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코는 잠들기 전, 늘 혼자 바깥 산책을 했다.
아니, 산책이 아닐지도 모르는 외출을 했다.
그건 오래된 습관인 듯, 함께 살게 된 첫 날부터 그러했다.
잠들기 전, 씻은 뒤의 그 미묘한 시간이었다. 시간대는 굳이 가리지 않았지만, 잠들기 전에 그랬던 것은 늘 같았다. 그 묘한 외출은 늘 10분 내외로 끝났고, 씻은 뒤의 열기가 채 빠지지도 않은채로 돌아왔다.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하얀 김을 뿜으며 쿄코는 나갈 때만큼이나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왔다. 비가 오는 날에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따금 감기 기운이 덮친 날에도 어떻게든 나가려고 했다. 어찌보면 집착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알 수 없었다.
쿄코는 오늘도 나갈 채비를 했다.
「갔다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님도 걱정하셨고, 나 또한 걱정했다. 한편으로는 무슨 용건이 있어서 동행도 한사코 거부하고 바깥 산책을 나가려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지만, 그 한사코 거부하는 행동이 묘하게 단단해서 나는 차마 다가갈 수 없었다. 나에게 말하거나 보여주기 힘들 정도의 뭔가가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혼자 있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상은 추측의 영역이었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타인의 영역이었다.
집을 나서는 쿄코의, 그 밤의 뒷모습이 나에게 슬펐다.
좀 더 너를 알고 싶은데.
온전히 너와 나를 나누고 싶은데.
좋아한다는 그 묘한 감정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친구이고 싶은데.
그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지대를 침범할 용기도, 그럴만한 권리도 없는 나에게 쿄코의 산책은 멀었다. 손을 뻗어 닿는, 혹은 노력으로 완수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할 길이 하나 밖에 없었다.
외길이었다.
「조심히 다녀와」
쿄코는 나의 말을 듣지 못한 걸까. 손짓도, 인사도 없이 휘리릭 문을 닫으며 사라진다. 철제문이 덜컹 닫힌다. 오늘따라 그 뒷모습이 미웠다. 내 속은 알지도 못한채로 혼자 유유히 사라지는 빨강머리 소녀가 얄미웠다.
나는 유난히 속이 상해, 잠들어 버렸다.
함께해주지도 않는 친구 따위, 미웠다.
파랑 머리 속좁은 소녀도, 많이 미웠다.
늘상 듣던 클래식 음악은 정지시켜버렸다.
쿄코가 언제 돌아오는지 따위, 알고 싶지 않았다.
10분도 안되는 쿄코의 외출 시간도 기다려주고 싶지 않아, 나는 억지로 잠에 든다. 정말로, 쿄코가 언제 돌아왔는지도 모르는채 나는 잠이 든다. 쿄코에게 어떻게든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꿈속에서.
쿄코가 언제 돌아왔는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일어났다. 같은 침대를 쓰고 있지만, 눈을 떴을 때 쿄코는 보이지 않았다. 자는 동안의 나도 쿄코에게 등을 돌리고 잠든 모양이었다. 쿄코는 자는 동안 잠꼬대로 나를 껴안고 잠드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나 쿄코에게 삐진 것이었을까. 흥, 자업자득이라지. 나는 그렇게 쿄코를 흘깃 쳐다보고선 화장실로 향한다. 그렇게 나는 쿄코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서 먼저 샤워를 했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에게 욕실 사용권이 있었던 우리 규칙이었다. 게다가 쿄코는 늘상 아침잠에 괴로워했기에, 크게 잠자고 있는 쿄코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머리에 올린채로 돌아온 침실. 침대 발 방향 바닥에 앉아 나는 조용히 머리를 말린다. 수건으로 천천히. 물방울이 차갑게 튕긴다. 쿄코는 여전히 조용했다.
언제쯤 일어나는 걸까. 언제쯤 돌아왔던 걸까. 나는 쿄코의 생각을 하고, 머리를 털던 손을 멈춘다. 이제 일어나야할 시간이었고, 늘상 이 즈음 쿄코를 깨웠다. 나는 일상을 느끼며 쿄코를 깨우기 위해 일어난다.
「일어나, 쿄코. 지각이야」
이불을 뒤집어쓴 쿄코는 답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불 속에서는 뭔가 소리가 났다. 쿄코가 계속 꼼지락거리는 듯 했다. 아침잠이 많은 타입이라 늘상 아침마다 쿄코는 이랬다.
「저기요, 좀 나오시죠?」
이불 위로 흔들흔들 쿄코를 흔든다. 더 늦으면 같이 지각할 게 뻔한데, 왜 이렇게 안 일어나는 건지, 원. 혼자 살 때엔 대체 어떻게 생활을 한건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이불 끄트머리를 잡고, 한 순간에 이불을 걷어낸다.
그 속엔, 땀을 많이, 심하게 흘리는 쿄코가 끙끙거리며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땀을 많이 흘렸고, 열도 심했다. 어젯밤에 비가 온것도 아닌데, 쿄코의 몸은 비를 맞은 것처럼 젖어있었다. 제대로 몸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 모습은, 그 광경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아픈 쿄코라는 것은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모습은 망막에 새겨지듯이 남아버렸다. 공포는 무지에서 나오고, 나에게 있어서 쿄코의 아픈 모습은 알지 못하던 것이었다. 공포가 아침 공기로 스며들었다. 그 묘한 냄새와 풍경에서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수건을 떨어뜨리며 부들거린다. 한발짝, 물러서듯이 발을 헛딛는다. 침대에서 괴로워하는 쿄코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늘 건강하고 아프지 않던 쿄코였기에, 나는 어디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알 수 없었다.
열이 나는걸까, 약을 가져올까.
감기 몸살인가, 물수건을 가져와야할까.
