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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lovestory_322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린데이z★
추천 : 9
조회수 : 130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0/12/11 00:11:57
입시철이 되니
불합격 인증글이 난무하죠.. ㅜㅜ
저도 재수로 대학을 올해 왔습니다. 이제 2학년이 눈앞이네요 (유급당하지 않는다면..)
그 전까지 떨어진 대학이 몇갠질 몰라요. 불합격입니다 불합격입니다 무슨 쿨타임도 없고 불합격입니다.
재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그걸 통해 수능을 또는 재수를 준비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드리고 싶어서
올해 초에 재수하는 후배들을 위해 썼던 글을 올리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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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한번 끝나니깐 재수를 하겠다는 후배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나도 작년에 재수를 했던 사람으로서 측은한 마음도 없지않고, 다시 공부하는 걸 두려워하는, 지쳐있는 후배들을 보니까 뭐 이런 곳에 글을 쓴다고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재수를 먼저 한 사람으로서
선배로서
혹시나 재수를 결심했는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할지 모를때
이 글이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몇자 적어봐야겠다.
2008년 11월 수능이 끝나고 흔히 말하는 표현으로 난 수능을 '조졌다'.
눈만 높아서 소위 서울 상위대학이란 곳은 가고 싶은데
내가 갖고 있는 성적은 형편 없었다.
자존심만 세서 가고 싶어했던 경제,경영학과 말고는 쓰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도, 담임 선생님에게도 선언하고 혼자 배치표를 뒤적거렸다.
처음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그 어느 곳의 어느 배치표를 봐도 내 성적이 위치해있는 곳은 내 이상 내 꿈과는 너무나도 멀었다.
아무도 없는 거실 컴퓨터 앞에서 배치표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1년간 남부끄럽지 않게 공부했다고 생각했고, 19년 인생 처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그 노력의 결과가 정비례해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경계열을 쓰겠다고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를 썼다.
배치표 상으로는 낮은 학과였지만 내실있고 좋은 커리큘럼을 가진 학과였고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는 정시에도 논술을 봐야했다. 논술을 보기위해 고사장을 찾아갔는데 그곳은 다름아닌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강의실이였다.
대학교 강의실을 처음봐서 다른 곳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강의실 문을 연 순간 정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너무 좋은 시설이였고 강의실 자체의 박력이 나를 압도시켰다.
이런 곳에서 수업받고 싶었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논술을 쓰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두번째로 자존심이 상했다.
고3내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가 목표였다.
이곳을 다니는게 꿈이였는데, 지금 나는 한낱 이 강의실에서 논술시험밖에 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던 그 두번.
그 두번이 가장 '재수를 해야겠다'고 불타올랐던 때였던 것 같다.
공부를 기계처럼 주어진 거니까 했을 뿐 그 두번만큼 불타올랐던 적이 없었다.
그냥 다시 한번 수능을 보고 싶었다. 이대로는 내 성격상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뭐 반수니 뭐니 걱정할 것도 없이, 난 내가 지원한 가나군 두 대학을 모두 떨어졌다.
원서는 그렇다. 하향한 자에게 자비가 없을 때가 많다.
낮춰쓴 사람은 더 위에서 낮춰쓴 사람에게 털리고,
그 사람은 더 위에서 낮춰쓴 사람에게 털린다.
그렇게 난 반강제적으로 재수를 하게 되었다. 갈 대학이 없었으니깐
재수학원 개강일이 다가오고,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서 다시 한번하는 수능 준비에 임하려고 하는 순간
그 순간 입원을 했다.
갑자기 다가온 기흉이라 많이 당황을 했었다.
졸업식도 못갔고, 재수학원 개강부터 일주일을 내리 못 나갔다.
퇴원을 하고 학원을 시작하면서 나의 재수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불타오르진 않았다. 전처럼 어깨 힘 빡주고 공부시작이다팡팡 이런 기분도 아니었고, 그땐 그냥 수술한 폐 때문에 무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솔직히 말하면 재수가 난 무서웠다.
아니 재수가 무섭다기보다, 한번 더 볼 수능의 결과가, 단 하나 그것이 두려웠다.
난 이미 한번의 실패 경험을 했고 노력만큼 이뤄지는게 어렵다는 걸 느꼈다. 두려웠다. 한번으로 끝나는 시험이 어떻게 나올지.
떨쳐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결과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렇게 붙인 이름이 '축제'였다.
수능을 축제라고 불렀다. 축제준비를 하는 거라고, 1년간 축제 하나만을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믿지 않는다. 말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력없이 말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피그말리온을 믿지 않는 대신에 난 그냥 축제준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믿건 믿지않건, 그건 축제가 되야했다.
