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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스포/쁘금] 사면초가 - 오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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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1
조회수 : 3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16 10:09:52





 세상이 온통 한 빛깔으로 보인다면 나는 슬플 것이다.

 백색광에서 퍼지는 무지개처럼,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언어 그 너머에 있는 빛깔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은가. 소리도 마찬가지다. 한 노래만이 울려퍼지는 세상 따위, 고요의 세상과 다를 바 없다. 고요하고, 그 고요함 사이에서 암투를 벌이는 황자들의 이야기 따위, 허공에 떠도는 거품과 같았다. 술안주 삼기에도 저열하고 가벼운 헛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전장을 쫓는다. 그러한 여무사이다.

 가족이 집단 자살한 와중에 혼자 살아남은 여인. 자살한 가문.

 그것이 내가 가진 수식어였다. 그리고 수군거리는 소문들의 근원이었다.


 나이가 차도록 시집을 가지 않고 전장을 떠도는 것도, 언제나 이 나라에 승리를 가져다주는 이유와 전술도 모두 나 개인이 아닌 여무사와 자살한 가문에 근거했다. 그것은 굉장히 시시한 논리였기에, 비웃어줄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건 무지개의 끝과 비슷했다. 무지개의 아름다움보다도 무지개의 시작을 좇는 어리석은 이들이었다. 무지개 자체가 그 온전한 시작일컨데도.

 어찌되었건 내 위치는 여무사이었고, 전장 이외의 갈 곳을 찾을 생각도 없었다. 뒤에서 수군거리면서도 나의 승전을 이용하려는 자들. 나는 그 시선을 언제나 무시했으며, 시선을 원하지도 않았다. 황자 셋에 의해 서넛정도의 파로 나뉘어 있는 대신들의 파벌 따위, 알고 싶지 않았다. 싫었다. 황제라는 자리를 위해, 그 무채색의 권력을 위해 싸우는 것은 귀신들의 이야기처럼 멀었다. 가까이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 있는 곳은 전장이었다.


 나는 그 속의 무수한 노래들을 찾았다. 전국에서 온 병사들은 각자의 방언들과 지방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으며, 나는 그 노래들이 즐거웠다. 하나의 노래로 묻히지 않는 그 개별성은 늘상 빛났고, 매일 밤 같은 소리를 지껄여야하는 암구호 노래 따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나의 군대에 군가는 없었으며, 그 개별의 노래들은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그 다양한 노래는 찬란했다. 이따금 나라의 노래도 들려왔으나, 개개인의 노래보다는 좋아할 수 없었다. 그 개인의 노래는, 서로의 무지에서 아름답게 꽃핀다.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받지 않고, 그저 살아남는 쪽이 승자가 되는 그 세계를 나는 선호했다. 아버지가 자살했던 세상을 등지고 싶었고, 동물처럼 빛나는 죽음 사이의 생명들만이 나를 일깨웠다, 혹은 일깨워줬다. 색채를 버리고 무채색으로 떠나는 걸 도와주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정치는 멀었고, 죽음은 가까웠다.

 나는 붉게 빛나는 무사였다. 불꽃에 가까웠다. 죽음과 삶이 혼재되어 있었으니.


 내가 전쟁터에서 만났던 그 푸른 기사도 그러했다. 비늘과 같은 갑주를 두르고, 푸른 빛으로 치장한, 그 눈길. 투구를 벗은 눈, 머리 모두 하늘의 빛깔을 닮았던 그 여기사. 나와는 정 반대의 색조를 지니고 있었던 그 여기사는 말을 못하는 듯 했다. 처음으로 칼을 마주한 어떤 서쪽 소국의 기사. 그곳에서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우두머리를 기사라고 부르는 듯 했다. 장군, 무사와 다를 바 없는 직책이었고, 그들의 규칙은 아니기에 관심 바깥의 영역이었다.

 나에게 궁금한 것은 푸른 기사 진영의 노래들이었다. 그들의 국가는 작았고, 국가가 하나의 지방이었다. 그들의 노래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을 것이고, 다른 노래는 그야말로 적의 노래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그 간극을 저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몇 번 마주하게된 저들의 진영에서는 언제나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저 노래에 외로워하며 슬퍼하지 않는 듯 했다. 어째서일까. 사면초가가 아니었나. 죽음 앞에서도 삶을 갈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삶을 갈구하기에 그런 것일까.

