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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기 키우는 엄마의 주절거림 #2
게시물ID : baby_32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수없다,
추천 : 16
조회수 : 110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8/28 23:16:08
 
 
 
  1. 아이의 사생활
 
  언젠가부터 가끔 자다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아앙! 하면서 놀라는 경우들이다. 어떤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다. 내가 꿈동산까지 쫓아갈 수가 없다.
  가끔 놀라기만 하던 아이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놀라기만 하던 아기는 앙! 앙!하며 가끔 호령하듯 소리를 내기도 하더니 얼굴에 손톱자욱까지 생겨서 놀래키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팔다리를 마구 휘젓기만 하더니 이제는 이단 날라차기도 하고 제법 발차기 실력도 무척이나 늘었다. 더 이상 놀라서 깨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이 녀석이 꿈동산에서 어떤 아가들과 어울리는지 공갈이를 퉤퉤 뱉는가 하면 질겅질겅 씹다 뱉기까지 한다. 꿈동산에서 공갈이 좀 씹어본 언니 아가들과 어울리는 듯한데 말릴 수도 없다. 그곳은 1.9금이기 때문이다. 1.9세 이상은 출입금지인 꿈동산.
 
  지금은 코 밑에 삼룡이 점처럼 보이는 피딱지를 달고 맛있게 잠을 먹고 있다.  
 
  어떤 아가들과 어울리든 그것은 그 아가들의 문제가 아닌 내 아가의 성향 때문일 테니 지금은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제발 공갈이 좀 씹다 뱉어버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2. 사랑 혹은 책임감
 
  요즘 노키즈존으로 여러 곳이 시끄럽다. 사회적 공론을 일으키고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가는 모색은 좋게 생각한다. 다만 그 문제를 논하면서 불필요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한 논리가 아닌 억지를 쓰는 경우는 찬반을 불문하고 무시하게 된다. 자신만이 옳다는 그런 태도는 어디에서나 자제해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노키즈존 얘기가 나오면서 그 배경으로 부모 자격 없는 어른들의 행태가 지목되고, 나 역시 그런 경우를 몇 번 봤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아이의 기가 죽는다거나 아이니까 무조건적 이해와 수용을 바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그들은 아이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아니다'이다.
 
  정말 아이를 위하고 아이를 생각한다면 아이가 욕 먹을 행동이나 부모 자신들이 욕 먹을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가 위험에 노출되고 욕을 먹는 일도 우선적으로 피하고 싶은 일이거니와 그렇게 뛰놀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말귀도 알아듣기 마련이므로 부모 욕도 알아듣기에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치지 않게, 아이의 양육자로서 항상 최선을 다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과 아이에 대한 책임감은 다른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강아지를 키울 경우 예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프거나 늙고 병들었을 때 버리는 경우, 사랑하고 이뻐하기는 하지만 책임감이 없는 경우처럼 말 잘 들으면 이쁘고 사랑스럽지만 말을 안 들을 경우 멋대로 하라고 방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아이가 다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욕 먹지 않고, 적어도 올바르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제대로 된 삶의 자세를 정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양육자로서의 의무이자 권리가 아닌가 싶다.
 
  더불어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든 게 당연하기는 하다. 그렇다 해서 남들에게 피해주면서까지 '내가 집에서 얼마나 힘든데 밖에 나와서까지 대접 못 받는 게 말이 되냐? 밖에서 만큼은 나도 대접 받아야겠다'는 심보를 가진 엄마들을 보면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싶다. 소비하는 가격이 다르지도 않을 텐데.
 
 
 
 
  3. 너도 애 낳아 봐
 
  엄마는 왜 그리 만날 힘들고 아픈지 참 알 수가 없었다. 너도 애 낳아보라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애기 낳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몸이 계속 안 좋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낳아 보니 알겠다. 물론 엄마 만큼 아프거나 하지는 않다. 엄마는 셋을 낳으셨고,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셨고 워낙 약한 몸이시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더불어 우리를 키우며 힘들게 일하시곤 했던 유년과 청소년기가 떠올라 더더욱 아프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애기를 갖게 되면 골반이 벌어지게 된다. 온전히 붙어 있던 근육도 아닌 뼈가 벌어지게 되는데 살짝 금만 가도 아픈 뼈-사실 뼈가 아닌 신경들로 인해 아픔을 느끼지만-가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호르몬인 '릴렉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 골반이 벌어지는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문제는 골반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온 골격에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 완만한 S자 형태의 척추는 만삭에 가까울수록 아이의 무게와 크기로 인해 점점 변형되고 추간도 벌어지게 된다. 출산 후 6개월 동안은 무거운 것도 들지 않아야 뼈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데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나날이 커가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안아주지 않을 엄마는 또 몇이나 되겠는가.
 
  아기를 낳고 조리를 한다 해도 이후에는 살림과 육아를 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아기를 안기조차 버거움에도 아이를 위해 엄마들은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 업고 하느라 제대로 쉴 수가 없게 된다.
  엄마들이 출산 후 허리가 아픈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천천히 벌어진 뼈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그에 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육아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고 휘어진 척추와 늘어난 추간은 오늘도 아기를 안고 업고 살림을 하고 청소 빨래를 하느라 돌아오지 못한 채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비명을 지르고 엄마들은 이제 좀 나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주변인들에게 '너도 애 낳아 봐'라는 말을 하게 된다.
 
