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it.co.kr/news/mediaitNewsView.php?nSeq=2191060
마이너 시장 몰락을 강요한 새로운 규제의 시행
지난 1일 선택적 셧다운제(현 게임시간선택제)가 한 달 간의 시범적용 기간을 끝내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명목상 취지는 좋다.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기 위해 부모가 자녀들의 게임시간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보면 새삼스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현 세대 게임콘솔에 내장된 부모관리 기능이라던가 기존의 PC사용 통제(주로 게임제한을 위한) 프로그램의 취지를 단지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을 뿐, 기존에 존재하던 게임 과몰입 방지 시스템의 답습과 다름 없다.
어찌 보면 12시 이후에는 청소년의 게임이용을 무조건 차단하는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에 비해 제법 합리적인 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국내 유수의 게임업체들의 대응도 꽤 순조로운 편으로 일견 정책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3의 내장 온라인쇼핑몰인 PSN스토어가 선택적 셧다운제에 대한 대응에 문을 닫은 것이다. 국내현지 법인 SCEK의 공식적인 입장은 일시적인 중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스토어의 재개장 여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엑스박스360의 라이브 서비스 또한 지속 여부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문화관광부의 주요 규제 대상인 온라인 게임이 아닌 사실상 극소수의 하드코어 게이머들에 의해 지탱되던 마이너시장이 유탄을 맞은 형국이다. 게다가 콘솔 게이머들의 대다수가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라는 점을 전제할 때 엉뚱한 성인들만이 피해를 고스란히 보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부조리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현재 셧다운제를 둘러싸고 있는 논의의 대부분은 문제의 본질에 냉정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주장과 주장이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매우 소모적이고도 비타협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문제의 본질이 명쾌하게 모습을 드러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어떤 형태로든 건강한 타협과 절충이 이루어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하게 현 상황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 상상 이상으로 매우 심각하다.
PSN 스토어의 폐쇄의 본질
선택적 셧다운제 시행 이후 국내 게임업계는 12시 이후 '강제적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라는 이중규제의 틀 안에 갇힌 형국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아직까지는 셧다운제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은 듯하다. 게임업계의 수익 대부분이 청소년이 아닌 성인들의 소비에 의해서 발생하는 만큼 일견 당연한 일이다.
또한 셧다운제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의 추가비용 소요에 대한 우려 또한 기우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총매출 9조원에 이르는 국내 게임시장의 규모의 경제상 이 정도의 규제에도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 내구력이 모자랄 리는 없다. 이러한 연유로 아직까지 국내 게임업계의 대부분의 대응 양상은 비교적 차분한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콘솔, PC패키지, 모바일 등의 마이너시장이다. 그나마 모바일은 2년간의 유예기간을 얻은 터라 추후 논의의 여지라도 있는 형편이지만 콘솔이나 PC패키지 게임의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셧다운제에 발목이 잡힐 여지가 크다. 콘솔이나 PC패키지 게임 대부분은 해외업체에서 개발한 수입 콘텐츠들이다. 때문에 국내 정식유통을 위해서는 반드시 셧다운제도에 대한 현지화 작업을 검토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들의 시장은 온라인게임과 달리 극도로 영세하다.
현재 이들의 유통을 담당하는 업체들에게 셧다운제에 따른 현지화 비용을 감당할 여력 또는 의지가 있으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아직까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정책의 공백과 법규의 예외조항 탓에 어떤 식으로든 비껴나가는 형편이지만 앞으로 걸고 넘어지자면 언제든지 발목이 잡혀 주저앉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사례가 바로 PSN 스토어의 폐쇄다.
문제의 원흉은 모두 여성가족부?
국내 게이머를 비롯, 셧다운 제도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이해당사자들 대다수는 현 사태의 원흉(?)으로 여성가족부를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가족부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적개심으로 잔뜩 격앙된 채 지극히 감정적인 반응들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여성가족부가 없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반응과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사회에 만연한 게이머들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부추기며 상황을 악화시킬 여지마저 있다.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은 셧다운제도가 적법한 과정을 거쳐 제정된 규제안이라는 점이다. 셧다운제도는 여성가족부(행정부), 국회(입법부), 종교단체 및 청소년보호단체(시민사회) 간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탄생한 법안이다. 절차적으로 볼 때 어떠한 문제제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민주적인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존재근거가 되는 특정집단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부처다. 그들이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게이머와 게임업계의 하소연이 아닌 차라리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불만이다. 그리고 이들은 셧다운제를 전폭 지지했다. 민주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공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여성가족부는 이 과정에서 의제를 선점했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이를 관철시켜낸 것뿐이다.