혼자 되돌리는 질문과 대답은 갈곳 없이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녔고, 그 혼돈 속에서 나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발을 떼고,부모님에게로 향했다. 쿄코가 아프다고. 그곳에 계속 서 있었다간,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쿄코는 언제나 이곳저곳 뛰어다녔고, 늘 그래야했다.
그렇게 여겼던 내가 미웠다. 내가 잠시 미워해서 아파한 것 같았기에, 내가 더 미워졌다.
사실은 단순한 몸살이었다. 몸살이 아니었다면 감기였을테고.
그럼에도 나는 울먹거렸고, 하루 종일 울적했다. 네가 아픈 모습을 단 한번도 생각지 못한 내가 싫었다. 너도 중학생 소녀일 뿐인데, 내가 바랐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이유 하나로 허둥지둥거리고 어찌 할 바를 모르던 나에게, 나는 바보 스티커 한 장을 붙여주고 싶었다.
너는 그렇게 학교에 갈 수 없었고. 바보인 나는 하루종일 우울하게 학교 생활을 보냈다. 전학생과도 즐겁게 지내지 못했고, 아케미와도 실랑이 벌이는 일도 없었고, 오늘 예정되었던 마미 선배와 전학생과의 다과회도 미뤄버렸다. 대신 마미 선배는 쿄코가 좋아하던 케이크와 홍차를 조금 나누어줬다. 먼저 하교해서 집에 있었던 나기사도, 마미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쪼르르 달려나와서 아끼던 치즈 한 조각을 주었다. 쿄코에게 주라며, 아기쥐마냥 울먹거리는 나기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하교길이 비슷했던 전학생은 병문안을 가고 싶어했지만, 아케미와의 선약이 있었는지 크게 미안해하면서 대신 내일의 숙제를 쿄코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핑크색 공책에는 전학생의 마음이 전해졌다. 고마웠다. 그런데 미안. 숙제 베끼는 건 허락 안 해줄건데.
그리고 아케미가 의외로 말을 걸었다. 조심해. 한 마디. 대답을 바라고 했던 말은 아니었는지, 아케미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방향을 돌려 떠났다. 떠나가는 뒷모습에 딱히 말을 걸지 못했다. 본성은 착할텐데, 난 왜 저 아이와 친하게 지낼 수 없는걸까 싶었다.
쿄코, 널 걱정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프지 않으면 안될까.
나는 그렇게 빠르게 하교하여 쿄코를 돌봐주었다. 출근하지 않은 엄마가 오전엔 쿄코를 돌봐주었고, 오후엔 나의 차례였다. 시간은 빨랐고, 쿄코는 빠르게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마냥 제대로 깨어있진 못한채로 쭉 잠들어 있었고 대답이나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열은 꾸준히 내려갔고 저녁도 대충 죽을 떠먹었다. 그렇게 저녁이 왔다. 나는 침대 밑 바닥에 앉아 쿄코를 보며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쿄코의 물수건을 계속 바꿔주려고 그 자리에 있었다.
어느 새, 쿄코가 나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서 천천히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나는 잠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깨어난걸까, 아닐지도 모르겠다. 잠이 쏟아져서 나는 뭔가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 있잖아」
그렇게 잠들어 있는 나에게 쿄코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빠가 아닐텐데, 묘한 호칭이었다. 쿄코가 꿈을 꾸면서 말하는 걸까. 아니, 내가 꾸고 있는 꿈일까. 나는 눈을 뜰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이 꿈을 계속 꾸려고 한다. 쿄코의 말은 나에게 향하는 듯 하면서도 아닌 듯 했다. 그 이야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서 기도문 번역을 못하겠어」
무슨 기도문?
「어쩔 수 없는 교회의 딸이라, 밥먹기 전에도, 잠들기 전에도 기도하게 되더라구」
잠들기 전에?
「그런데 기도문 외우는 건 의외로 부끄러운 모습이란 말이지? 그래서 사야카 앞에선 일부러 안 하려고 했어. 게다가 기도문, 의외로 내용도 부끄러우니까. 게다가 영어로 쓰지 못하는 기도문이라니, 반쪽짜리야」
그런 게 어딨담. 기도문은 문장일 뿐이지, 마음이 담기면 되는 거 아냐?
「아빠, 아빠는 사이비 종교였지만, 의외로 건실한 논리와 이야기로 사람들을 모으려고 했다는 걸 알아. 절대자를 경배하는 기도보다도, 함께 손잡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기도가 우선시 되어야한다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게 파문의 이유였잖아. 기억의 파도에 쓸려, 남은 건 몇 없지만 그 말만큼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나도 그러고 싶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거야?
「누군가를 위한 기도가, 진정으로 나를 위한 기도라는 걸 알았어」
나도 그걸 조금 늦게 깨달았던 것 같아.
「신이시여, 나를 사랑하지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사랑해야 할 것들은 사랑하는 용기를 주시고,
결국 이 모두를 사랑하게 될 지혜를 주소서」
나는 기도 같은거 하지 않지만, 참 예쁜 기도문이네. 너에게 빌고 싶을만큼.
「어라, 분명 자고 있는데 대답을 하네? 잠꼬대인가. 부끄러운 기도문이라 네 앞에선 할 용기가 없어서 늘상 바깥에서만 했거든. 뭐, 당사자가 지금 잠에 들어 계시니, 한 번 마지막 줄도 추가해볼까」
마지막 줄? 쿄코의 부드러운 손길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내 숨결이 이마에 닿는다.
「사랑해요, 공주님」
이마에, 쿄코의 입술이 닿았다.
이 시점에서 이 상황이 꿈임을 확신할 수 있었지만, 빨개진 얼굴은 어찌할 수 없었다.
쿄코는 비겁했다.
바보 커플입니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