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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도 수필이니 문학이다
게시물ID : art_42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적신
추천 : 1
조회수 : 45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21 09:14:07

1. 오늘은 시집을 보지 않았다. 나는 시집을 보기 위해서 어떤 결여적 당위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어제나 그제나, 혹은 그 전의 나날들은 그 이유가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 고팟고, 나는 나를 어떻게든 채워야만 했으므로. 오늘은 꿈 밖에서 이이체가 걸어들어 왔다. 피가 마른 태양에서 불이 끓고. 나는 말처럼 이이체의 아래에서 걸어 갔다. 반작용 없이 작용한 풍경들. 어느 그림자는 아래로 떨어지는 데 부딪히지 않는다. 그림들은 누구든지 말하려고 했으나 대답은 없는 길이었다. 이이체는 내게 뭐라고 했으나 들을 것은 없었다. 들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헤겔 선생님이 지평선을 집어 삼키고, 그림자 속으로 그림자가 걸어들어가며 이야기는 나로부터 단절 되었다. 오늘은 이 꿈을 걸음으로써 나는 결여되지 않았다. 


2. 학교에서도 나는 잠을 잤다. 꿈에는 당위가 필요 없는가 보다. 어머니와의 이혼, 첫사랑, 키스 후의 싸움, 학교 복도에 터널처럼 갇힌 나, 동화나라로의 걸음, 나는 강당에서 강연을 하던 중 꿈에서 일어났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좌뇌는 논리, 우뇌는 감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또 잠을 자는 중에는 좌뇌의 활동이 거의 없고, 우뇌의 작용이 활발하다고 한다. 논리를 담당하는 좌뇌가 잠들었으니, 우뇌의 상상력은 당위성을 지닐 필요 없이 이어진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지, 엘리스가 떠났던 이상한 나라 보다 이상한 나라를 하나 쯤 품고 있다.


3. 오늘은 참 배고픔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 것 같다. 배고픔이라는 건 결여의 휴머니즘적 상태다. 동물적 욕구와 감각 이상으로, 인간들은 무엇인가를 고파하고, 그런 결여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고, 먹어치운다. 나는 배가 고프기 위해 굶는다. 밥이나 문학, 행복 같은 그런 모든 것들을 굷는다. 하루 두 끼를 먹으며, 인간처럼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흘에 한 번씩 시를 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진짜로 웃는다.


4. 점심은 맛이 없었고, 저녁은 아직 먹지 않았다. 삼각김밥을 먹을지, 우유에 콘프레이크를 말아 먹을지, 라면을 사 와서 먹을지 고민 중이다. 주머니에서는 동전이 짤그락거리며 내 위장을 재촉하고 있다. 밥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날 때, 그 때에만 먹고 행복해하게. 일주일에 한 번만 먹으며 만족해하게. 이 글을 적는 동안, 삼각김밥을 후보에서 탈락 했다. 우유는 밤에 좋지 않다는데, 결국 라면인가?


5. 일기장에 친구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내 일상에서 친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넘을 터인데, 그 중 누구도 이 일기장에 들어오지 못했다. 마치, 일기는 내 사유의 성역이라는 듯, 내 깨달음의 성역이라는 듯.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를 쓰듯이, 글의 완벽함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결국 내 사유에 터널처럼 갇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문득 무섭다. 내 사유로부터 나는 고립되어 있다. 일기장을 고민하면서 쓰는 것은 이상하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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