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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총정리 TXT
게시물ID : sisa_2138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운동을하자
추천 : 14/2
조회수 : 145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07/12 13:57:58









미안.. 광주 5.18민주화 운동에대해서 정리한다고 해놓고선,


미루다가 결국 오늘 완성하게 되네,,


아 참고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5월18일에만 일어난 사건아니다.


5월18일~ 5월27일 사이에 일어난거야.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다섯가지 주제로 정리해봣어.




우선 첫번째 주제.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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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박정희가 측근 김재규에게 총맞아서 죽자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어.


아,, 이제 독재자 박정희가 총맞아서 죽었으니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오려나,, 이렇게 기대하게 된거야.


실제로 독재자 박정희 죽음 (1979)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찼어.


하지만 쿠데타수괴 전두환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대검을 꽂고

12.12 쿠데타를 일으켜 불법으로 권력을 쟁취하게 되지.


그러자 국민들은 분노했어,, 그러자 전국은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로 가득차게되.


전두환 물러가라!를 외치면서 말이야.


전국적으로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가 일어났지만. 그중 유독 호남(전라도) 지방이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어.


호남은 쿠데타수괴 전두환에게 있어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어,.


전두환은 무서워 했어.. 국민들이 이토록 민주화를 외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민주화의 열기가 점점더 강렬해지고 불타오르니까..


결국 전두환은 전국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게 되.



비상계엄령이 뭐냐구?


일반적으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


현재 유지되고있는 모든 법집행의 권한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게 되.



위기의 순간에 효율적인 지휘를 위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확 올려주고



이를 뒷받침하기위하여,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찰력을 대신 할 수도 있는거야.



또한 "모든 시위나 데모역시 지금처럼 함부로 할 수 없게 되는거지"



전두환 시절 계엄령이 왜 나쁘냐면,..



"비상계엄령을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억제하는데 썻다는거야".



전두환 물러가라 or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달라 라고 외치면



그즉시 군대투입&경찰투입되가지고 그냥.. 구타당하는거야



시위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맞고 강제해산당했어,.



자이제 왜 비상계염령이 나쁜건지 알게 됬을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는 계속 이어져갔지.


전두환쿠데타세력은 1980. 5.17일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어.


그러자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웟던 호남지방. 그중에서도 특히 광주의 반발은 극심했지.


그래서 결국 악질 전두환 쿠데타 정부는 "특전사 소속7여단과 11여단 병력"을 광주로 내려보내게 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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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주제. 5.18은 폭동이다 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






아랫글의 내용의 대부분은 오유인 twinbee님이 쓰신글이며 이내용은 베오베까지 간글이야.


1번 ~ 11번의 내용은 twinbee님이 쓰신글이며 12번은 내가 작성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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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선량한 시민들이 34개의 무기고를 어떻게 4시간만에 터냐?

북한의 개입이 분명히 있었던 '폭동'이 맞다.

@ 그래. 털었다. 진짜로 털었다. 근데 그 당시 무기고를 털었던 사람들은

'간첩죄'가 아닌 '내란죄' 명목으로 잡혀갔다.

간첩들을 옥에서 내란죄 이름으로 밥먹여주다 내보낸 전두환이 좌빨이였네.

그리고 무슨 무슨 사단에서 털어갔다!! 드립치는데,

턴 무기고의 대부분은 '예비군 무기고'

※2) 북괴새끼들이 공작원을 3팀으로 나누어서 광주에 내려 보냈음.

그거 탈북자가 증언했는데 진짜 북괴간첩과 함께한 폭동이네

@ "당시 대남공작총책이었던 김중린 비서(훗날 아웅산테러 실패와 전두환에 대한 여러가지 공작 실패로 김일성-김정일 부자로 부터 "똥물에
튀겨죽일놈"이란 낙인이 찍히고 숙청당함)가 1200명 정도의 특수부대를 차출해서 남한의 광주에 침투시켜서 사태를 격화시키고자 시도했었다."

"실제로 일선급 특수부대에서 인원선발도 끝났고 세부계획도 마련되어있는 상태였지만 북한측이 예상했던 것 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찍
남측에 의해 진압되어버린 바람에 투입하지 못했고, 김중린은 시기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에 엄청난 문책을 받았다."

