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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역사 (34) 아편 교역용 범선의 등장
게시물ID : history_50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2
조회수 : 11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7/12 22:16:51

지난 글 : 마약의 역사 (33) 동인도 회사의 아편 독점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istory&no=5003&page=1&keyfield=&keyword=&mn=&nk=&ouscrap_keyword=&ouscrap_no=&s_no=5003&member_kind=


아편은 1830년 이전까지 넓고 튼튼한 돛대를 세운 일반 화물선들에 실려 운송되었다. 하지만 이 배들은 순풍일 때만 항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동계절풍(몬순)이 부는 여름철에는 인도로부터 동쪽으로 항해하고,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북동계절풍이 부는 겨울철에 귀환했다. 


이러한 항해 주기 때문에 상인들은 일정기간 동안은 배를 멀쩡하게 놀려야 했을 뿐 아니라 수급 불안정에 따른 아편의 가격 변동을 막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역풍을 거슬러 항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배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폭이 좁은 선체에 같은 높이의 갑판,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거슬러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맵시 있는 배들이 설계되고 건조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선박들이 바로 쾌속 범선이었다. 


이 쾌속 범선들은 - 그들의 시기에 최신식의 선박들로서 - 그 성능 면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날렵한 외관의 아름다움으로 또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세 개의 돛과 넓게 펼쳐진 돛을 갖추고 있는 모습은 많은 화가들의 데생 요구를 자극했다.





린틴의 아편 수송선

 

최초의 아편 쾌속 범선은 254톤 급의 '붉은 해적선(Red rober)'으로 1829년 후글리 강에서 건조되었다. 선박명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에서 나오는 해적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선박을 건조할 당시 윌리엄 클리프턴 선장은 1년에 인도와 중국을 세 차례나 왕복할 수 있는 선박을 만들겠노라고 장담했으며, 진수(進水)하기 전부터 이 배가 첫 항행서 계절풍을 거슬러 나아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장담한 대로 붉은 해적선은 86일 만에 캘커타에서 마카오까지 왕복 여행을 완수해냈다. 


나중에 이 배는 캘커타로부터 린틴 섬까지를 18일만에 항해하는 놀랄 만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붉은 해적선의 활약으로 이것을 본뜬 쾌속 범선의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후 실프(Sylph, 바람의 정령이라는 뜻)라는 범선이 명성을 떨치자 이와 유사한 많은 복제 선박이 탄생했다. 실프는 돛대가 3개 달린 251톤급으로 붉은 해적선보다 더 빨리 항해할 수 있었으며, 설계자는 영국 해군에서 선박의 내항성(耐航性) 검사관을 맡고 있던 로버트 세핑스 경이었다.





클리퍼선 커티샥 호, 인도에서 중국까지 아편을 운반했다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는 능력을 가진 선박과 함께 아편 상인들이 요구한 것은 불의의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화력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중국인 해적들과 세관의 선박들을 충분히 제지할 수 있는 옛 해군용 전함들을 사들였다. 


대부분의 쾌속 범선들은 핵심적인 부분으로 양쪽에 5문의 포와 선체 중앙에 68파운드(약 31킬로그램) 장거리포를 1문 갖추고 있었다. 실제로 제임스 메티슨이란 인물은 18문의 포를 장착한 쌍돛대 범선인 제국 군함을 1823년에 구매하여 여러 해 동안 아편 밀수입에 사용했다.



중국 해적들이 사용한 정크선




서양에서 묘사한 중국 해적의 모습



중국 해적하면 이 분이 생각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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