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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제1권 독일어 제1판 서문 (마르크스, 역자: 김수행)
게시물ID : readers_31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블루펜
추천 : 2
조회수 : 264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6/13 21: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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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제 1 판 서문 (마르크스, 1867)
Preface to the First German Edition (Marx, 1867)

노동자 계급의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혁명가이며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 엥겔스와 함께 그는 그의 이름을 딴 마르크스주의 철학,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창조했으며, 노동자 계급의 정치 경제학과 과학적 공산주의를 확립했다. 그의 철학은 인류의 철학 사상과 사회 이론적 사상에서 하나의 혁명을 이룩했다. 마르크스는 독일 노동 운동과 국제 노동 운동의 교사이자 지도자가 되었으며, 한 세대 전체에 걸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을 교육했다.


-- 한국철학사상연구회편, 『철학대사전』, 346쪽

내가 이제 제1권을 세상에 내놓은 이 책은 1859년에 발간된 나의 책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Zur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 A contribution to the Criticism of Political Economy)』의 속편이다.사족1) 그 책과 이 책 사이에 이처럼 긴 간극이 생긴 것은 몇 해 동안의 질병으로 나의 작업이 거듭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나온 위 책의 내용은 이 책 제1장(*주: 제2판 이후부터 제1~3장)에 요약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서술의 전후 연결과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서술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전의 책에서는 지적하는 데 그친 많은 점을 이 책에서는 더 상세하게 전개했고, 또 반대로 거기에서는 상세하게 설명된 점들이 여기에서는 다만 간단하게 지적되어 있다. 가치와 화폐의 학설사에 관한 절들이 여기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읽은 독자는 이 책 제1장의 주들에서 이 학설사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 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 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나는 가치의 실체와 가치량의 분석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했다.주1) 화폐형태로 완성되는 가치형태는 매우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이상이나 이 화폐형태를 해명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한 반면,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형태들의 분석에는 적어도 거의 성공했다. 무슨 까닭인가? 발달한 신체는 신체의 세포보다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서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the power of abstraction)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이다. 겉만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이 형태의 분석은 아주 사소한 것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은 미생물의 해부학이 다루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작은 것이다(*주: 예컨대 생명의 신비 등을 밝힐 수 있는 DNA 구조나 Genome Project처럼 작지만 중요한 것을 다룬다는 의미임).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한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물론 무엇이건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고, 그에 이어서 독자적으로 사색하려는 독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리학자는 자연과정이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며 교란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에서 그것을 관찰하든가, 또는 가능하다면 그 과정이 순수하게 진행될 수 있는 조건 밑에서 실험을 한다.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상호작용의 형태들이다.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나의 이론전개에서 주요한 예증으로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사족2) 그러나 만약 독일의 독자가 누구든지 영국의 공업·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위선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든가, 독일에서는 사태가 결코 그렇게는 나쁘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자기를 위안하려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의 발전 정도가 높은가 낮은가는 여기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칙 자체(laws of themselves)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하며 관철되는 이 경향들(tendencies) 자체에 있다. 선진 산업국은 후진국에게 그 자신의 미래상을 보여 줄 뿐이다.사족3)


그 뿐 아니라 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확립된 곳(예컨대 진정한 공장)에서는, 공장법이라는 규제가 없어서 사태는 영국보다 훨씬 더 나쁘다. 기타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서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 뿐만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현대의 고난과 아울러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고난(이것은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양식이 진부한 사회적·정치적 관계들과 함께 존속하기 때문에 발생한다.)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죽은 것에 의해서도 고통받고 있다. 죽은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독일과 서유럽 대륙의 기타 나라들의 사회통계는 영국의 통계에 비하면 형편없다. 그렇지만 그 통계는 메두사의 대가리가 보일 만큼은 면사포를 걷어 올려주고 있다. 만약 우리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경제상태에 관한 정기조사위원회를 임명한다면, 만약 이 위원회가 영국에서처럼 진실을 규명할 전권을 가진다면, 그리고 만약 이 목적을 위해 영국의 공장감독관, 공중위생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영국의 의사, 그리고 여성·아동의 착취, 주택·영양 등의 상태를 조사하는 영국의 위원회 위원들과 같은 전문지식이 있고 편견이 없고 공정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에 대해 깜짝 놀랄 것이다. 페르세우스(Perseus)는 괴물을 추격하기 위해 도깨비 감투를 써야 했지만, 우리는 괴물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위해 도깨비 감투를 눈과 귀밑까지 깊이 눌러쓰고 있다.


