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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29...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왔습니다.
게시물ID : gomin_3173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메론™
추천 : 10
조회수 : 47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4/16 21:09:50
살면서 처음 치러보는 장례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올 연세는 99세...

오래 사셨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셔도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3-4년 전부터 거동을 잘 못하셨고 올해 들어서는 의식도 없으셨습니다. 

물론 제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셨구요.

장례식 참 챙길 것 많더군요. 물론 상조회사가 웬만한 것들을 관리해줘서 편했습니다. 

상조회사의 위대함을 느낀 3일이었습니다. 

토요일날 저녁에 갑자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여자친구와 저녁을 먹고 있던 중에 받았고 처음 든 생각은 '귀찮겠네...'였습니다.

또 별로 좋지 못한 머리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처지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며칠 전, 여자친구와의 통화에서 했던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나, 시험 전 날에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할아버지 원망할 것 같애.'

염을 할 때 잠깐 본 할아버지 시신의 등에는 피가 엉겨붙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저와 같은 인간... 절대 저런 상태가 되길 바라진 않으셨을텐데...

그런 할아버지를 원망하려 했구나... 자기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을 원망하려 했구나...

저희 할아버지는 고아였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진짜 고아는 아니고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니까 증조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증조할머니는 개가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는 버림을 받으셨고 남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어렵게 성장하셨다고... 

어쩌면 할아버지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슴이 아팠던 것은 비단 할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어머니와 할아버지 부양 문제로 많이 다투셨습니다. 돈이 문제였습니다.

어머니는 전부터 시댁식구와 갈등이 컸었고,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아버지께서는 경비를 하고 계십니다)에 

지출되는 요양비 문제로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셨고 다투셨습니다.

저는 사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요양이 필요한 나이까지 장수하시는 것, 아버지가 부자가 아닌 것, 어머니가 시댁식구와 사이가 

안 좋은 것... 어느 하나 특정한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챙기셨던 아버지가 장례 3일 동안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오죽하면 친척분들께서 상주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을 벌써 말라 버리셨을 것입니다. 장남으로서의 위치,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경제사정, 

어머니와 시댁과의 관계... 이 모든 것은 족쇄처럼 들러붙어 늘 아버지를 괴롭혔습니다. 

너무나 괴롭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너무나 좋은 분이십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는 절대 못하시고, 항상 손해만 보고 사십니다. 

자식인 저에게 마저 욕이나 화를 내신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저렇게 외롭고, 아프게 계신 게 너무 괴롭습니다.

너무 마음이 괴로워 몇 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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