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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bestofbest_315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스로
추천 : 189
조회수 : 14354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09/10/27 21:08:31
원본글 작성시간 : 2009/10/27 12:32:43
저는 오유를 인포메일 시절부터 이용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글 한번 안남긴 눈팅 유저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될 날이 올줄은 저도 몰랐네요.

정말 이런 상황이 오니깐 오유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쓰는 첫글이 도움의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이런 저런 사설은 집어치우고 짧게 쓰고 싶지 않지만 여러분이 저의 마음을 세심히 느끼게 조금 길게 씁니다.

저희 어머니는 자살을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일입니다.

제 밑으로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 마자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심장수술을 받은 아이입니다.

어머니가 출산을 할때 엄청 고생을 하셨습니다.

지금 동생은 완치되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는 어렸을 때라 잘 몰랐는데 크면서 어른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들은 결과 위암에 걸려 투병을 하시다가 의사가 아버지에게 가망없다는 소리를 하는 걸 들었다고 합니다. 

제 짧은 생각이나만은 치료비때문에 집안의 가게 문제가 자신때문에 피해를 입는다는도 생각과 극심한 방사선 치료의 고통을 못참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집안 일과 회사일을 동시에 하면서 생활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저는 철없게 굴었습니다.

제 3살 터울 여동생이 한명있는데 동생이야 어리다고 치고 저는 아버지를 도와드려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집안일을 벌려놓았죠.

처음에는 아버지도 참고 버티었지만 감당이 안됬겠죠.

그래서 여기저기 선도 보고 했지만 애 둘 달린 남자한테 여자들이 크게 관심을 안보인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저와 제 동생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처음보는 아줌마가 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저를 기억하더군요.

저보고 자신을 저희 엄마 고향친구라고 소개하면서 많이 컷다고 하시더군요.

얼마 후 제 생일 날 그 아주머니가 왔고 아버지는 이제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그 분은 저희 엄마가 됐습니다.

지금 저희 엄마도 예전에 사별을 하고 슬하에는 큰딸과 작은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엄마와 4살, 3살 터울의 이복누나, 이복형이 생겼지요.

처음에는 정말 집안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큰누나가 재혼을 반대했고(울고 불고 욕을 했죠) 재혼을 한 후에도 누나, 형, 저와 제 동생 모두 적응을 못했습니다.

원래 저희집은 부모님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한테 존댓말을 하라니 굉장히 어색했죠.

평소에 아버지에게 반말로 하다가 존대를 하니 어색할만도 했죠.

그뿐만이 아니라 재혼가정은 다들 알겠지만 니새끼니 내새끼니하며 편을 갈랐죠.

저도 크면서 조금은 이해가 갔습니다.

제가 재혼한 가정의 부모인데 상대방 자식만 챙기는 듯하고 내 자식한테는 차별대우하는 것 같으면 솔직히 화 나겠죠.

하지만 저희집은 그런 부모님들의 편가르기가 심했고 정말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재혼한 후에 용돈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뭐 그것이 어머니 방침이라는데 어린 제가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병을 팔고 1시간 거리의 학교를 버스를 안타고 걸어다니면서 용돈으로 썻죠. 

고등학교때부터 제가 스스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썻습니다. 

지금은 졸업을 하고 친구와 반지하방에서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서 혼자서 독립해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형, 누나, 동생 저희 모두가 그렇게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별대우를 받는 다는 생각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희 예전 어머니 친구분들을 만나면 '니네 계모가 용돈은 주니? 니네 형, 누나한테만 몰래 챙겨주는거 아니야?'라고 물어도 저는 전혀 그런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차별대우는 없었지만 정상적인 집안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매일 싸우고 툭하면 이혼하자느니 하는 말이 오갔습니다.

저는 그런 집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어린마음에도 집나가면 고생인데 여기서 나가면 살데가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저희 형제 모두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도 한번은 너무 힘들어 아버지에게 이렇게 살거면 이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나는 너희들은 없어도 니 엄마없이는 못산다고 하더군요.

그당시에는 정말 이해가 안가더군요.

나중에 어른들에게 들으니 남자는 자식새끼없이는 살아도 마누라 없이는 못산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제가 미혼이라서 백프로 이해는 못하지만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

이런 집안에서도 가장 바르게 산 것이 형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데 항상 형은 장날만 되면은 나가서 어머니를 도와줬고 참 제가 존경 할 정도로 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런 형을 엄청 좋아했구요.

그에 반해 저는 저희 누나를 엄청 싫어합니다. 당시에는 거의 말을 안 섞을 정도로 싫어했습니다.

왜냐? 엄청 싸가지가 없어서입니다.

저희 친누나가 그렇게 해도 싫어할 판에 새로 생긴 이복누나가 그렇게 싸가지 없이 구는데 좋아 할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살아온 집이 제가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의 직장문제로 형과 저만 지방에 남고 누나와 여동생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형과 저만 지방의 한방에 남으니 완전 저희집은 친구들의 아지트였고 저와 형은 치구박구 싸우면서도 정은 깊어져 갔죠.