우리의 상태에 대해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말자. 미국 독립전쟁(*주: 1775~1783)이 18세기 유럽의 중산계급에 경종을 울린 것과 마찬가지로, 19세기에는 미국 남북전쟁(*주: 1861~1865년)이 유럽의 노동자계급에 경종을 울렸다. 영국에서는 변형과정(the process of transformation)이 이미 뚜렷이 보인다.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응당 대륙으로 옮아올 것이다. 대륙에서의 변형과정은 노동자계급 자체의 발전 정도에 따라 더 가혹한 형태를 취하든가 더 인도적인 형태를 취할 것이다. 더 고상한 동기가 있든 없든, 현재의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법률에 따라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가장 맞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이 책에서 영국의 공장 입법의 역사와 그 내용 및 성과에 매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어떤 국민이든 다른 국민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또 배울 수 있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발전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 사실 현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목적이다. -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는 그러한 발전의 진통을 단축하고 낮출 수는 있다.


만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언급하고자 한다.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밋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았다.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personification),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해관계의 담지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입장과는 달리, 개인이 이런 관계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은 주관적으로 아무리 이런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사족4)


정치경제학 분야의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부닥칠 수 있는 그러한 적들과 부닥치는 것만은 아니다. 정치경제학이 취급하는 문제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 -즉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는 복수의 여신- 이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저지하는 투쟁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예컨대 영국의 국교는 그의 신앙조항 39개 중 38개를 침해하는 것은 용서할지언정 그의 수입의 1/39을 침해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무신론 그 자체는 기존의 소유관계에 대한 비판에 비하면 사소한 죄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주: 기존의 소유관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 한 예로, 최근 몇 주일 사이에 발표된 청서(淸書), 『공업문제와 노동조합에 관한 제국 재외 사절의 보고』를 지적하고 싶다. 영국 왕의 재외 사절들은 이 보고에서 독일과 프랑스, 요컨대 유럽대륙의 모든 문명국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현존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분명해지고 있으며 또 불가피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대서양 저쪽에서 미국 부통령 웨이드는 공개집회에서, 노예제도의 폐지 다음으로 현재의 자본관계와 토지소유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문제되고 있다고 천명했다. 시대의 대세가 이러하므로, 이 대세는 진홍색 망토(*주: 왕권)로도 흑색법의(*주: 종교)로도 감추지 못한다. 물론 이것이 내일이라도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의 사회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유기체라는 예감이 지배계급 안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제2부)과 총과정의 여러 형태(제3부)를, 마지막 제3권(제4부)은 경제학설사를 취급할 것이다.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인(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카를 마르크스
런던
1867년 7월 25일


사족1) 『자본론』 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 정보가 주도하는 현재의 정보화 시대를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정보화 시대도 넓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기술과 정보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고, 마르크스가 제기했던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들도 잔존하기 때문에 『자본론』 의 기본적 관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설사 현재의 정보화 시대에는 『자본론』의 기본적 관점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자본론』 은 19, 20세기의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철학사상』 별책 제3권 제18호 마르크스 『자본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손철성 2004) 중에서
주1) 나의 쉬운 설명이 더욱 필요하게 된 것은 슐체-딜리치(Schulze-Delitzsch)를 반박한 라살(Feridinand Lassalle)의 저작 중 그가 이 제목에 관한 나의 연구의 '정신적 진수'를 제공한다고 언명하고 있는 절에서조차 중대한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라살은 자기의 경제학 저작의 모든 일반적인 이론적 명제들(예컨대 자본의 역사적 성격, 생산관계와 생산양식 사이의 관련 등등에 관한 명제들)과 용어에 이르기까지 나의 저작에서 문자 그대로 (출처도 밝히지 않고) 빌려 쓰고 있는데 이것은 물론 선전을 고려한 데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이 명제들에 관한 그의 자세한 서술과 실제의 적용에 대해 나는 물론 언급하지 않겠다.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족2) ‘생산양식’이란 무엇인가? 생산양식은 영어로 ‘mode of production’으로 표현되며 맥락에 따라 생산방식, 생산방법 등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하나의 고유명사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생산의 관점에서 사회를 보면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나눌 수 있는데, 생산양식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역사를 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인류가 대체로 ‘원시공산제 사회 - 노예제 사회 - 봉건제 사회 - 자본주의 사회’의 단계를 거쳐왔다고 보았다. 이렇게 사회발전의 단계를 구분하는 기본 원리가 ‘생산양식’이다. 즉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어떤 형태로 변화되어 왔는가로 사회발전의 단계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 중 ‘경제적 토대’를 이루는 것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이 가장 기본이 된다. 생산을 하면서 맺는 관계가 ‘생산관계’이며,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 등의 생산을 위한 수단과 관계된 것이 ‘생산력’이다. 생산방식은 협업에서 수공업(manufacture), 그리고 기계제대공업으로 발전하였다.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이 바로 기계제대공업이다. 마르크스는 기계가 등장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자기 발로 서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수공업 사회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숙련노동자의 자리를 기계가 대체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종속과 억압이 본격화되기 때문인데, 이를 “실질적 종속(포섭)”이라고 부른다. 생산수단은 노동수단(기계)과 노동대상(원료)을 말하며,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 생산물의 처분 문제, 생산물의 교환 문제 등을 말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본가계급이 기계제대공업에 의거해 임금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이 기본 특징이다.