-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강명도 저 中



+ http://www.dayogi.org/?doc=bbs%2Fgnuboard.php&bo_table=hottalk&page=1460&wr_id=15142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19&aid=0000017557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k2007021120301185542

호오.... 점점 인터뷰가 달라지는군요!
(http://blog.naver.com/jangsp11/100128168118 참조)

※3) 시민으로 위장한 폭도들에 의해서 무고한 시민들이 다치고 피해를 입었다. 폭동이네.

@전남도부지사 등 공무원들이 정상적으로 출근했고
5.18 당시 행정기관 업구 상당 부분이 평소처럼 이루어졌다.
또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방범활동을 벌여 수천억원이 보관된 금남로 금융가에서
절도등의 범죄는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음.
오히려 공무원들은 광주 시민들을 도와 부상자를 처리하거나
식량 조달에 힘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151305

※4) 광주 시민들이 교도소 털지 않았니? 폭도잖아.

@남합수단에서 작성한 「광주교도소 습격기도사건」에는
당시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류락진의 처 신애덕과 동생 류영선이 시위에 가담해
교도소를 습격, 복역 중인 류락진을 구출하도록 선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류영선은 시위군중과 함께 교도소를 습격하다 총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각주1) 그러나 이 개요는 ‘5. 18’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기 위한 의도에서
조작됐음이 위원회 조사결과 밝혀졌다.

류락진이 광주교도소에 복역한 것과,
류영선이 총상으로 사망한 것은 사실이나
당시 신애덕은 합수부에 의해 시위주동자로 예비검속됐던 딸 류소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각주2) 또 류영선은 소재를 모르는 조카 류소영을 찾으려다 계엄군의 과격진압을 보고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5. 21.
전남도청 앞 발포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류영선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은 차례로 전남합수단에 불려가
류영선이 류낙진을 구하기 위해 시민군을 선동하고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혐의와 관련하여 심문받았다고 한다.

(각주3) 당시 전남합수단에 근무했던 505보안부대 대공과
수사관 출신은 우리 위원회와의 면담조사에 그 같은 일이 있었으며 류소영이 시집가기 전까지 605보안부대에서 감시했다고
진술했다. (각주4)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12.12 5.17 5.18 조사결과 보고서, 118쪽)

오히려 5월 21일 오후 5시 30분부터 공수부대가 교도소로 도주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네.

공수부대가 좌빨이네.


※5. 윤기권인가 하는 개새끼, 5.18 유족 보상금 받고 북한으로 튀었다. 그 놈 간첩이 확실하다.

@윤기권 생일 : 1962년 1월 16일, 당시 나이 만 17세

이 새끼 정신병자 판정 받음. 태어났을 때 북에서 태어나서 간첩교육을 받았을 확률 제로.

광주에서 국민학교 중학교 모두 졸업.

※6. 시위대가 먼저 공수부대를 공격했다. 이것이야말로 폭동의 증거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273631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첫 번째 희생자 청각장애인 김경철

http://www.ilbe.com/4439746 일베는 이런글에는 댓글 안다나보지 ^^?

※7. 선량한 시민들이 어떻게 장갑차와 탱크를 운전하느냐. 당연히 훈련받은 간첩이다.

@ 당시 시민군이 탈취한 KM900은 도시방어에 쓰이는 경찰용 장갑차.

장륜식 장갑차로서 중소 트럭을 운전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음.

※8. 5.18 당시 AK가 14정 사용됬다는데, 그거 소련거 아니냐

@ 도서관을 찾아도, 신문을 찾아도, 5.18 재단에서 찾아도, 조갑제 닷컴에서 찾아도

공식적인 기록이 안나온다.

단지 정사갤과 일베에서만 나올뿐.

이것좀 설명좀 해봐라. 나도 도저히 모르겠닼ㅋㅋㅋㅋ이건


※9. 오오미 성님 반박 잘한당께 하지만 북한에서 5.18 30주년을 기념했당께

@ 부칸은 4.19 혁명 - 부마항쟁 - 5.18민주화운동 - 6월 민주항쟁 과 같은 남한의

민주화 운동들을 '공식적으로' 기념한다.

만약 저 민주화 운동시기에 독재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모두 좌익 빨갱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의 재상 자리에 앉아 있는 '가카' 께서도 훌륭한 좌빨 되시겠다.

