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여 년 전이다. 내가 1등기업에 집착하면서 바쁘게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서초역에서 일단 마이바흐에서 내려야 했다.
서초역 쪽 길 가에 앉아서 기업들에게 떡 받아먹고 사는 검사가 있었다. 비자금이 하나 걸려가지고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소송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감방에서 오래 살아보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검사였다. 더 깎지도 못하고 아무쪼록 빨리 풀려나게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구형 형량을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언론에 다루어지고 있으니 빨리 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여론이 좋지 않아졌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하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감방서)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 영감님, 외고집이시구려. 여론이 안 좋아진다니까……."
검사는
"다른 검사 알아보시오. 난 안 하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여론은 어차피 안 좋아진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형량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법전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룸살롱에서 텐프로를 불러 즐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검사는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형량이 다 깎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법전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형량이다.
언론에 소문이 나고 여론이 안 좋아진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일을 처리해 가지고 재판이 유리하게 잘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떡검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검사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룸살롱의 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섹검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양주에 젖은 입술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검사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회사에 와서 형량을 내놨더니, 변호사는 잘 깎았다고 야단이다. 자신이 깎아도 이것보다는 잘 못 깎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검사가 잘 깎아준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 보면, 형량이 너무 길면 법무부장관이 특별사면을 해 줄 때, 같은 재벌이라도 힘이 들며, 형량이 너무 적으면 여론이 너무 기세를 부리므로, 기업의 앞길이 잘 펴지지 않고 이미지를 망치기가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검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재건축현장은, 정치인들과 룸에서 양주나 마시고 안주머니에 돈봉투를 넣어준 뒤, 주먹들 불러서 빈민들 좀 족치면 되었다. 그러나 요사이 건설현장은, 집회시위가 곧잘 보도되어서 옛날보다 힘이 든다. 그런 점에서 용산참사 희생자 이름도 모르는 오세훈이 다시 서울시장이 된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협정(協定)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박정히)대통령이 일본이랑 몰래 말도 안되는 협정을 맺어도 반대하는 대학생들이나 감방에 넣어버리면 되었다. 근데 요즘은 쇠고기의 ㅅ자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다시 도지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싸구려 원자재로 폭리를 취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노동자의 심혈(心血)을 빼서 공장(工場) 생산품을 만들어 냈다. 이 구형량도 옛날을 그리워하는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검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떡검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떡검이 나 같은 기업인에게 떡과 여자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거래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검사를 찾아가 룸에서 양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上京)하는 길로 그 검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 검사가 앉았던 자리에 검사는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검사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룸살롱의 미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눈을 가진 러시아의 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검사가 저 외국인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형량을 깎다가 유연히 외국의 미녀를 바라보던 검사의 욕망에 가득찬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변호사와 회계사가 자료를 뒤지고 있었다. 전 변호사에게 배신당한 생각이 난다. 법원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경영권을 승계할 생각에 들떠 있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사건도 이미 오래다. 문득 일여 년 전, 형량 깎던 검사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