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쿠민은 아직도 이유없이 박해받곤 한다. 다른 일본 내 소수 집단들인
아이누,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오키나와인들은 각각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선주민 인정, 한류, 중화가(일본의 차이나타운), 동화정책 등으로 어느정도 사회 내 포용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라쿠민에도 비슷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긴 부족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부라쿠민 출신은 노골적으로 차별받는 일이 다반수였고,
관동 대지진 때나
태평양 전쟁 말기때 이들은 특히 일본 극우세력들로부터 '화풀이'식으로 참혹하게 당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1980년대에 일본을 방문한 한 사업가는 당시 잔존해 있던 부라쿠민의 동네에 대해, 여자들은 가끔 관청의 허가를 받아서 감시하에 일반인 동네로 나와서 생필품을 사 갈 수 있으나 남자들은 절대 나오게 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그 동네에 '일반인이 들어가면 살해당할 것이 자명하므로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다. 직접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예비범죄자 취급
국토교통성 발간 지형도에서도 그 동네는 지도상에서 존재하지 않고 아는 사람만이 알음알음으로 알며, 일본의 언론 또한 국익수호 차원에서 지금도 잔존하는 부라쿠민 동네에 대해서는 기사를 쓰지 않기로 자주규제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글 어스에서 고지도와 현재 지형을 겹쳐볼 수 있는 기능을 이용하면 부라쿠민이 살았던 마을을 볼 수 있다고 해서 한때 문제가 되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04/2009050401530.html) 구글 어스 기능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2차 사용에 따른 악영향이 문제된 것. 일본 총무성에서도 처음에는 이 기능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지만, 부라쿠민 단체들의 건의에 의해, 그들에게 악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구글에게 총무성 이름으로 요청한 것이다. 그에 대해 구글은 원천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능을 삭제하였다.
오늘날은 일본 경제의 급성장과 정부 주도의 처우 개선 노력등으로 인해 부라쿠민 거주지의 주거 환경은 상당 부분 개선되었으나, 현재까지도 암암리에 '부라쿠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취직, 결혼 등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불이익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본 사회의 민감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특수부락지명총람 등 사립탐정사무소, 흥신소 등에서 비밀리에 발간, 유통하는 리스트를 구입하여 지원자의 출신지를 가려내는 데에 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꽤 있었다. 특수부락지명총람의 존재는 일종의
도시전설로 여겨졌으나, 1975년에 최초로
부락지명총람사건이 언론에 드러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고 최소 9종류의 책자가, 채용, 결혼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대의 정서에 역행함을 알고도 발간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부라쿠민 차별철폐운동이 진행될수록 색출작업도 고도화되어, 1990년에는 도쿄 도내의 행정서사들에 의한 부라쿠민 의심자 족보구매사건, 1998년에는 오사카 시내의 대형 흥신소가 기업들로부터 차별신원조사를 의뢰받은 사건 등이 일어났다. 위의 링크 기사에서도 대기업에서 부라쿠민으로 의심될 경우 추적해서 기어이 떨어뜨린다는 익명의 제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신상털기 시장이 버젓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필터링은 물론 믿기지 않지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는 사례도 있다. 1963년 5월 1일 발생한 사야마 사건(狭山事件)으로, 사이타마현 사야마시에서 일어난 여고생 납치피살사건에서 경찰측이 납치범을 잡지 못하자 대신 시 근처의 부락에 쳐들어가서 당시 24세의 이시카와 카즈오(石川一雄)를 붙잡아 고문 후 자백을 받아내는 대규모
병크를 저질렀다. 이시카와 용의자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94년에 가석방되었다.
아소 타로가
자민당 총리 후보 중 하나였던 노나카 히로무를 비난하면서 한 발언이 "저런 부락민 출신 같은 자가 천황폐하를 보좌한다면 일본은 그대로 망할 것이다"였다고 한다. 격분한 노나카 히로무는 TV에 출연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부라쿠민에 대한 우익 및 집권 세력들의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부락해방동맹 등의 단체는 부라쿠민 차별 해소를 명분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로 엄청난 양의 비리를 저질러서 밝혀진 사건만도 적지 않다. 오히려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이 수십년 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는데, 부락해방동맹같은 단체들이 부락민 차별문제를 역으로 심화시키고 있다는 인상도 존재한다. 그리고 일본 최대의 사기 사건인 이토만 사건의 주범으로 유명한
재일교포 출신 사기꾼인
허영중도 부라쿠민 해방운동 계열에서 일을 했었다. 그러나 분명히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은 암암리에 남아있는 문제로, 단체에 대한 비판을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당위성으로 연결시키는 오류는 있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