지금은 따로 살고 있지만 이틀전에도 같이 만나 술 한잔 할정도로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어딜가서 술을 마실때에도 형 자랑을 하였고 진짜 친형갔다며, 친형과 진배 없다고 말하곤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부모님과 떨어져 살 때) 제 동생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적응을 못하여 엄마가 싫다면서 친척누나네 집으로 도망을 갔고(저희 친척누나와는 나이 터울이 심한데 저희 어머니를 엄청 싫어하기 때문에 받아줬습니다.) 친척누나네 집에서 고등학교를 보내다가 또 친척누나와 싸워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거의 제 멋대로 하다시피 해서 저도 거의 손을 놓았죠.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서 대학에 붙었지만 집안 가정상 대학을 포기했습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했는데 한 직장에 오래 있지를 못했습니다. 

한 직장에 3개월, 다른 직장에 2개월, 여기 1개월, 여기 2개월 식으로 계속 한 곳에 오래 정착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장을 잡으면 조금 오래 있으라고 권유도 하고 혼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정신을 못차리고 어머니와 싸우더니 또 다시 친척누나네 집으로 도망을 가더군요.(친척누나는 이때 또 동생을 받아주었습니다.)

하지만 또 친척누나와 싸워 이번에는 친구네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정말 동생은 무슨 역마살이 끼엇는거 마냥 한곳에 정차을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돈이 없으면 주위사람들한테 전화해서 돈 좀 보내달라고 해서 쓰고 사람들이 여러번 당해서 돈을 안보내주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서 돈 받아쓰고를 하더군요.

저는 그것이 단지 철이 없어서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아직 세상 무서운줄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세상의 쓴맛을 보면은 철이 들것이라고, 철이 들면 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도 그렇고 저 또한 하나뿐이 없는 동생, 저렇게 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아니다 싶을때는 저희집에 데려다가 훈계도하고 혼도 내고 하면서 바로 잡을려고 노력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정말 말을 안 들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가서는 포기를 하게 됬습니다.

니 알아서 살아라. 언젠가는 철이 들겠지.

친척누나한테 가끔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 좀 잘 돌봐주라고 어디가서 허튼 짓 하는거는 아니냐고, 걱정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친척누나한테 내버려 두라고, 고생 좀 해봐야 철 좀 든다고, 지가 술집에 나가던지 도우미를 하던지 뭘 하던지 지 알아서 살겠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저의 손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4시에 전화가 오더군요. 마침 안자고 있어서 전화를 받았지만 받으면서 이것이 또 술쳐먹고 전화했나 했죠.

근데 전화를 받아보니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동생이 펑펑 우는 것입니다.

걱정이 돼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애가 갑자기 죽고 싶다고 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말해보라고 하니깐 충격적인 얘기를 하더군요.

어렸을 때 형이 동생한테 성추행을 했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 까지, 동생이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가기 전까지 성추행을 했답니다.

거기다가 제가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갔을때는 동생이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집안에 아무도 없으니 성폭행을 할려고 했답니다.

돈준다고하면서 한번만 하자고 했다는 군요.

왜 아무말도 안했냐고 하니깐 부모님이나 저한테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다는군요. 

그리고 몽둥이로 매번 위협을 했다고 합니다.

진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습니다.

차마 자세한 얘기는 좃같아서 못하겠는데 제가 집안에 있을 때 제가 컴퓨터하는 순간 옆에 있으면서도 팬티에 손을 넣고 성추행을 했답니다.

그순간 전 그 천하의 그 개새끼를 진짜 달려가서 패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동생이 지금은 도우미일을 하는데 자기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왜 친구들 다들 대학 생활을 할때 자기는 이런 삶을 살아야 되냐며.

죽고 싶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엄마를 죽인거냐고, 자기가 심장수술 받아서 엄마가 암에 걸린거냐고, 주위에서 전부 그렇게 얘기한다고, 저한테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미안하다고, 니 잘못이 아니라고,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바로 동생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서 동생과 얘기를 했습니다.

동생이 빚진 돈도 꽤 되는데 일단 다 정리하고 당분간 저랑 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 빚이 꽤 돼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동생은 지금 피곤해서 집에서 자고 있고 저는 지금 피시방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자신이 가장 중요했고 제 자신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하지만 제 주위를 전혀 신경쓰고 살고 있지 않더군요.

심지어 제 피붙이에게 조차.

반성하고 앞으로는 제 주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동생도 철이 없어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제 동생을 그렇게 만든것은 다름 아닌 저더군요.

원인은 결과만 생각하고 원인을 생각할려고 하지 않은 저였습니다.

지금 정말 많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미안하구요.

처음에는 피가 꺼꾸로 솟고 앞뒤 판별이 안되었지만은 지금은 이성을 많이 되찾았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도와달라고 하는것은 여태까지 친형처럼 따랐던 그 개새끼를 달려가서 패 죽이고 싶기도 하지마는 그것보다는 그새끼 인생을 조지고 싶습니다.

그새끼는 제 동생 인생을 망쳤습니다. 인간만도 못한 짓을 한 개새끼죠.

사법처리를 해서 그 새끼가 퍼 싸질른짓이 지 발목을 잡고 사는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법처리 가능한가요?

가능하다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저겠지요.

근데 저도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희 집안은 파탄난 것입니다.

저희 그 개새끼는 물론이고 엄마와 누나도 못 볼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이혼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떻든 간에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 깊은 골을 안고 살겠지요.

여러분은 저같은 후회 할 짓을 안했으면 합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좀 더 주위에 관심을 가지세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베스트에 보내주십시요.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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