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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본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기사 - M을 보내며
게시물ID : starcraft_316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로가네
추천 : 3
조회수 : 7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7/26 15:03:31


예전에 읽었던 기사입니다. 마지막 한 줄에 저의 심정이 녹아있는 듯 하네요. 스타리그 마지막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요즘, 예전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서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네요. 관심있으신분들은 한번쯤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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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30.목요일

검찰 수사결과 발표가 나기 전날,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한 스타리그 프로게이머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진보신당에서 주최한 일종의 간담회 자리였다. 검찰 수사 발표는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이미 승부조작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대략 누구누구가 연루되어 있는지도 짐작하고 있었다. 뒷풀이 자리에서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얘기가 아니 나올 수 없었다. pain이란 아이디로 스타리그 팬덤에서 칼럼을 써온 김정근 씨가 프로게이머와 나를 앞에 두고 다소 격한 심정을 토로했다.


 


 

“선수라면 자신의 명예 뿐 아니라 자신과 싸웠던 선수들의 명예도 지켜줘야 하는 것이지. 일이 이렇게 되면 그동안 걔들에게 진 사람은 뭐가 되고 걔들을 이겼던 사람은 또 뭐가 돼?”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우리는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돌려 프로게이머의 인권 문제를 환기하는 기획을 준비 중이었고, 그날의 간담회는 이렇게 기사화되었다. (프레시안 : <’승부 조작’ 프로게이머 욕하기 전, ‘현실’을 봐라> http://j.mp/cnmvbY ) 하지만 조작 사건의 참여자에 대한 분노는 그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pain의 말처럼, 그들은 그들 자신의 명예만 실추시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리를 갈구하는 프로게이머의 독기 품은 눈초리를 보고 소름 돋아본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스타리그 자체가 쇼라는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것인지를 체감할 수 있을 거다. 승부조작한 게임이 조사에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개인리그 우승자들의 역사를 부정하지 못한다. 여기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상금 몇 천만원의 가능성이 있는 개인리그의 영광과 별도로 운용되는 팀대항전으로서의 프로리그라는 문제가. 승부조작이 개인리그에서 일어날 때는 이미 다음 라운드 탈락이 예정된 게이머의 그것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사람들은 이제 스타리그의 진실성 자체를 의심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무너진 신뢰는 영영 회복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다. 오랫동안 나는 스타리그의 서사와 환상을 만들어내는 저 소년-청년들을 사랑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 사랑은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스타리그의 관중들은 입장료조차 내지 않는다. 예전에 급한 마음에 돈 주고 VOD 본 적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주로 인터넷에서 경기를 보는 나는 하다못해 게임방송의 시청률도 높여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굴러먹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제대로 된 행동을 한 적도 없다. 성찰해보면 그들이 내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승부조작에 참여한 몇몇 게이머는 리그에서 중견게이머에 해당한다. 이들이 ‘열정 착취의 피라미드’의 아래를 떠받치는 2-3군 선수들의 열악한 상황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열정을 착취당하는 후배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지점을 규탄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게다. 근데 잘 모르겠다. 그 ‘후배들’을 괴롭히는 직접적인 주체는 승부조작을 한 그 녀석들이 아니다. 숭고한 ‘열정 착취의 피라미드’를 만들어낸 저 협회의 어르신들이다. 그 녀석들은 어리석음의 죄값을 치를 테지만, 언제나 체제는 사람을 괴롭혀도 법적으로 정당하니 체제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차라리 서글펐다. 개인리그 우승을 한 번 차지했던 모씨도, 수려한 외모로 수많은 여성팬(+남성팬)을 거느렸던 모씨조차도. 그들에게 느끼는 서글픔의 본질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끼리 유명하다고 꺄악꺄악 숭배하며 비명지르던 인디밴드 락스타가, 꼴랑 옆집 유부녀와 불륜을 저지르다 간통죄로 잡혀 들어가는 걸 본 느낌이랄까. 미친놈아, 왜 처녀들이랑 놀지 않구서. 아냐 미안하다, 이게 다 우리가 보잘것없는 놈들이기 때문이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팬들에게, 그토록 대단해 보였던 그들 게이머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사랑은 미약하거나 전달이 안 된 것인지도 모른다. 365일 가둬놓고 합숙하는 합숙소에서, 경기를 하는 타임머신의 육중한 유리벽 속에서, 그들은 우리의 외침을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우승 한 번 했어도 내일 모레 없어질지도 모르는 리그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겠지, 그래서 그랬겠지, 하지만 바보같이 왜 그랬니, 어린 나이부터 게임만 해서 뭐가 뭔지 법이란 게 무엇인지도 몰랐구나, 생각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돌아와선 안 되는 녀석들을 보내야 하는 심정에 애잔함도 있었다. 그 녀석들이 앞으로 뭐하고 살게 될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M은 달랐다.


 


 

검찰 수사 발표에서 M의 죄목을 듣는 순간 나는 탄식했다. “영혼이 타락했구나…….”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말이요, 잘 사용하지도 않는 접근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M은 단순히 친한 선후배의 꼬임에 꼬드겨 승부조작에 가담한 가담자가 아니다. M은 스타리그 바깥의 브로커들과 프로게이머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말이다. M의 인맥을 따라 M과 친하게 지냈던 후배 게이머들이 줄줄이 엮여 나왔다. M은 심지어 브로커에게 받은 사례금을 후배 게이머에게 주지 않고 중간에서 갈취하기까지 했다.


 


 

M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M은 스타리그에 새긴 업적이나 미친 영향의 측면에서 여타의 게이머와 비교할 수가 없다. ‘M과 싸웠던 선수들의 명예’가 사라진다는 것은 스타리그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위치에서 M은 그런 일을 저질렀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남들이야 망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고 치자.


 


 

M 자신을 위해서는? M은 변명할 수가 없다. M은 밀폐된 합숙소도 타임머신의 유리벽도 감히 막아설 수 없을 만큼,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경기에 감동받았고, 그가 영원불멸한 존재일거라 기대했으며, 전성기가 지난 다음에도 그를 잊지 못하고 언젠가는 돌아오리라고 여겼다. 정녕 M이 전성기에 벌었던 수억이 넘는 돈을 헤프게 탕진해 버려서 빈털터리가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M은 돈으로 환전할 수 있을 수준의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거다. 임요환이 카페를 차려서 먹고 살 수 있다면, M이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M은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이 M으로 정립가능한 이였다. 프로야구의 김태균의 별명이 많다지만 M의 별명의 숫자에는 못 미쳤을 거다. 그는 그를 ‘막장’이라고도 놀렸던 그 많은 팬들의 관심에 진저리가 났던 것이었을까.


 


 

나는 M이 고작 몇 백만원의 소개료 때문에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스스로 배팅사이트에 돈을 거는 거간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연봉에 만족 못 하는 회사원이 돈을 굴려 주식을 하는 것과 자신이 하는 일이 동일하다고 믿었던 걸까. 한때 승리만을 갈구했을 그 게이머가, 남들의 승리를 조작하고 화폐로 바꾸려고 했다. 이 사이에 존재했을 어떤 단락에 대해, 그처럼 높이 올라가 보지 못한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는 다른 이들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을 벌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벌인 것 같다. 자신을 끝까지 믿고 기용했던 감독님과의 인간적인 정리를 배반하면서 까지 말이다. M은 검찰조사를 받으면서도 팀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팀에선 그것을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받는 이가, 스스로 나락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실제로 그것을 선택했다.


 


 

굿바이, M. 한때 이 바닥의 모든 사람들이 경외했던 남자여.

 

 

출처 :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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