모호한 사구가 이어졌으니까요. 하지만 SK에게 그 경기는 축제였습니다. 홈 2연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수많은 홈팬들 앞에서 기적적인 대역전극에다 큰 점수차의 리드로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어 3년연속 코리안 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둔 입장이었으니까요. 여기에서 두산이 억울함을 못이겨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하면, 승자이자 축제를 즐기고 있는 SK가 꼭 거기에 맞서 개싸움을 벌여야 했을까요? 누가봐도 아웃타이밍인 송구를 받아 이미 기다리고 있는 포수에게 기습적인 태클로 정강이를 걷어차며 자신이 맞은 것을 굳이 되돌려 줬어야 하는걸까요?
큰점수차로 리드 중인 팀이 도루나 번트를 하지 않는 이유는, 프로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느슨한 모습이 아닙니다. 물론 상대에 대한 배려의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굳이 이런 낙승 분위기에서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예방의 목적도 큽니다. 일전에 청년대표님이 한화의 예를 드셨지만, 올해 한화와 SK의 전력은 분명히 다릅니다. SK는 야구팬 누구나가 인정하는 현재 리그 최강자입니다. 8점차 9접차 리드를 그리 맥없이 빼앗길 팀은 분명 아니고, 적절히 관용과 포용을 보여주며 자신들이 최강자임을, 자신들은 축제를 즐기고 있음을 자랑할만한 실력자입니다. SK와 두산의 꼴사나웠던 플옵 5차전에서 왜 SK만 욕하냐구요? 패자의 옹졸함은 그저 무시되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승자의 옹졸함은 구경꾼들의 야유를 부르는 것이니까요. 그건 SK라서 욕먹었다기 보다, 만약 두산이 이기고 있을때 SK의 도발에 넘어가 똑같은 패싸움을 벌였더라도 똑같이 욕먹을 짓이었으니까요.
롯데 조성환 선수가 실려나간 그 경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경기에서 SK 박재홍 선수는 250/250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죠. 그런데 그 경기에서 조성환 선수가 공에 맞아 큰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롯데 투수의 몸쪽공이 박재홍 선수의 무릎부근으로 지나가자 박재홍 선수가 빈볼이라며 뛰쳐나가 싸움이 벌어졌죠. 물론 의심할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자기편 주장이 큰 부상을 당했으니 그 경기에서 대기록을 달성한 자신을 표적으로 보복한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꼭 그래야 했을까요? 설령 상대가 보복성 빈볼을 던진것이라 해도, 상대 주장이 큰 부상을 당했고, 자신은 맞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자신에게는 경사스러운 날에 팀의 고참선수로서 그냥 웃어넘겨주며 격앙된 양팀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결과적으로 그날은 박재홍선수의 대기록 달성일이 아니라 조성환선수의 사고와 그로인한 양팀의 벤치클리어링의 날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대형사고'들을 SK 선수들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라고는 저도 믿지 않습니다. 대체 어느 선수가, 다른팀이라고 해서 동업자들의 머리, 얼굴, 손목에다 고의로 강속구를 뿌리겠습니까? 이건 SK 투수들의 몸쪽공에 대한 집착이 원인이겠지요. 몸쪽 공은 분명 투수에게 아주 효과적인 공입니다. 단, 제구만 된다면 말이죠. 제구가 안되어 어정쩡하게 높게 가면 장타자들의 밥이 되기 마련이고, 변화구를 던지다 실수를 하면 몸에 맞추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사구가 자칫 큰 사고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때문에 웬만큼 제구가 좋지 않은 투수들은 몸쪽공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사실 SK에는 제구력 좋은 투수가 많기는 하죠. 하지만 이런 사고가 잊을만하면 하나씩 터져나오는 것을 보면 SK라고 해서 모든 투수가 몸쪽승부를 즐길만한 제구력은 아닌것 아닐까요? 평소에 아무리 몸쪽 꽉찬 공을 던지면 뭘합니까? 한시즌에 몇명씩 응급실로 실려보낼 정도의 '어이없는 실투'를 던진다면 말이죠. 누구나 실투를 크게 할 수는 있습니다. 바깥쪽 공이 기가막힌 투수라 할지라도 가끔은 어이없는 공 하나가 뒷그물로 굴러가기도 하죠. 하지만 몸쪽이라면? 패스트볼 정도로 끝나진 않을겁니다. 그것도 실투하긴 쉽지만 타자가 피할 수 있는 구속의 변화구도 아니고, 보고도 못피할, 맞으면 큰 부상을 당할 "빠른직구"를 실투하는 거라면 말이죠. 몇차례나 사고를 일으킨 채병용 선수가 여전히 몸쪽공을 던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담력이 대단하다'라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담력'이라는 것은 자신의 위험을 걸고 뭔가를 할때 붙여줄 수 있는 말이지 남의 목숨을 걸고 뭔가를 할때 붙일 말은 아닙니다. 본인이 제구가 안되면 제구를 가다듬던가, 아니면 위험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지 몇번이고 대형사고를 일으킨 선수에게 몸쪽공 제구가 기가막힌다는둥 담력이 좋다는둥 이런 표현을 하는게, 그 공에 내가 좋아하는 선수를 실려보냈던 팬들 입장에서 어찌 보일까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효과적인 승부수가 아무리 위험하다 한들, 이기기 위해서는 도전해야 한다는 말은 저도 동의합니다. 프로니까요. 하지만 그 '위험'이 본인의 것이 아니라 남의 소중한 스타들의 '위험'을 걸고 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왜 욕을 하냐"는 반문은 하지 말아야 할겁니다.