결국 문제는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라는 규제정책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 아니다. 본질은 그 반대의 주장들이 공론화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즉, 게이머와 업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사회적 채널의 부재 또는 붕괴의 현실이야말로 현재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치명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우선 정보통신부의 해체와 그에 따른 IT 정책의 컨트롤타워의 부재부터가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셧다운제도를 둘러싸고 여성가족부와 정면에서 대결했어야 할 당시의 문화관광부는 사태에 대해 무관심과 방치로 일관하며 결과적으로 여성가족부에게 승리를 가져다 바치고 만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문화관광부가 대응을 시작한 무렵은 이미 한 발 늦은 시점이었다.
그나마도 의제선정에부터 서툴렀다. 당시 문화관광부는 한국게임 산업의 육성과 발전에 셧다운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요 논리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삼는 여성가족부의 당위 앞에 철저하게 무너지고 만다. 대중들의 눈높이로는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청소년을 보호하지 말자는 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향후 셧다운제의 전망은...
아무리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규제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꼭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셧다운제에서처럼 논의과정에서부터 정책당사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애초에 셧다운제는 실효성 여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그리고 이는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와 문화관광부의 게임시간선택제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셧다운제는 결국 무용지물화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규제정책에는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다. 셧다운제의 경우에는 청소년과 학부모들이 수혜자가 되겠고 게임업계와 기타 게이머들이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보통 수혜가 피해에 비해 월등히 큰 경우 정책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수혜와 피해가 반반일 경우에는 정책의 유지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발생하며 수혜보다 피해의 규모가 클 경우 그 정책은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한 뒤 유명무실화된다.
현재 셧다운제의 실질적인 효과 여부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은 상황이다. 수혜의 질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반증이다. 반면 게임업계의 청소년 대상 게임 개발 기피현상, 게임개발자의 심적인 박탈감, 규제 당사자인 청소년뿐만 아닌 성인 게이머들까지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편, 해외 업체의 현지화 난항 및 이로 인한 국내 사업에서부터의 철수 등 그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현재의 셧다운제는 수혜와 피해의 균형조차 맞추지 못한 극단적인 실패과정을 밟고 있는 정책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판단하자면 애초의 실효성에 대한 여러 우려들은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이 난 듯 보인다. 정책의 필요성과 당위에 대한 논의만 있었을 뿐 실효성여부는 전혀 검토된 바 없는 규제였으니 이 같은 결과는 지극히 당연하다.
심각한 우려 '한국 게임시장의 갈라파고스화'
이상의 이유로 셧다운제의 미래는 뚜렷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셧다운제는 게임 사용자의 본인인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바, 정부에서 사실상 인터넷실명제를 철회한 마당에 심각한 정책적 모순을 안고 있는 형편이기까지 하다. 이래저래 셧다운제의 입지는 점차 좁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셧다운제의 폐해가 깨끗하게 걷힐 거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규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셧다운제는 엄연히 법적인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현재진행형 규제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진 규제는 만드는 것만큼이나 폐기 또한 어렵다. 좋든 싫든 간에 셧다운제는 당분간 존속될 수 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셧다운제가 세계의 유례가 없는 국내만의 규제정책이라는 점이다. 현재 콘텐츠의 유통시장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국경이 없는 전세계 단일 시장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콘텐츠와 시장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다드의 준수야말로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셧다운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셧다운제는 콘텐츠의 유통에 있어 쓸데 없는 비용과 리스크를 발생시킨다. 국내업체는 국내용과 해외용을 따로 제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해외업체는 수익성 여부가 불투명한 콘텐츠의 경우 아예 국내도입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점차 국내 게임시장의 갈라파고스화라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이미 PSN 스토어는 문을 닫았다. 수많은 해외 메이저업체의 현지법인은 국내에서 이미 철수했거나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 모바일의 경우 셧다운제가 2년 유예됐음에도 불구, 애플의 앱스토어 등은 국내 투자를 여전히 머뭇거리고만 있다. 국내 모바일 업체는 혹여 모를 상황의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국내보다는 해외시장 위주로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심지어 셧다운제에 대한 대응여력이 충분한 국내 메이저 게임개발사조차도 이를 피하기 위해 18세 이상의 성인 콘텐츠 개발에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언젠가는 유명무실해질 규제 때문에 국내 게임산업 전반이 변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야기될 폐해는 현재로서는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 끝이 언제일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딱히 출구를 제시할 수가 없는 작금의 현실이다.
게임 필자 까치발 [email protected]
기획 미디어잇 박철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