‘경제적 토대’에는 언제나 계급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존재한다. 계급들 간의 이해관계가 달라 계급투쟁 또한 존재한다.‘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는 이런 계급투쟁을 억제하기 위한 철학, 법, 사상, 정치 등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자본가 계급에게 유리한 이데올로기가 반영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분석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관계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이라 할지라도, 비자본주의 혹은 전(前)자본주의 생산양식도 공존한다. 예를 들어 자영농의 경우 자본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므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수탈하고 착취하는 과정, 즉 두 생산양식의 ‘접합(articulation)’을 파악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저곡가 정책이나 한미FTA 등으로 농민을 수탈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수탈하는 과정이다. 두 생산양식의 접합은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 연구에서 중요하다. 또한,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1850년대 영국은 당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때문에 영국의 사례와 영국의 문헌자료가 『자본론』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런 점에서 영어판이 독일어판보다 이해하기 쉽다.

김수행 교수님의 정치경제학 강의 2 _ 『자본론』 서문과 시초축적에 대해 중에서
사족3) 이를 두고 마르크스가 모든 나라가 인류 발전의 5단계(원시공산제 사회 - 노예제 사회 - 봉건제 사회 - 자본주의 사회)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1881년 소련의 자수리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사회 발전의 5단계설이 ‘서구중심적’이라고 고백했다. 시대적 상황 상 마르크스는 동양 사회를 전혀 알지 못했을테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는 1870년대 소련 농촌공동체인 미르에 관심을 가졌는데 미르가 토지공유, 공동노동, 평등배분 등 원시공동체적 성격을 가졌고 미르를 통해 소련이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도 사회주의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미르 자체의 생산력 부족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인류 발전의 5단계가 어느 사회에서나 필연적이라고 본 것은 아니다.

김수행 교수님의 정치경제학 강의 2 _ 『자본론』 서문과 시초축적에 대해 중에서
사족4) 자본가는 '자본'(capital)이라는 경제적 범주{'자본은 자기의 가치를 증식시키려는 가치(self-vaporising value)다'}가 인간의 형상을 띠고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자본론』에서는 자본가를 묘사할 때 인정이나 인류애나 환경보호 등과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 없이 오직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될수록 적은 임금을 주면서 될수록 오랫동안 노동시키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자본가의 이익은 노동자의 이익과 대립하게 된다.

이처럼 자본의 인격화 또는 화신(化身)으로 자본가를 파악하는 것은 자본가의 본질적 특성을 부각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와 발전의 연구에서 개인(의 의지나 희망)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방법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이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 행위나 생산자의 이윤 극대화 행위를 합계하여 사회적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 인데, '개인의 합이 사회'라는 인식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개인이 독립적이고 고립적인 존재(예: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개인들의 행위를 단순히 합계하여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소비자의 무차별곡선을 그릴 때 소비자가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이것은 현실 타당성이 없는 가정이다. 둘째로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이 발생한다는 점인데, 예를 들면 모든 개인이 저축을 증대시키려고 노력하면 사회 전체에는 유효수요가 부족하여 생산의 감소, 소득의 감소를 통해 결국 저축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면서 이 사회가 개인들의 행위를 규제한다고 본다. 자본가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초과이윤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며, 노동자들은 자기의 노동능력을 가장 비싼 값으로 팔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동학(dynamics)에 의해 경제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다.

-- 김수행 교수님 자본론 강의노트 2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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