 적대국이었고, 섬멸전이 되어야하는 전쟁이 지지부진 하던 때였다, 그 푸른 기사는 말없이 진영으로 찾아왔다. 말을 못하는 듯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혹은,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쪽이건 지휘관으로서는 최악의 조합이었으나 그 푸른 기사는 아랑곳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그녀의 군대를 아직 온전히 파괴한 적이 없었다. 말 없는, 혹은 귀 없는 지휘관이 통솔하는 부대에게 장기전을 벌이고 있다니, 황당했다. 푸른 기사의 군세는 적은 편이었고, 우리는 결정적 패배를 얻은 적 없었으나, 결정적 승리를 이룬 적도 없었다. 우리의 전술은 전략으로 이동했으며, 국지전 형태로 쪼갠 군세로 몰아넣는 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선택이었고, 다르게 본다면 소거였다. 푸른 기사는 의도한 듯이 뻔한 전장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그 전장의 마지막이 될 밤이 지금이었다.


 

(중략)


 

사면초가라는 단어를 아시오?


 사면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오는 형국.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이라고 흔히들 쓰이지만, 그 근원은 슬픈 이야기라고 언제나 생각했다. 끝없는 전쟁터, 포위된 상황, 한밤중에 찾아오는 것은 적의 창검이 아닌, 고향의 노랫소리. 개별성 없는, 감정을 무너뜨리는 합창.


전쟁터에서 동서남북에서 고향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오


 그런데 당신들은 이상하오.


한 노래만 들려오는 것은 슬프오. 당신의 나라는 작아서 온갖 노래가 하나 뿐일지언데, 그걸 어떻게 견디는 것인지 모르겠소. 우리 병사들이라면 미쳤을거요. 자신이 살던 곳의 노래, 향수를 일으키는 공기, 죽음과 맞닿은 우리들의 삶. 선택한다면 뭘 선택하겠소? 노래를 선택하오. 나는 병사들을 살릴 의무가 있고, 그 일체화되는 향수 속에서 죽어갈 놈들보다도, 개별적인 삶과 생명을 지껄이는 것을 선택했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떤 게 옳은 것 같소. 나는 아버지가 자살한 지점부터 이미 그렇게 정지했소. 세상은 같지 않소. 나라의 노래, 민족의 노래로 하나가 되어 싸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소. 살기 위해 죽이는 거고,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거요. 국가를 지키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의 아버지는 인간 보편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나는 그걸 이루어주려고 했소. 이루어졌으나, 이루어지지 않은채로 죽어버렸지. 나는 그래서 지켜야만 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믿지 않소. 전쟁에서 국가를 부르짖지도 않으며, 승전해도 아무 감흥이 없소. 모두 시시하오. 시시하고 시시해서, 눈을 돌리오. 나의 예전을 돌아보고 싶지 않소. 살아가기 위해 죽는 이 단순함만을 원하오. 지켜야하는 것들의 허상을 움켜쥐고 울고 있는 소녀로 돌아가고 싶지 않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고요하던 푸른 기사.

 무쇠와 같던 입이 단 한번 열렸다.


그래도

 

 그래도.

 그 뒤의 말은 이어지지조차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뒷말을 기대하지 않았고, 푸른 기사도 뒷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나 스스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송조차 할 기분이 들지 않아, 자리에 다시 앉고 만다. 푸른 기사는 다 아는 듯이 그런 대답을 했던 것이다. 지켜야할 것들을 거부한채로 전장에 나서는 나와, 나의 예전 모습을 닮은 자신의 모습을. 등 돌리고 서있지만, 이미 내가 등 돌린 상태라는 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 노래를 사랑하오


 감히 내 입으로 지껄여보았다.







사면초가는

지켜야하는 것들을 위해 슬퍼해야하는 비극입니다.

노래를 견디는 슬픔으로 죽어야하고

노래를 견디지 못하면 지킬 수 없습니다.

지키고 싶었던 소녀 둘의 이야기입니다. 무단의 마녀와 연모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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