 
 
 
 
  4. 아기 잘 때 당신도 같이 자면 되잖아
 
  참 단선적 생각의 궁극이라 여겨지는 저런 말들. 무심한 듯 시크가 아닌 무심한 듯 속에 불 지르는 저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도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신랑이 힘들게 철야를 하거나 주말에도 일해야 할 때 나도 해야지.
 
  "사장이나 부장 쉴 때 당신도 힘들게 일하지 말고 쉬어."
 
 
 
 
 
 
  5.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
 
  아기가 어제부터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어느 아가나 비슷할 그 소리가 왜 그리 사랑스러운지.
  며칠 전부터 방언 터지듯 옹알이가 터지기 시작했는데 옹알이를 하면서 웃으면 더더욱 사랑스럽다.
 
  물론 크는 만큼 요구 사항도 조금씩 세분화 되고 디테일이 살아 있다.
 
  앙마 같으니라고.
 
 
 
 
 
 
  6.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고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하기
 
  사람은 누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존재이다.
  하늘 위에 하늘 아래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들.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그렇듯 자신은 귀중한 존재이니 스스로를 존중하고, 더불어 남들 역시 그렇게 귀중한 존재들이니 그에 맞게 대우하라는 뜻이라 한다.
 
  어디에서 만나는 누구든 누군가의 자식들이다. 물론 나이로 치차면 어린 아가들이 더 보호받아야 하겠지만 그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경우에 한한다. 자신의 부모들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아가를 누가 나서서 보호해주려 하고 아껴주려 할 것인가.
 
  욕심이겠지만 내 아가를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면서 타인들도 먼저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되 죽을 때는 사람으로 죽을 수 있도록.
  그 전에 내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참으로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어 문득 서글퍼진다.
 
 
 
 
 
 
  7. 육아 딜레마
 
  아기를 키우다 보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든다. 별 일이 아닌 사소한 행동이나 아이에게 해주는 한 가지에도 이런저런 상황과 그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들을 생각하다 보면 아무래도 일관되게 할 경우는 없을 때가 있다.
 
  며칠 전 잘 자다 배고파서 우는 게 아닌 입이 궁금해서 떼 쓰는 아기에게 젖을 안 물린 적이 있다. 며칠 그렇게 하면 아기가 밤중 수유를 끊는다 해서 한 번 시도해 봤다. 처음에는 떼만 쓰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울음이 되려 하길래 얼른 젖을 물렸다.
 
  물리면서 든 생각은 과연 지금 이런 내 행동으로 인해 아기가 떼를 쓰면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거나 스트레스만 는 것은 아닐까, 더불어 아기가 밤중에 깊이, 오래 자야 발육이나 성장에 도움이 되는데 내가 단호하게 끊지 못해 아이의 성장을 오히려 젖을 물림으로써 망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혼자서도 잘 놀기도 하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면 아이가 모빌에게 명령질하는 소리에도 내가 반응을 해줘야 하는지, 반응을 해주더라도 내게는 신경 안 쓰는 아기를 보면서 괜한 참견을 한 것은 아닌지 고민되기도 한다.
 
  혼자 잘 놀다 앙앙!하는 소리를 내면 안아주고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 말들을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아가는 그 느낌만큼은 아는 듯하다. 느낌이란 피부로 직립하기 때문이다.
 
  가끔 힘들거나 몸이 아플 때 나도 모르게 짜증처럼 들리는 소리로 아기에게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척이나 자책하게 되는데 그렇게 다양한 감정들을 아기가 느끼게 해주는 게 좋은지, 아니면 시종일과 힘들어도 웃는 게 좋은지, 그럴 경우 가장된 웃음을 아기가 배우는 게 아닌지 참 생각이 많게 된다.
 
  여튼 아가를 키우는 동안 참 생각이 많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라 더 조심스럽기도 하면서 때로는 직관적으로 행동하기도 하는데 이런 내 행동 역시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 역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대비해 생각해 보면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아 참 사람되기 멀었다는 생각만 다시금 하게 된다.
 
  무엇보다 항상 드는 생각은 낙제 엄마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다.
 
 
 
 
 
 
  9. 어디서 너 같은 애기
 
  어디서 너 같은 애기가
  어떻게 너 같은 애기가
  왜 너 같은 애기가
  어쩌다 너 같은 애기가
 
  엄마에게 왔니?
 
  이 말들은 어조에 따라 상당히 사랑스럽고 아기에게 뿌듯함을 줄 수 있는 말이지만
반대로 아기에게 좌절감과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아가에게 물어봤다.
  넌 왜, 뭣 때문에, 어쩌려고 엄마한테 왔니?라고 묻자 아가는 까르르 웃으며 함박웃음과 눈웃음으로 답했고 나는 아이를 껴안고 고맙다고 속삭였다.
 
 
 
 
  10. 요즘 다시 드는 생각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최우선에 있으며 가장 근본이 되고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의지'이다. 
그 이후에 방법론이 존재하게 되며, 방법론은 가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11. 비로소 숨 좀 쉬는 듯
 
  아기가 잠 들고 난 이 시간, 다시 아기가 깨기까지 시간이 있다. 피곤하고 졸립지만 이 짧은 나만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 그렇다 해서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반추하고 상상하고 온갖 가정들을 하며 미래를 그렸다 지웠다 하며 자기 반성 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뿐이다.
 
  휴,
  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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