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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금/단편/스포] 잔뜩 먹어 - 사쿠라 쿄코
게시물ID : animation_3159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5
조회수 : 3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08 23:17:01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할 때가 있지?

 잠자리에 들기 전이 가장 자주 그렇고, 혼자 걷고 있을 때가 두 번째로 그렇지 않을까. 나는 늘상 그랬거든. 언제나 혼자였기 때문에 생각이 나의 친구였어. 이어지는 상상은 혼자라는 생각을 괜찮게 중화시켜줬고, 일종의 취미라고 할법한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까 싶어. 나는 이따금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나를 떠올리기도 했고, 그러한 상상은 꽤나 나에게 적합한 사고 행위였어. 가게에 들어가서, 주인의 위치를 대략 확인하고, 사각지대를 찾고, 사과 몇알을 주머니에 넣는. 그런 것 말이야. 그건 일종의 게임이었고, 나에겐 몇 없는 여가시간에 가까웠어. 나에게 도덕은 멀었고, 현실은 가까웠기 때문이야.


 그렇게 상상은 나의 영역이었어.

 살아가는 너를


 미키 사야카라는 소녀가 멍한 일상 속에서 떠올린 재밌는 상상은 무엇이었을까. 그 좋아하던 남자애에 대한 상상일까, 아니면 좋아한다던 클래식 음악 이야기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마도카와 함께 놀러갈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너를 잘 알지 못하는지라, 네가 생각하고 있을 것들조차 잘 짐작하지 못하겠어.

 나는 네 친구이기는 한걸까.

 눈물 흘리는 너를


 나는 그렇게 떠올리곤 해. 너의 모습과 너의 슬픔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는 어째서 너에게 나의 모습을 투영하는걸까. 여전히 나는 모르겠어. 아버지를 위해 소원을 빌고, 절망했던 나도 그런 모습이었을까. 너와 같은 눈물을 나도 흘렸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내 눈물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눈물은 나의 모습을 기억해서 그런 걸까. 어느 쪽도 긍정할 수 없어서 나는 슬퍼하는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어. 그 애매모호함 밖에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던거야.

 있잖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뭔줄 알아?


 잔뜩 먹어야한다는 사실이야.


 너의 시체를 앞에 두고서, 너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살기 위해 쌀밥이건 빵이건 고기건 나물이건 집어 삼켜야하는 그 냄새의 슬픔 말이야. 밥을 앞에 두고서 울면서도, 슬퍼하면서도 먹어야한다는 사실이 슬픈거야. 어떤 의미인지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젠 다른 의미의 식사 밖에 남지 않은 너에게 그게 어떤 의미가 있기나 할지 나는 모르겠어. 나도 어쩌다 알게 된 사실이었거든. 정말 우연히.

 나는 고양이들에게 그 사실을 배웠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없는 새끼들의 시체를 앞에 두고서, 구슬프게 반나절 울던 어미는 내가 주는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웠어. 옳고 그름을 떠나 그건 슬픈 일이야. 어미는 밥을 다 먹고 다시 울었어. 그렇게 하루를 울었어. 찾아간 다음 날, 어미는 없었어. 새끼들도 없었어. 아무것도 없었어.

 먹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어미는 사라졌어.

 슬픔에 울다 사라진걸까, 혹은 새끼 고양이들이 천사가 되어 날아간걸까. 그것도 아니면 동물의 법칙에 따라 시체를 파고 먹었을까. 어느 쪽이건 이상했어. 중요한건 모두 슬픔만이 남아있다는 것이었어. 먹어야한다는 슬픔.

 그렇게

 먹고 삼키고, 살아있는 것들을 없애다보면 알게 될거야. 나약한 것들을 먹어치우고, 내뱉으며 지나가는거야. 슬픔에 익숙해지는거야. 이미 살아있는 것만으로 살해의 존재인 우리를, 그리고 느껴야하는 그 겸허함을. 먹어야만하는 슬픔 끝에, 결국 우리는 혼자라는 겸허함을. 겸허함을, 다시 겸허함을.

 우리는 고기를 먹고, 식물도 먹어. 그리고 우리는 특별한 주식이 하나 더 있지. 알다시피, 우리는 마녀를 먹어. 겸허함이 싫고, 동정이 가깝다면 죽어야지. 너는 모든 식사를 인정하게 될거야. 그러니 잔뜩 먹어. 먹고 먹어서 자신을 증명해. 살해 위에 쌓아올린 네 몸뚱아리와, 우리의 마녀 살해 사이에서 연명하는 세상을 동정해. 그 하찮은 톱니바퀴들을 긍정해.

 죽어간 너를

 그리고,

 그렇게,

 이제 겸허함은 네 것이야, 축하해, 미키 사야카.

 인어공주마냥 세상을 사랑한 소녀, 너 말이야.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소녀, 나를, 내가 잡아먹었어.

 잔뜩 먹어버렸어.








맛있어 냠냠

원래 먹고 살라고 하는 짓이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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