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로봇에게 침을 뱉어?'
'로봇' 차두리(31·셀틱)가 바레인의 수비수 마르주키에게 '침 봉변'을 당했지만 경기 후 유니폼을 서로 교환하는 등 대인배다운 행동을 선보였다.
차두리는 11일 오후 바레인과의 경기가 끝난 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로그를 통해 바레인전 비화를 소개했다.
'어제 경기는 굉장히 거칠었다. 심판도 썩 좋은 경기 운영을 한 것 같지는 않다'며 글을 시작한 차두리는 '후반 중반 바레인의 코너킥 상황에서 나는 마르주키를 마크하고 있었다. 코너킥은 별 탈 없이 끝났다. 그런데 갑자기 마르주키가 나에게 달려와 왜 미냐고 얼굴을 들이 밀었다. 순간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고 전했다. 마르주키는 구자철(21·제주)의 슈팅이 자신의 몸에 맞고 골로 연결돼 화가 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르주키가 차두리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분위기는 과열됐다. 순간 차두리는 얼굴이라도 한대 때려줄까 생각도 했지만 분을 삭힐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아시안컵 첫 경기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첫승을 위한 인내였다. 차두리의 직장 동료 기성용(21·셀틱)도 이를 보고 심판에게 항의했지만 조용히 지나가게 됐다.
차두리는 경기가 끝나기를 벼르고 있었다.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경기 종료 후 차두리는 마르주키에게 다가갔다. 폭풍전야였다. 하지만 차두리는 화내질 못했다.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차두리는 '악수를 하는 순간 마르주키가 너무 불쌍한 표정으로 유니폼을 바꾸자고 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고 전했다.
순간 차두리의 머리엔 아픈 옛 기억이 떠올랐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진 잉글랜드와의 평가전. 이날 잉글랜드와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 대표팀의 차두리는 경기 후 테디 셰링험에게 다가가 유니폼 교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무참하게 거절당했다. 차두리는 '우리보다 잘 한다고 생각되는 나라 그리고 흔히 말하는 스타플레이어에게 완전 무시 당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화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괜찮다고 말했다'며 유니폼을 교환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것이 스포츠인 것 같다. 경기 중에는 승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경기가 끝나면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다. 서로가 존중해야 한다.' 차두리는 스포츠 정신을 강조했다.
차두리는 바레인전에서 강력한 슈팅으로 구자철의 추가골을 이끌어내는 등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조광래 감독도 구자철과 차두리를 수훈갑으로 꼽았을 정도다.
그러나 바레인전에서 돋보였던 건 차두리의 경기력뿐만이 아니였다. 차두리의 인간미도 경기력 만큼이나 MVP감이었다.
<출처 스포츠 조선>