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의 상처를
소설에서 얼룩이라 표현하곤 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기 혈액암 소식은
서서히,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나에게 스며들었다.
어머니의 암투병을
두번이나 겪은
나의 무덤덤한 표정을,
아버지의 담당의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혈소판과
백혈구와
골수의 암울한 수치를 말했을 때.
그저
책상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암이라는 것은
가난처럼 참 지겨운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매끼마다,
수저를 들 때마다
무언가를 지불해야
그 수저에 무언가가 올려져
별로 쓸모없는 내 몸뚱어리를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하루 세 번 가난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암투병도 세 번이구나.
갑자기 가장이 되었으므로
도리를 다해야 했다.
그래서
(쓴다고 말만하고, 정작 쓴지는 오래되었지만)
소설을 그만두었다.
괄호를 쓴 것은 내 마지막 자존심과 양심이다.
그리고 취업을 하였다.
운 좋게 소개를 받았고
운 좋게 고용복지센터에서 갔고
운 좋게 건설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내 임금의 반을 국가가 내어준다고 해서
엑셀도
사회생활도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그 회사는 고용했다.
월요일 아침 9시 30분까지 출근하세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20년 동안 늘 버릇처럼
부모님께 말한 내 알량한 소신발언이 떠올랐다.
"소설 쓰면서 살고 싶어.
그래서 엄마 아빠 부양은 못할 것 같아. 대신 손은 안내밀께."
세상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