김성근 감독의 작전, 용병술, 훈련방법 등등 그분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분이 욕먹는건 스스로 그렇게 욕먹을 행동을 하시니까 그런거라 봅니다. SK와 삼성이 각각 1위와 4위 추격을 위해 벼랑끝에서 만난 시즌 마지막 시리즈에서 김성근 감독은 선발 위장오더로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했습니다. 선발이 송은범 선수였나요? 부상으로 교체한다는 것을 3분전에 알린 비상식적 행동을 눈감아주고, 피치못할 사정이라고 넘어간다 칩시다. 부상이라는데 당연히 교체해야죠. 하지만 그 바로 얼마전에 김성근 감독이 재미난 말씀을 하셨습니다. 1위싸움중인 기아가 LG와 맞붙을때, 이미 순위싸움에서 밀려난 LG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며 당시 부상으로 쉬고 있던 LG에이스 봉중근 선수에게 "프로라면 몸이 아프더라도 팬을 위해 나와서 던져야 한다"고 했었죠. 자기팀 투수는 위장오더 의심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부상이니까 빼는 감독님이 말이죠. 승부에 눈이 멀어 할말 안할말 안가리고 막하시는 타입이기에 비웃음과 욕을 받는겁니다.
WBC는 어땠었나요? 작년시즌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 맡기로 하자 해놓고 김성근 감독은 우승 후 건강이 안좋다며 고사하셨죠. 결과적으로 진짜 건강 안좋으신 김인식 감독이, 4위싸움 탈락으로 인해 팀을 추스려야 할 시기에 억지로 WBC 감독직을 맡으셨고 결과는 올해 한화의 성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가지로 SK가 왜 싫은지, 왜 많은 야구팬들이 SK를 싫어하는지 적어놨지만 저도 SK의 실력은 인정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최강팀이고, SK가 한국야구의 발전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부정할 수 없죠. 하지만 그 최강의 실력과, 다른팀들이 SK의 승리전략을 따라한다는 것은 타팀팬들이 SK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강한팀은 물론 다른 팀과 다른 팀 팬들의 시기와 질투, 견제를 받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질투, 견제였는지 진정한 혐오였는지는 세월이 지난 뒤에 평가받으며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삼성을 응원하고, 원년부터 시작해 꾸준히 강팀 중 하나로 버텨왔으며 몇차례 최강자의 자리까지 올랐던 팀이 삼성입니다만, 그 시절들 중에는 추억으로 기억되는 해도 있고 부끄러움으로 기억되는 해도 있었습니다. 승부조작으로 망신을 당한 해도 있었고, 패배했다는 이유로 팬들이 난동을 일으킨 해도 있었고, 다른팀의 잘하는 선수를 무조건 돈으로 사들였던 때도 있었죠. 한때는 팀의 전설적 스타를 매몰차게 내쫓았던 창피한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삼성이 키워낸 투수들, 배영수, 권오준, 오승환 등을 데리고 리그를 재패하며 투고타저의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고 또 그렇게 우승을 맛보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부끄러웠던 때도, 자랑스러웠던 때도, 최강자였던 당시에는 그저 타팀의 비난을 강자에 대한 질투라고 치부했었더랬죠. 하지만 지나고 나면 모두 기록에 남고,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의 기억은 나뉘어지게 됩니다.
SK는 현재 리그를 지배하는 최강자입니다. 재작년, 작년을 연속으로 우승하고 올해엔 기아와 함께 리그를 이끌다 아쉬운 2위를 하기는 했지만 한국시리즈 패권을 놓고 다투는 명실공히 최강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어느팀이든 10년 20년 계속해서 최강자일 수는 없습니다. 잘하던 선수들도 나이를 먹고, 세대교체도 해야하고, 2~3년 우승하다보면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고, 최강자에서 도전자의 입장으로 바뀌는 순간은 올겁니다. 그때가 왔을때, 야구팬들이 '당시의 SK는 정말 무시무시한 지배자였지'라고 웃으며 회상할지, '자신들이 대기록을 세우는 경기에서도 항상 싸움을 벌이고 타팀 선수들을 줄줄이 부상으로 실려보낸 팀이었지'라고 인상 찌푸리며 조소할지는 SK의 태도에 달려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