※10. 아따 전라도는 청소년들한테도 총쥐어 줬당께~ 라도랑께~

@ 우리들이 다시 차를 타고 광주에 왔을 땐 시외곽에서 가져온 총이 일반시민들에게 나누어지고 있었다. 학동과 광주공원에서 총을 나눠준다는 말이 들렸다. 우리들은 학동으로 갔다. 시민군 몇이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확인한 다음 총을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들은 각각 카빈 1자루씩을 받았다. 도중에 총이 떨어져 늦게 온 사람들은 받지 못하였다./이관택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C1%D6%B9%CE%B5%EE%B7%CF&sop=and&page=2)

총기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23일부터는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총기를 모두 회수해서 주민등록번호를 적은 뒤에 다시 나눠주었다. 언제부터인가 계엄군이 곧 진격해 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부터 분위기가 삼엄해졌다./조성환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8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C1%D6%B9%CE%B5%EE%B7%CF&sop=and&page=2)

22일날 이영동이라는 친구와 함께 지원동 쪽에서 카빈 총을 지급받았다. 미성년자에게는 지급이 안 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제시하여 가까스로 받은 것이다/강대정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4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C1%D6%B9%CE%B5%EE%B7%CF&sop=and&page=3)

내가 광주공원에서 총을 나눠준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가보니 주민등록 번호와 총 번호를 적은 뒤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총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나는 지급받지 않았다./소영두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4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C1%D6%B9%CE%B5%EE%B7%CF&sop=and&page=3)

※11. 정말 폭도들이 아니였다면 광주시내를 날려버릴만한 TNT폭탄과 다이나마이트는 왜 설치한거냐?

진짜 좌빨새끼들이네

@
당시 광주시민이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온 이유는 계엄군의 도청 진입을 막기 위해서 였습니다.

일단 시민이 어떻게 다이너마이트의 조립이 가능하냐는 주장도 있는데, 폭약 제조를 담당한 사람이 화순광산 직원 12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청에 옮겨진 다이너마이트의 경우 떡밥과 뇌관을 연결했지만, 마지막으로 연결하는 도화선을 연결하지 않았죠. 그렇기에 절대로 폭약이 터질리 없었습니다. 다음은 당시 다이너마이트를 관리한 신만식씨 증언입니다.

떡밥과 뇌관 결합작업을 벌인것은 사실이지만 도화선을 연결하진 않았다. 형식적으로 다이너마이트 인근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 해뒀을 뿐이다. 만약 담뱃불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광주시내가 온통 불바다가 될게 뻔한데 그런 위험한 일은 할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다이너마이트는 위협용이었지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시민군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http://cafe.naver.com/enature/2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70116104502&Section=03

1980년 당시 광주시내 모 탄약창에 근무하던 배 씨는 계엄군의 도청 탈환작전 직전인 5월 24일 "전남도청 지하실에 설치된 엄청난 양의 폭약을 제거해 달라"는 시민군 속 온건파 학생들의 요청을 받고 죽음을 무릅쓴 채 현장에 들어가 2000여 개의 다이너마이트와 450여 발의 수류탄 ★뇌관★을 제거한 공을 세워 그해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

뇌관 : 도화선의 열로 폭약을 기폭(起爆)시키는 도화선의 끝에 연결되고 폭약 속에 삽입된 관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지난해 말 서울행정법원은 "폭약 ★신관★을 제거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방지한 배 씨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고 할 수 없어 서훈취소는 부당하다"고 판결, 명예를 되돌려줬다.

신관 : 탄환·폭탄·어뢰 등에 충전된 폭약을 점화시키는 장치


도화선 연결한 적 없음.

있었다면 도화선을 먼저 안전하게 처리한 후 뇌관 -> 신관순서로 갔음.



12. 이당시에는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구호가 넘쳐났어!! 이거 좀 찝찝한데?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면 어째서 김대중 석방하라는 구호가 넘쳐낫냐?!



@ 우선 김대중이 감옥에 갇힌 이유부터 설명해줌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하루전.



1980.5.17에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감옥보내고 고문함.


(김대중.문익환.김동길.인명진.고은 등등)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은 전두환신군부가 김대중의 정치활동을 막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위해



조작한 사건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1980년 신군부 세력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김대중 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로 "조작", 김대중과 문익환 목사 등 20여명을 연행해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


-네이버 위키백과 -




즉 광주시민들은 전두화 쿠데타 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투사를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라는


개소리를 하면서 감옥보내고 고문하니깐. 이에 반발해서 광주시민들이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친거임.


