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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잊지 못 할 수면마취 경험
게시물ID : gomin_3173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누나왔다Ω
추천 : 8
조회수 : 62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4/16 19:20:45

저에겐 아주 부끄럽지만 어쩌면 대학 초년생에게 약간 도움이 될까 싶어 글 올려봅니다.
매끄럽지 못한 음슴체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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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강원도 모 대학교 의예과를 1년 다니다가 향수병과 학과 부적응 등으로 
1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등교를 하지 않고 있었음.
그 때 서울안의 다른 대학 다니는 5살 연상의 남친이 있었는데
내가 전화로 찡얼대면 주말을 끼고 강원도로 찾아주었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입시공부만 한답시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하지 않았던 나는
외로움과 학업 스트레스를 핑계로 남친과 잠자리를 하게 되었음.
물론 남자친구를 믿었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한 것이지만
타지에서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갓 20대 아웃사이더 여학생에게 찾아온 신체 변화나 감정의 변화에 대해
터 놓고 고민을 함께할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정서적 갈등이 더 심해졌,,,,,, 다고 볼 수 있음.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무책임한 경험이었던 것 같음.
심장판막증이 있던 나는 급격한 운동이나 흥분을 하면 몸이 아주 괴로운 상태가 되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성경험은 내게 엄청난 일이었음...당연히 학업에 엄청난 지장이 되었음..아 한심하다..
남자친구는 그러지 말고 가벼운 등산을 하고나 좋은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당시 나의 고집과 무기력증, 우울증으로 기타 다른 것을 하고 싶지도, 무엇을 먹고 싶지도 않고 
그냥 골방에 처박혀 스타나 하고 벽지 무늬나 세고 전공서에 있는 그림 베껴 그리기나 하고 놀았음.
그리고 또 감정 조절을 못 해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하면 또다시 무기력증.... 


병신같이 하루하루를 쓰레기버리 듯 여름방학이 끝났고 
최종 자퇴를 해야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쯤 아주 엉뚱한 문제가 생겼음.
어느날 생리날도 아닌데 피가 줄줄 나는 것임.
나는 혹시 이게 생물시간에만 듣던 "착상혈"이 아닌가 싶어 임테를 해 봄.
내 꼬딱지만한 의학상식으로 소변검사는 믿을 수가 없어 아예 산부인과를 찾아감.


검사결과 임신이 아닌, 난소 종양이었음.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난소 종양이 부푼상태에서 성관계를 하다 염증이 심해졌고
근데 20대 특유의 자연회복력으로 종양과 정상세포가 열심히 옥신각신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임.


나는 약간 망설였음.
이 종양을 없애려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암으로 발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며
가장 빠른 방법은 복강경을 해야한다는 것임.
그리고 복강경을 하면 배를 약간 찢어야 하고 전신마취도 해야 하며
당연히 가족의 동의서가 필요한 거였음.
나는 일주일간 갈등을 하다가 결국 복강경을 하기로 함


나는 이혼 가정인데 아무도 나를 맡아주시려 하지 않아 혼자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녀서
이제 와서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음.
아무튼 남자친구가 "신랑" 칸에 싸인을 하고 친하게 지내던 남자친구의 친누나가 와서 병실을 지켰음.
이 때에도 나는 내가 남친과 결혼을 해야 하나? 언니한테 창피하다...등등 오만팔천가지 고민을 하고 
민감해했음.


