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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팔짱을 끼고 평양의 릉라인민유원지를 시찰하고 있다고 26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 설명에 처음으로 부인 리설주의 이름을 밝혔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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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이 지난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대회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가 응원단원으로 참석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가운데 당시 리설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사면초가다. 안으론 극심한 식량난으로 민심이 흉흉하고 밖으론 핵과 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적 압박으로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연례행사로 되풀이되는 식량난은 올해 들어 더 심하다. 연초 '2·29 합의'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지원 받기로 한 24만 톤의 식량도 미사일 발사로 중단됐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후유증도 심각하다.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변호인 역할을 자처해온 중국마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동참함으로써 등을 돌렸다.
그런 가운데 김정은은 죽은 김일성 100회 생일에 북한 1년 예산의 3분의 1인 20억 달러 이상을,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4·15행사에 맞춰 약 8억5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광명성 3호 발사했다. 그러나 미사일은 파편으로 허공중에 흩날렸다.
그로 인해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신뢰도 산산 조각난 광명성 3호와 함께 와르르했다. 와중에 최근에는 군부의 핵심 실세인 리영호 군 총참모장마저 김정은에게 반기를 들어 숙청되는 등 권력층 내부 갈등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새로 등장함에 따라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 결과 김정은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체제도전으로 뻗쳐가고 있다. 북한 내부에 불온 삐라가 뿌려지고 북한 주민들의 '성지'로 여겨지는 김일성 생가 만경대 문짝이 날아가는 등의 사태가 비일비재다.
북한 주민들의 민심이 김정은 곁을 빠르게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붙들어 매야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김정은의 새로운 이미지 구축이다. 그것도 안으로부터가 아니라 밖으로부터다. 그래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김정은의 새로운 이미지 구축 주제는 그의 결혼문제였다. 이거야 말로 정치적 부담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는 멋진 소재다. 상업주의에 탐닉하고 있는 자본주의 언론을 이용하면 손 안대고 코 풀 수 있어 꿩 먹고 알까지 먹을 수 있다.
북한은 우선 북한판 ‘소녀시대’ 등장 등 문화개혁 시늉과 김정은의 이름 모를 ‘여인 대동’ 장면 연출로 밑밥을 던졌다. 고도의 계산된 정치심리전이다.
작전은 적중했다. 한국 언론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입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웬 떡이냐’며 너도나도 북한판 ‘소녀시대’ 등장과 김정은의 여자 문제를 관심 있게 보도했다.
한국 언론들의 입질이 잦아지자 북한은 지난 25일 김정은의 부인(리설주) 전격 공개로 낚싯밥을 던졌다. 그날 저녁 조선중앙TV를 비롯한 북한 선전
매체들은 김정은의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 원수가 부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참석하시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예상은 또 한 번 맞아 떨어졌다. 김정은과 그 여인에 대해 입질을 하던 한국 언론들이 낚싯밥을 일제히 물었다. 언론들은 김정은의 부인에 대해 ‘퍼스트레이디’란 명칭까지 붙여가며 얘기를 엮어나갔다. 그럴듯한 평가·분석기사도 덧붙여졌다.
우리 언론은 북한의 노림수도 모르고 때론 추측으로, 때론 전문가의
해석에 기대 김정은
미화기사를 써내려갔다. 요지는 이랬다. “김정은의 부인 공개는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생활을 통해 서구문화에 익숙해지면서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달리 개방적인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따라서 앞으로 정치에서는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하겠지만 문화적으로는 김정일 시대에 비해 훨씬 개방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등등.
북한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남쪽 사람들에게 김정은의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그들의 대북 경각심까지 풀어헤쳐 놓았으니 도랑 치고 가재도 잡은 꼴이다.
이제 북한 당국은 남쪽 언론 보도를 ‘학습제강’으로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남쪽에서도 이렇게 호의를 보이는 김정은 동지의 부인’이라며 선전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면 효과 백배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에 대해서 ‘젊다’는 것 외에 아는 게 별로 없다. 최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나이는 물론 경력조차 모른다고 전했다. 북한 언론에서 김정은을 '청년대장'이라 부르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다'는 정도만 짐작할 뿐 다른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이 같은 이해는 김정은이 국정운영 경험도 없는 애송이여서 나라가 이토록 엉망으로 되고 있다는 인식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애송이 김정은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데 대해서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 선전선동일꾼들이 나섰다.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북한에서는 모든 선전선동일꾼들이 동원되어 산간 오지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김정은 알리기’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에서는 최근 김정은의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 발행 부수가 배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농촌 지역의 주민들이 아직 김정은의 얼굴조차 몰라 노동당이 마련한
긴급 조치라고 한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이번 김정은의 부인 공개는 치밀한 사전 계획아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밖으로부터 안으로’ 라는 기법에 따라 이뤄진 고도의 정치심리전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김정은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있다.
장성택은 김정은의 결혼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김정은의 최대 약점인 ‘애송이’ 이미지를 씻어내고자 했다. 특히 북한 군부 노년층들의 ‘나이 어린’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킴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김정은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했다.
우리 측 정보기관을 무력화시키려는 노림수도 있다. 적을 이용해 적을 치는 전법이다. 벌써부터 야권에서는 “북한이 공개할 때까지 우리는 김정은 부인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며 정보기관 폄하와 함께 정보책임자 교체론까지 들고 나왔다.
바라건대 우리 언론은 냉정해야 한다. 도대체 김정은의 결혼이 그토록 보도가치가 있단 말인가? 하긴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 나열에 지면과 방송시간을 아끼지 않는 우리 언론인지라 폐쇄사회의 지도자 부인 얘기가 나왔으니 ‘얼씨구나’를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가십거리로 처리해도 될 것을 침소봉대하면서 북한의 장단에 놀아나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이제부터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해치는 대북 황색저널리즘은 사라져야 한다.
국민들도 언론의 상업주의적 선정보도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김정은의 결혼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 리 만무하고, 김정은의 부인 공개로
주식시장이 영향 받을 리도 없다.
최근 우리 언론은 북한판 ‘소녀시대’가 등장했고, 북한에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키마우스가 나타났다며 김정은의 파격행보가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이 같은 행보가 되레 대남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 김정은이 지금 마련하고 있는 각종
경제개선 조치가 시행 과정에서 차질을 빚을 경우 내부 불만을 대남 도발로 연결시킬 개연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군은 후방에 있던 공격헬기 50여 대를
백령도 인근 공군기지로 옮겨 전개하는 등 일부 후방병력을 전진 배치하고 기습능력을 높이는 공격 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를 명문화한 가운데 뒤에서 여전히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면서 우리의 혼란을 조성하고 북한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언제라도 대남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짙다.
그런 만큼 우리 언론은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해치는 대북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국민들도 황색저널리즘의 선정보도에 놀아남으로써 스스로의 안보의식을 누그러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국가안보의 기반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모래성으로 되고 만다. 북한은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를 다지기 위해 동쪽에서 소리치며 서쪽을 공격하는 ‘성동격서’ 전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안보의식을 더욱더 다져야 한다.
글/김영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