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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역사 (38) 무력한 칙령과 흔들리는 은본위제
게시물ID : history_50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1
조회수 : 11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7/15 23:23:25

지난 글 : 마약의 역사 (37) 폭풍전야의 고요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istory&no=5022&page=1&keyfield=&keyword=&mn=&nk=&ouscrap_keyword=&ouscrap_no=&s_no=5022&member_kind=


아편 문제의 심각성이 국내외적으로 확산되자 중국의 관리들은 이미 무력해진 아편 칙령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아편 수입을 합법화하고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합법화는 중독을 만연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의 도덕성과 건강을 손상시키므로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났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이보다 더욱 심각하게 여겼던 점은 아편 수입으로 인해 막대한 양의 은이 국고에서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은본위제를 실시하고 있는 중국의 은 보유액은 1793년 7000만 냥(약 260만 킬로그램. 1냥은 대략 37.5그램이다)에서 1820년에는 약 1000만 냥으로 줄어들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처럼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아편 문제는 중국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중국인들의 의식을 뒤흔드는 무서운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중국의 기록을 살펴보면 20~55세의 남성들 중 1%가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구수로는 400만 명에 달했다.

 

C. 투굿 다우닝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836년 중국에 수입된 아편은 1200만명 이상의 중독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양이었다. 아편 밀수가 빈번히 일어나고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많았던 광둥성(중국 남해와 근접해 있는 성(省)과 푸젠성(福建省,중국의 남동부, 타이완 해협에 면하는 성(省))에서는 성인 인구의 90%가 중독되어 있었다. 외국인 여행자들과 선교사들은 아편 상점과 끽다실(喫茶室)이 런던의 진(gin) 판매 상점만큼 흔하다고 이야기했다.




광둥성                                      푸젠성




아편 상점과 흡연실의 내부

 

중국 정부는 영국 상선에 맞서 작전을 수행할 만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엄청난 길이의 해안선을 철저히 경계할 만한 힘도 없었다. 


게다가 부패할 대로 부패한 관리들은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만으로 아편 밀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 중국에서의 아편은 교역의 중추적인 품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기득권을 갖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아편 교역은 황제의 명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아편 교역을 합법화하는 방안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도광제(道光帝, 청나라의 8대 황제. 재위 1821~1850)는 이 방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광제

 

아편을 통해 재물과 음탕함을 추구하는 이들과 이에 기생하는 부패한 관료들은 나의 희망을 계속해서 꺾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이유도 나의 빈곤한 국민에게 사악함을 사게끔 할 수 없다.

 

도광제가 아편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자 한 것은 중국을 병들게 하는 아편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셋이 아편으로 인해 죽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그는 절망에 짓눌려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838년까지도 중국의 칙령과 법률은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보였으며, 광저우의 상인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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