오히려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구호가 5.18은 민주화운동이다라는 "팩트"에 힘을 실어주는건데?









세번째 주제. 오유인과 일베인들말고 제 3자가 바라보는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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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백과사전: 5.18은 민주화 운동




다음 백과사전: 5.18은 민주화 운동




네이트 백과사전: 5.18은 민주화 운동



위키백과: 5.18은 민주화 운동



대한민국 국사교과서: 5.18은 민주화 운동




대법원: 5.18은 민주화 운동



(1997 대법원 판결. 5.18은 민주화운동이다 & 전두환 등 신군부 인사를 5.18 사건의 내란죄 및 반란죄 혐의로 기소)



대다수의 국민들: 5.18은 민주화 운동










네번째 주제: 5.18이 민주화 운동인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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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해..



이것만 확실히 알아두면되.



"쿠데타를 일으켜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일당에 반발해 맞서 싸운 광주시민군"


이것만 정리되면 쉽지.






다섯번째 주제: 5.18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일어났던 계엄군의 끔찍한 만행



여기서부턴.. 조금 충격을 받을수도 있을거야..



출처는 꼬릿말에 적어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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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월 19일에 저질러진 공수부대의 만행은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들에게 울먹이면서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공수부대에게 걸리면

다죽는다고 애원할 정도였다.



2. 금남로 3가에서 주위의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노인들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이런 모습을 도망치며 바라본 시위 군중들은 어디서 그런힘이

솟았는지 일시에 돌아섰다. 그러고는 좋다, 다죽여라! 하면서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3.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저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이송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깝게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하지 않겟느냐 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 했다



4. 대검으론 모잘랏던 걸까? 20일 오후부터는 화염 방사기까지 사용하였다.

2시 30분경 공수부대는 화염방사기를 쏘아 여러명의 시민들이 그자리에서 타죽었다




5. 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엇다.

시민들은 일단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엇다. 오후 1시 정각 건물 외부에 설치된 애국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다.


이 현장에서 최소한 54명의 사망자와 500명 이상의 총상자가 발생하였다.




6.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의 증언이다.



공수놈들은 같은 동족을 살상하고도 쓰러진 사람들을 옮기지 못하게 연발로 위협사격을 해대었다


아직도 공수부대놈들의 사격선 부근에서 부상한 채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애원소리는 처절했고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를 끓게 했다


공수놈들은 아직 죽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민들을 구하려고 뛰어나가는


시민들에게 조차 사격을 가해 사살 해버렸다. 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가 울고 있엇다.



7. 시민군은 5월21일 저녁 계엄군을 광주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광주 외곽은 봉쇄되어 출입이 통제 되었으며 전화마저 두절되 광주는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광주에 거주하고 있던 리나 루이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여기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른곳에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8. 인간이기를 포기한자들의 광란.



공수부대는 진월동에 이르러서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 방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섯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하였다


공수부대는 가축들에게도 총질을 하여 철수중 인근 마을의 가축들을 닥치는대로 죽였다.



9. 시민군의 장엄한 최후


5월27일 새벽4시쯤 도청앞은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으며


금남로를 중심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엄군은 항복을 권휴하는 최후통첩을 방송했다. 그러나 도청 안 은 아무런 반응이 없엇고


곧이어 계엄군의 일제 사격이 시작 되었다.


얼마나 많은 시민군이 죽은 걸까?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은 500내지 600명이 도청에 있엇다고 하고


계엄분소장으로 진압작전을 지휘햇던 소준열은 당시도청에 360명이 있엇다고 말했다


새벽에 도청에서 계엄군에 잡혀간 시민군은 약 200명이었으니


시민군 사망자수는 160명에서 400명 사이가 될것이다.





10. 5.18광주민주화운동당시 죽은 광주시민 사망자수는?


알수없다.. 공수부대원들은 처음부터 사상자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를곳에 파묻엇기 때문에 더욱 그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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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다,..


기나긴글 읽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5.18 폭동 거리는 친구들아..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길 바랄게..



이제 제발 그러지마










광주항쟁은 머리와 더불어 가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머리로만 이해하는 광주항쟁은 광주와 호남에

또 한번의 깊은 상처를 안겨줄 수 있다. -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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