어쨌거나 내 고민은 정리가 되지 않은채 수술이 시작되었고 곧 전신마취...
하나 둘 셋... 카운트를 하며 나는 잠이 들었음.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갑자기 몸에 한기가 드는 것 같았고 의사샘이 부지런히 내게 말을 걸고 있었음.
간호사님은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음.
나는 "감사합니다... 간호사님 고생하셨어요.." 라고 이상한 소리를 연신 해대고 있었음
의사샘은 수술을 아주 잘 되었고 지금 환자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거니까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 - 라고 나를 계속 안심시킴



나중에 치료차 병원을 자주 방문하며 의사샘과 이야기를 하는데
"저어... XXX씨. 나도 XX 나왔어요... 그러니까 내가 선배네요.
학과생활 너무 힘들면 내가 교수님께 편지를 써줄테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봐요.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의지하는 건 잘 알겠어요.
나도 학교 다닐 때 남자친구가 있었거든요..."
하면서 갑자기 인생상담을 시도 하는 것임!!!!!!
나는 고등학교때까진 활달했지만 그닥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 길게 하지 않는데다
거의 단답형으로 말해 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었음.
게다가 내 치부...를 남에게 말하는 걸 정말 싫어했는데 
의사샘이 굉장히 천천히, 내 눈을 보며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게 아니겠음?!


사연인 즉슨 
내가 마취동안 크리스천 방언 터진 것 마냥 파란만장했던 중고교 일대기며
내가 현재 모모대학 의예과에 다니는데 너무 힘들며
남자친구 본인은 날 걱정해서 잠자리를 안하려고 하는데 내가 계속 조르고 있다
아마 나를 더럽게 생각할거다 나랑 결혼하려 할까? 
내가 너무 더럽다... 이러다 소문나서 시집도 못 갈것 같다..
내 자신에 대한 온갖 욕을 다 했다는 것임.
복학하게 되면 자살할 것 같다. 내가 왜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둥
아버지는 날 버리고 어디가서 만든 배 다른 남동생을 날 더러 키우라고 한다.
휴학하면 십중팔구 남동생 업어 키워야 할 것 같다고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함.
그것도 일본어와 독어를 써가면서-_-;;;;;;;;;
그러다가 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심장박동이 떨어져서 의사샘이 깜짝 놀란 것임.


그 의사샘은 여자분이셨는데 내가 워낙 많은 말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상하고 예리하신 분이라 캐치를 잘 하신건지
갈 때마다 웃으며 조언을 해주시고 20대를 버리지 말아라 이겨내라고 힘을 주셨음.


하아.. 쓰고나니 참 별거 아닌데
단 몇개월 동안의 대학생활과의 괴리감, 준비하지 못한 어른의 세계(?) 에서 방황하던 내게
그 때의 수면마취는 부끄러우면서도 내게 큰 전환점이 되었음.

결국 학교는 자퇴하고 재수를 해서 서울의 모대로 들어왔지만 역시 서울생활도 만만치 않았고
그 때마다 그 의사샘에게 이메일을 보내 힘을 얻었음.
돌이켜보니 내가 이제 그 의사샘 나이가 지금 나와 비슷하실 듯.
굉장히 젊고 예쁜 분이었는데 독일로 유학을 가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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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겨우 교과서나 문제집이나 파며 학교에 갖혀있던 사람이
몸만 컸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사회적 요구에 대해 스스로 입장을 정해야 할 때가 오는데
그 때 몸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어야 많이 괴롭지 않을 것이다.
물론 괴롭지 않은 인생은 없을 거다.
나도 20 초반에 몸을 주며 사랑했던 남자가 있고 그 남자와 결혼을 할거라 믿었지만
그 남자의 가족까지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얻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나도 학업을 충분히 하지 못 했고 지금은 약간 후회도 있다.
XX씨가 마취중에 한 이야기가 사실 나의 이야기였다.
나는 불교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유언을 마음 속에 새기고 산다.
XX씨에게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정도의 이야기가 의사샘에게 받은 마지막 메일입니다

재미난 수면마취 일화는 아니지만
15년 전의 나처럼, 그 전의 그 의사샘처럼 무의식 속에 비슷한 고민을 꽁꽁 싸맨 
20대 초반의 새내기들이 있을까 싶어 걍 써봅니다.
(부처님의 유언은.... 한번 찾아보세요^^)

조금 더 있으면 성년의 날이네요
방황하는 청소년;; 아니 20대 여러분 사랑합니다 -급 마무리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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