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칠레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3주년(4월 1일)을 앞두고 국내 언론의 평가와 손익 계산 작업이 활발하다. <한겨레>가 ‘장밋빛 꿈, 3년 만에 깨졌다’(3.20)는 다소 편향된 분석을 내놓은 데 이어, <조선일보>(3.23)와 <세계일보>,<중앙일보>(3.26)도 잇따라 한·칠레 FTA 3년을 분석했다.
하지만 똑같은 수치와 내용에 대한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매긴 성적표는 극과 극이어서 경제주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겨레>는 겉으로 드러난 무역적자만을 근거로 ‘낙제’를 준 반면, <세계일보>와 <중앙일보>는 국내산 제품의 칠레시장에서의 급성장을 높이 평가하며 ‘A' 성적표를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칠레산 농산물 수입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경제 후생효과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매긴 반면, 그에 따른 국내 농가의 피해는 다소 과장되게 평가했다.
이러한 언론의 각기 다른 성적표는 한·칠레FTA 3년의 경제적 성과에 관한 통계수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수치만을 골라 편향되게 인용하는데 따른 것이다. 산을 앞에 두고서, 숲 전체를 조망하기보다는 일부 나무만 보고 산 전체를 평가하기도 하고, 똑같은 숲을 놓고도 각기 다른 잣대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한겨레>의 속단은 잘못된 계산
<한겨레>는 한국과 칠레간의 수출입 액수 변화에 따른 무역수지 동향만을 확대해석해 낙제점을 매겼다. 대칠레 무역수지 적자폭이 8억200만 달러(발효 1년 전, 2003.4~2004.3) → 10억9700만 달러(발효 1년 후) → 13억3400만 달러(2년 후) → 22억3900만 달러(3년 후)로 늘어나고 있는 수치가 그 근거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왜’는 찾을 수 없다. 대칠레 수입액이 증가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것은 주요 수입품목인 ‘구리’의 국제거래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발효 전 톤당 660달러 하던 구리의 국제거래 가격은 발효 3년 후 2360달러로 4배 가까이 올랐다. 더욱이 구리와 관련제품은 대칠레 수입의 80% 가까이 차지한다는 점에서 조그만 가격변동도 무역수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구리 가격이 발효 1년 후 가격을 유지했다면 무역수지 적자폭은 8억 달러에서 4억 달러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특히 <한겨레>는 칠레 시장에서 위력을 나타내고 있는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칼라TV 등 주력 수출품의 실적은 손익계산에 넣지 않았다. 계산서의 대차대조표는 살피지 않고 총액란만 보고서 밑지는 장사였다는 속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조선>
<조선일보>는 칠레산 수입이 늘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얻은 경제적 후생효과에는 후한 점수를 매겼다. 돼지고기, 포도와 와인, 홍어 등의 수입이 늘면서 소비자들이 싼 값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내 관련 농가가 폐업에 이르는 등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분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재경부가 내놓은 ‘한-칠레 FTA 발효이후 경제교류 동향’에 비춰보면 분명해 진다. 칠레산 돼지고기의 수입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수입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세다. FTA 발효 1년 전 (2003.4~2004.3) 3680만 달러이던 수입액은 3년 후 8290만 달러로 2배 이상 늘었지만, 전체 국내 돼지고기 수입시장에서 칠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7.6%에서 10.8%로 오히려 줄었다.
포도의 경우 관세 인하 조치에 따라 칠레산이 미국산을 대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 대부분은 국내에서 포도를 생산하지 않는 계절관세 부과기간(11.1~4.30)에 70% 이상 수입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생산기를 피해 수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실제로 포도의 재배면적은 2003년 1412ha에서 2006년 1636ha로 늘었고, 생산량도 증가하고 있다.
홍어의 경우 전체 수입액은 늘고 있지만(2390만 달러(발효 1년전) → 2510만 달러(발효 3년후)) 오히려 칠레산 수입액은 1050만 달러에서 890만 달러로 줄었다. 이렇게 보면 칠레산 농수산물로 인해 국내 농가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
<조선일보>의 평가에 대해서는 <중앙일보>가 반박을 내놓았다. “당초 정부는 칠레와의 FTA에 따라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됐던 포도, 키위, 복숭아 농가를 위해 2600억원을 보상금으로 책정했으나, 이후 4년 동안 지급한 보상액은 1만1300여 농가 1445억에 그쳤다.”
한·칠레FTA 발효 3년의 성과에 대한 중앙일보 3월26일자 기획기사
<중앙일보>의 경우 무역적자는 늘었지만 실속은 챙기고 있고, 농가의 피해도 예상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칠레 시장에서 일본차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국내산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25.7%까지 올라 추월할 기세고, 휴대전화, 자동차, 컬러TV 등 주력 수출상품도 칠레시장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얻은 것은 보지 않고 잃은 것만 바라보는 식
결국 언론은 국내 시장이냐, 해외시장이냐에 따라, 수입을 보느냐 수출을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적표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 평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평향된 시각의 결과다. 문제는 균형감을 잃은 이런 편향보도가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 한미FTA 협상에 대한 보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데 있다.
가계부를 하나 쓰더라도 수입을 보고서 지출을 계산하는 게 원리다. 하물며 국가간 거래의 손익을 따지면서 준 것과 받은 것을 놓고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수익이 검증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손익계산은 얻은 것은 보지 않고, 잃은 것만 바라보고 있는 식이다.
한-칠레 FTA 3주년을 맞아 언론이 이를 평가보도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정책을 수정,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칠레 FTA에 관한 일부 언론의 균형 잃은 평가는 한미 FTA 협상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평가와 손익계산이라면 좀 더 객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안목과 경제적 실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