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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정치
게시물ID : phil_32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자기사
추천 : 0
조회수 : 8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19 14:24:26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는 우울합니다.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역시 우울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울감은 전혀 병리적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 어떤 우울감도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우울증이란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뜬금없는 상황에서 우울감이 느껴지는 신체의 증상일 수 있지요.

 

프로이트는 어떤 대상에 대한 인간의 애정을, 주체의 리비도가 대상에게 투사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거칠게 말해 리비도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지상에서 생존에 성공하게 위해 복무하는 에너지로, 크게 식욕과 성욕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식욕은 개체의 보존을 위해, 성욕은 종족의 보존을 위해 각각 사용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대상에게 애정을 느낍니다.

 

즐거운 감정은 생존에 유리한 감정일테고 따라서 리비도는 이러한 대상에 투사됩니다.

 

사랑스런 대상의 존재 그리고 그것과의 관계맺기에 성공한(리비도를 성공적으로 투사한) 우리는 유쾌하고, 이러한 유쾌한 감정은 어쨌든 주체에게 자신이 유리한 생존 조건을 획득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가 리비도를 투사할 만한 사랑스런 대상을 집요할 정도로 찾아 헤매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 모릅니다.

 

따라서 한때 리비도를 투사했던, 사랑스런 대상의 상실은 엄청난 우울감을 증폭시킵니다.

 

우울감이란 생존이 불리해졌다는 가장 강력한 감정적 시그널입니다.

 

결국 우울감이란 지금 생존이 불리해졌기 때문에 리비도를 투사할만한 사랑스런 대상을 다시 찾아나서야 한다고 주체를 부추기는 건강한 경고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랑스런 대상을 상실한 사람이 느끼는 우울감을 우울증이라고 하지 않고 애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애도를 통해 한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상실한 대상에게서, 우리가 예전에 투사했던 리비도를 회수하는 작업에 성공합니다.

 

물론 애도 작업은 결코 쉽지 않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리비도를 다른 대상에게 투사할 수 있고 유리한 생존의 지점을 확보합니다.

 

따라서 애도 작업에서 발생하는 우울감은 결코 병리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반면 우울증이란 애도 작업의 실패와 직결됩니다.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애도는 실패합니다.

 

리비도는 정상적인 경로로 회수되지 않고 환상적인 형태로 유지되는 상실한 대상에게 여전히 투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상실한 대상을 환상적인 형태로 유지하기 위해 주체가 대상을 자신의 자아와 일치시킨다고 프로이트는 지적합니다.

 

한편 상실한 대상을 나와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상실한 대상에 대한 원망 감정을 자아에게 쏟아붇는다고 합니다.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자존감의 극심한 감소, 자아의 거대한 빈곤화 등등(자신에 대한 학대)은 이 때문이겠지요.

 

한편 우울증적 주체는 자아와 상실한 대상의 동일시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때의  우울감은 대상 상실에 따른 것이라는 원인 분석을 허용하지 않게 되고, 결국 다른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계기로 작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우울할 뿐, 리비도를 투사시킬 대상을 찾거나 어떤 대상과 관계 맺을 하등의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만 이를 타계할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채 애도에 실패하고 결국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정치란 타자와의 관계맺기 능력이고, 생존에 가장 유리한 (주체와 타자 사이의)관계 지점을 찾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울증이란 정치적 능력의 약화를 의미합니다.

 

한편 반대로 정치적 능력의 약화는 단순한 우울감을 우울증으로 변환시킬 수도 있지요.

 

애도에 성공했으나 리비도를 투사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그 대상과 진정성있는 관계를 맺지 못할 때 우울감은 우울증이 됩니다.

 

현대의 대중이 지닌 정치에 대한 불감증, 불신, 무능 등등은 사회의 전반적인 우울증을 격화시킵니다.

 

직업적인 정파적 삶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진정성있는 관계 능력을 정치라고 할 때, 지금 우리가 보이는 정치적 능력의 쇠퇴는 우울증을 동반합니다.

 

애도의 성공이 우울감을 정치적 능력의 발현을 위한 추진력으로 작동하게 했다면, 정치적 능력의 쇠퇴는 성공한 애도가 야기한 우울감을 절망적인 우울증으로 번역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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