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이에게. 최근 사흘은 어디서나 눈물이 나와 힘들었는데, 해인이한테 편지를 쓰네.
해인이 잘 있니? 그곳이 어느 곳인지 몰라도 잘 있으란 말밖에 할 수 없구나. 보고 싶고, 안아도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고,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은데….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데 우린 무엇이 부족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네. 해인아 네가 했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을 거야. 항상 엄마가 얘기했지. 남보다 해인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 해인이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또 행복했을 거라 생각해.
항상 옆에 있을 거란 생각에 아무것도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나는 네가 이렇게 갈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아프지도 않고 건강하고 웃는 너를 볼 때 누가 생각했겠니? 수학여행 잘 다녀오라고 했던 때가 생생한데, 내 딸이 이런 사고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너무 수학여행이 즐거워서 전화하는 것도 잊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믿어지지가 않았어. 미안해.
언제나 네가 해준 것을 모두 기억해줄게. 친구들도 모두 같이 가서, 남아있는 친구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세상에서 잘 지내기를 바래.
고해인양은
안산 단원고 2학년 1반 고해인(17)양은 엄마가 힘들어하면 꼭 안아주곤 했다. 반대로 자기가 힘들면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했다. 해인이와 엄마는 늘 그렇게 서로 안아주며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엄마는 그런 딸을 잃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늘 곁에서 자신을 위로해주던 딸이 없어 너무 슬프다고 했다.
해인이는 맞벌이를 하는 아빠와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늘 가족을 배려하는 속 깊은 아이였다.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생이라 잔소리할 일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해인이를 ‘사춘기도 없이 자란 딸’로 기억했다. 늘 입버릇처럼 나중에 돈을 벌면 엄마와 함께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해인이의 꿈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간호사였다.
해인이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나고 나흘 뒤인 19일,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민간 잠수요원에게 발견됐다. 아버지 고인식(50)씨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숨진 딸을 찾아 경기 안산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곧바로 다시 팽목항에 내려갔다. 딸을 찾아준 민간 잠수요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 민간 잠수요원 역시 세월호 침몰 사고로 단원고에 다니던 조카를 잃은 사람이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