1년간 내가 지켰던 꼭 지켰던 철칙 하나는
' 공부는 재밌게 한다. ' 였다.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았다. 축제준비는 재밌어야만 하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재밌는 건 단순한 데서 시작한다. 그냥 계획을 세우려 이것저것 짜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시작하는 2월은 탐색전, 3,4월은 전초전, 5월은 전투준비, 평가원시험이 있는 6월은 1차공습, .. 이렇게 월마다 이름을 붙였고 이름에 걸맞는 공부계획을 세웠다.
공부가 질릴 때마다 스케줄러에 특집으로 기록을 했다.
여태 공부한 현황 정리, 계획 얼마나 진행중인가, 월별 큰 틀의 계획말고 작은 프로젝트로 준비중인 계획정리 등등.
그저 특집 기사 쓰듯이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함이 해소됐다.
1년간 지켰던 두번째 철칙은
' 제시간에 제대로 해라.'였다.
자습. 자습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는 거야말로 미친 짓이다.
재수 1년 내내 밤 10시 이후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집에 오면 항상 네이트온으로 수다를 떨거나, 대학간 친구들 싸이를 보며 열폭을 했고, 내가 못간 졸업식 사진을 보면서 두번 열폭을 했다.
절대 밤 10시 이후로 공부를 안했다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4시부터 밤 10시까지. 내게 주어진 자습시간. 난 그 시간 만큼은 공부를 했다.
피터지게 눈에 쌍심지 켜고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앉아서 유유히 그날의 계획을 하나하나 해결하면 됐다.
고3을 한번 보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자습 하랬다고 그 시간 온전히 제대로 공부로 1년내내 채우는 사람은 없다.
자습시간에 계속 자고 집에 와서 밤새서 공부하는 것보다 똑같이 주어진 자습시간에 열심히 하는게 훨씬 더 좋은 공부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1년내내 그 시간에 공부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 만큼은 정말 최소한으로 놀려고 노력했다. 왠만하면 자리에 앉았고 왠만하면 그 자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엔 유행한다는 최신 영화를 봤고, 주중 밤에는 곡을 썼다.
재수 기간동안 15곡 정도를 썼다.
공부가 지쳤을 때 공부로 해소하라고 하진 않겠다. 하지만 공부하는 그 시간 그 주어진 시간만큼은 공부로 채워야 한다.
그 이외의 시간에는 기타를 치든 영화를 보든 사람을 만나든 상관없다. 적절한 정도로 기분 풀어준다고 했던 공부가 날라가지도 않는다.
세번째 철칙은
'난 재수가 부끄럽지 않다.'였다.
재수하면서 재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어딜가서 재수생이라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심지어는 대학생 친구들에게도 조차 부끄러운 사람도 있었다.
재수가 뭐가 부끄러워-라는 말에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고 그게 자랑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맞다. 자랑은 아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하는거지, 죄를 짓는게 아니다.
고3입니다.- 이건 죄가 아니다.
재수생입니다.-이것도 죄가 아니다.
아무도 수능을 한번 보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목표가 있으면
꼭 가고싶은 목표가 있으면
그건 칭찬해줘야 할 일이지 절대 부끄러운게 아니다.
난 재수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했다.
대학생이냐고 물으면 당당히 난 재수생이요-대답했고
사람을 만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후배가 만나고 싶으면 후배를 만났고,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친구를 만났다.
재수가 부끄럽고서야 축제건 축제준비건 다 개뿔이다.
재수는 부끄럽지 않다.
목표가 있어서 달려가는 거고, 한번 넘어졌을 뿐이다.
일어나지 못하는 바보들보다 일어나서 다시 달려가는 사람이 아름다울 뿐이다.
노력도 하지 않고 축제준비라고 외치지 말자.
당당하지도 않고 축제준비라고 외치지 말자.
느그들이 어떤 자세로 재수에 임하건 내 눈엔 다 축제준비로 보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상투적인 말은 하지 않겠다.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는게 사람이다.
이왕에 하는 건데 긍정적인 자세 취했다고 뭐라 할 사람없다.
독하게 공부하는 걸 강요하진 않는다. 흔들리지 않게 공부하면 된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느리고 천천히 꾸준히 달리는 사람은 절대 외나무 다리를 건널 때 넘어지지 않는다.
수능은 도를 닦는 것도, 전문지식을 탐구하는 것도 아니다.
외나무 다리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
1년이면 그 누구라도 건널 수 있다. 빨리 건넌다고 자랑이 아니다.
그 누가됐든 이 글을 읽는 사람은 항상
즐겁게 공부했으면 좋겠다.
항상 난 축제 준비중이요-하고 당당하게 말햇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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